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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Sep 03. 2022

어느 비 오는 날

촉촉함에 대하여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언젠가 유현이는 내게 말했다.

 - 비가 오면 촉촉하잖아

 유현이의 말엔 항상 내가 모를 어떤 감성 같은 것이 잔뜩 묻어 있다. 비 오는 날은 대게 촉촉하기보단 축축하지 않나. 고백하건대, 나는 그 말이 대체 무슨 뜻인지 평생토록 알지 못할 것이다.

 뉴스에선 이번 주가 본격적인 장마의 시작이라 했다. 월요일부터 일주일 내내 한바탕 비가 내릴 것이라고. 공교롭게도 우리의 휴가 역시 이번 주부터였다. 하지만 예보와 달리 월요일과 화요일 비는 내리지 않았고 우리가 비를 만난 건 수요일이 되어서였다.


  오는 수요일 오후, 나는 호텔 방에 가만히 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거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빗방울의 수를   있을지 모른다는 착각이 들만큼 또렷하고 굵은 빗줄기였다. 어제 미리 산책을 해서 다행이야. 하루쯤 비가 오는 것도 괜찮네. 특별할  없는 대화 속에서 우린 어김없이 행복했다. 어쩌면 여느 날 보다 조금 .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비를 만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행복은 웬만한 비와 바람에는 끄떡도 않는다. 그날의 비가 우리 휴가를 망치지 못했던 것처럼 견고한 삶의 행복을 쌓고 싶다. 아무리 거센 비가 내려도 편안히 바라볼 수 있다면 그저 풍경이니까. 설혹, 길 한 복판에서 갑작스레 비를 만나 떨어지는 비를 몽땅 맞는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언제든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다면, 뽀송뽀송한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유현이에게, 또 재이에게 쏟아지는 비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그런 행복을 만들어 주고 싶다.

 어느 비 오는 날, 우리가 함께 비를 바라보며 조용한 대화를 나누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면 조금 마음이 촉촉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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