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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Oct 23. 2022

너의 열이 내리면

아픈 아들을 바라보는 일

 고통의 부재 따위가 행복이 되어버린 삶이란 서럽다. 경건한 자세로 고통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아빠의 마음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열이 난지 벌써 두 번째다. 나는 익숙한 몸짓으로 온몸에 열꽃이 핀 아들의 몸을 물수건으로 닦는다. 샤워할 때 내 몸을 닦는 것보다 더 구석구석. 가슴 한 번, 배 한번. 겨드랑이를 닦아 내고 뒷 목을 쓸어내린다. 성스러운 의식이라도 하듯 손 짓 한 번에 바람을 담아 부지런히 몸을 닦아낸다. 벌써 삼십 분 째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 아픈 너의 눈을 쳐다보며 말한다.괜찮아. 아빠가 금방 낫게 해 줄게. 벌써 삼십 번 째다.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 열을 앓는다. 속에서 천불이 끓어 올라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되어 자꾸만 울컥 댄다. 체온계로는 잴 수 없는 뜨거움이다. 자주 원망하고 싶어 진다. 도대체 당신이 누구길래 우리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 거냐고 쏘아 붙이고 싶다.


 이미 가지고 태어난 큰 슬픔 위에 이런 작은 슬픔이 더해질 때면 마음과 다르게 속절없이 약해지고 만다. 다 괜찮다고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이 역시 별 일 아니라고 말해줄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 누군가가 거짓말쟁이라 할 지라도 나는 아무 의심 없이 믿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무너지는 대신, 물수건을 쥐고 있는 손에 꾸욱 힘을 주었다. 뚝 하고 물이 떨어진다. 다 괜찮을 거란 말을 다시 한번 내뱉는다. 내가 너의 아빠란, 아직도 믿기 힘든 사실을 한번 더 감당해 내기로 한다.


 한참이 지난 끝에 한 숨 자고 일어난 아들의 열이 내렸다. 배가 고팠는지 밥시간도 지나서 허겁지겁 분유를 먹어치운 너는 사랑하는 엄마의 품에서 뒤척이다 다시 잠이 들어 버리고, 열이 내렸던 그 짧은 순간에서 나는 행복을 찾는다. 어떤 힘든 날의 행복은 고작 아픔의 부재 따위가 되어 버린다. 세상이 뭐 이렇게 고달프냐고 불평하지만, 한편으론 그것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다행스러운 마음에 행복이 깃들었다. 특별한 행운 따위 없어도 좋다. 마음 힘든 일만 없으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살며 겪는 불편함은 감수해야 할 일이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나쁜 일 만은 아니다. 포기의 의미도 아니고. 그저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 또 만들어 내는 것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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