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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Dec 29. 2022

1년치 운명이 내게 말을 걸어 올 때

2022년의 소회(所懷)

 12월은 미련의 달,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해의 끝에 서 있는 나의 등을 떠밀며 지난 한 해를 복기하라고 쉼 없이 채근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연말의 되짚어 봄이 달갑지 만은 않다. 연말 시상식의 초대받지 못한 배우의 기분이 나와 같을까. 한껏 격앙된 사람들, 오고 가는 덕담 속 감히 내가 끼어들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한 해 동안 사람들이 이루어낸 크고 작은 성취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올 때면, 눈 부시도록 부러운 마음에 차라리 눈을 감고 만다.


 누군가에겐 시간을 돌아보는 일이 기념할 만한 일일지 몰라도 지난 2년 내게 연말은 가혹하기만 했다. 자꾸 돌아보라는 12월의 보챔이 야속하게 느껴진 건 시간을 아무리 헤집어도 반짝거리는 무엇하나 건져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손을 한번 휘저으면 바닥 깊은 곳에 뻘처럼 가라앉아있던 힘든 시간의 잔해물들이 뿌옇게 일어났다.

 아프고, 다치고, 부딪히고, 실수하는.

 불행마저 자랑이 되는 이 쉬운 세상에서 나의 불행은 그럴듯한 불행이 되는데 실패했다.

 나는 자꾸 움츠러들었다.

 

 그러다 어떤 시를 만났다. 이제 비밀도 무엇도 아니지만 내겐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작은 모임이 하나 있다. 함께 책을 읽고 가능한 매일 필사를 하려 노력하는 모임인데, 한 두 달에 한 번은 직접 만나 그간 읽은 책과 직접 쓴 글에 대한 얘기도 나눈다. 올해 마지막 모임의 책으로 만장일치 선정된 책은 최근 인기리에 출간된 시화집이었다. 책에 실린 20편도 넘는 시 중에서 나는 단연 이 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반가웠다고 표현한다면 내 마음과 가장 가까울 것이다. 신형철의 책 ‘인생의 역사’에서 발견한 한강의 ‘서시’는 이런 구절로 시작한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사실, 나 역시 그를 만나고 싶다 생각한 적이 몇 있었다. 감당 못할 불행을 갑작스레 떠안게 된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신이든 운명이든 닥치는 대로 만나 물어볼 것이 산더미이다. 왜 하필 나인지,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안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지만 아는 게 있다면 뭐든 좀 알려달라고 외치고 싶어 진다.

 시에서 엿보인 다정한 운명의 모습에 나는 용기 낼 필요도 없이 이런 상상을 하나 해 보았다. 커다란 운명이란 놈 대신 조금 더 작은 녀석이, 그러니까 1월부터 12월까지 딱 1년 치의 운명이 매년 나를 찾아와 말을 붙인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

 과연 나는 시처럼 그를 조용히 끌어안고 오래일 수 있을까.


 지난 2년의 나라면 끌어 안기는커녕 보자마자 소리 내어 울어버렸을지 모른다. 녀석의 얼굴을 한대치고 싶다고 느끼며 주먹을 휘두르려다가 이내 곧 다 소용없는 일이란 사실을 깨닫고 내 분에 못 이겨 엉엉 무너졌을 것이다. 그리고는 답이 필요치 않은 질문을, 그가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따져 물었을 것이다. 맘에 드냐고? 너는 그렇게 내게 말하면 안 되잖아. 그건 너무 잔인한 일 아니냐고. 흥분해 화만 광광 내다 막상 물으려 했던 내용은 묻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2022년 12월의 나라면 다르다. 무작정 화를 내기보단 차근차근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사이 내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언제나 대화는 성장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까. 그러니 만나 반갑단 말로 우선 대화의 물꼬를 터보려 한다. 그리고 지난해 우느라 미처 못다 한 이야기들을 쏟아 낼 것이다. 지나쳐 온 시간의 흔적 하나하나를 마치 바둑기사가 지난 수를 복기하듯 훑어 보며 이렇게 말하려 한다. 이것 봐 여기. 네가 내게 준 지난 한 해는 이토록 아프고 가혹했다고, 덕분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죽었었다고, 다시 살아난 적이 없는데도 몇 번이나 죽기만 했었다고.

