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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Aug 28. 2021

너의 첫번째 생일에

 재이야 사랑해.

 너의 첫 생일, 아빠는 다른 어떤 말보다 사랑한단 말을 먼저 해주고 싶었어. 생일 축하한다는 말보다 먼저,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보다도 먼저. 그러자면 지난 1년간 널 바라보는 아빠의 눈에 걱정과 두려움이 지나치게 많이 담겨있었단 사실을 고백해야만 하겠지. 실은 아빠의 사랑한단 말의 뒤에는 미안하단 말이 깊숙이 숨겨져 있는 거라고.


 사랑만 가득 담아도 모자란 때에 아빠는 불안한 눈으로 너를 바라보았고, 또 쉽게 자책했어. 너는 그저 아프게 태어났을 뿐인데,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는 것만으로 버거웠을 뿐인데, 그것이 너의 잘못이 아닌 건 분명할 텐데 그럼 지금의 슬픔은 누구의 잘못인 걸까. 혹시 아빠의 잘못은 아니었을까. 아니 애초에 잘못이긴 한 걸까.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그렇다면 아빠는 무얼 해야 하는 걸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쓸데없는 걱정과 밤마다 찾아오는 무서운 생각들을 떨치기 위한 기도뿐이라, 확신에 찬 사랑의 눈빛으로만 너를 바라보지 못했어. 그렇게 소중한 시간들의 일부를 놓쳐 흘려버리고 말았던 것이 아빠는 이제와 너무 미안하고 후회가 돼. 하지만 아빠도 조금은 무서웠다고 한다면, 네가 세상에 나와서 무섭고 힘들었던 만큼은 아닐지라도 아빠도 두렵고 겁이 나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한다면 조금은 용서가 될까.


 그래서 오늘 너의 생일, 아빠는 어떤 걱정도 깃들지 않은 눈빛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는 표정을 너에게 띄워 보낸다. 아침 일찍 눈이 떠져도 바로 일어나지 않고, 침대 위 내 옆에 누워 있는 너와 나란히 눈을 맞추고 함께 뒹굴며 달콤하고 나른한 시간을 보낼 거야. 너를 향한 가장 따뜻한 마음만 소중히 골라 담은 뒤, 이제 막 일어난 네가 다시 스르륵 잠이 들만큼 부드럽고 자상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너의 이름을 부르며 몇 번이고 사랑한다 말해주는 것이 아빠가 너를 위해 준비한 첫 번째 생일 선물이 될 거야. 이런 선물이라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가인 너라도 활짝 웃어주지 않을까. 부디 이런 아빠의 마음을 네가 느낄 수 있기를. 그