  그렇게 우리의 저문 시간을 확실히 짚어낸 뒤에야 나는 너의 얼굴을, 더 정확히는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새겨진 ’ 그늘과 빛‘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를 향해 마지막으로 ‘그래도 올해는 여러모로 고마웠다 ‘ 고 웃으며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잔뜩 꺼내어 놓고 자랑할 정돈 아니라도 의미 있는 일들이 2022년의 내게도 있었다. 5월엔 잃어버렸던 봄을 다시 발견했다. 내 실수로 잃어버린 것인지 빼앗겼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 매년 찾아오는 같은 봄 일진대 올해의 봄은 도저히 이전과 같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어찌나 새로웠던지 고작 벚꽃이 핀 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우린 ‘2021년에도 봄이 왔었나’ 서로에게 물었고 낯선 봄의 기운에 어리둥절했었다. 아마도 그동안 우리에겐 봄을 느낄만한 여유가 없었으리라. 가끔 볕이 좋은 날 산책을 나가기도 했으나 우리의 모든 눈과 신경은 재이에게로 쏠려 있었기 때문에 산책을 산책이라 부르기에 민망한 부분이 있었다. 유난히 예민했던 재이는 산책하는 내내 불어오는 바람마저 무서워했고, 언제 울음이 터질지 모르는 재이와 같이 걷는 길은 산책이 아니라 살얼음 판을 걷는 일과 차라리 비슷했다. 그 아슬한 길 위에서 계절의 풍광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우리가 다시 발견한 ‘22년의 봄은 겨우 되찾은 행복의 가장 확실한 증거다. 아 봄이란, 이런 계절이었구나. 우린 마치 한평생 겨울만 살아온 사람들처럼 감탄했고, 재이의 손에 꽃 한 송이를 꺾어 쥐어주면 유모차가 지나는 바퀴 자국마다 꽃이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걷는 걸음걸음 온통 꽃길이었다.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변화는 재이가 전보다 더 자주, 크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간간히 웃어 주던 재이였지만 이제 제법 행복에 겨운 사람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 듣기에 좋았다. 유현이와 재이가, 우리를 반씩 닮은 신비로운 아이가 함께 만들어내는 웃음이 저녁을 준비하는 내 등 뒤 어깨를 타고 처음 넘어오던 순간을 나는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 소리는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어느덧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소리가 되었다. 나는 그 소리가 혹여나 TV에서 나오는 소리는 아닐까 의심되어 끓는 냄비의 불을 줄이고 칼질을 멈춘 채 몇 번이고 깔깔대는 너희를 쳐다보았었더랬다. 언젠가 다른 글에도 적었었지만, 재이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몇 번이고 나는 다시 태어났다. 주름하나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 작은 행복의 순간들이야 말로 2022년 한 해 내가 얻어낸 커다란 성취라 나는 여긴다. ‘22년이 눈 부시게 빛나는 한 해였다고 말하긴 아무래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나는 올해가 고맙고 기특하다. 함께 애쓴 덕분으로 덜 울고 더 행복했다. 나의 불행에 조금 익숙해졌고, 그만큼 여유로워졌다. 무엇보다 불행의 그늘 안에도 작게나마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 얼마든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최선은 잠깐 스쳤다 사그라드는 행복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가능한 오래 붙들고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내년에도 1년 치의 운명은 같은 얼굴로, 또 같은 질문을 하며 나를 찾아올 것이라는 걸 안다.

 내가 네 운명이란다. 내가 마음에 들었니

 태연히 다가오는 너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 또, 새로이 모아 놓은 작은 삶의 조각들을 대답 대신 내어 놓을 테다. 그중 몇몇이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면 좋을 것이나 설혹 그렇지 않더라도 더는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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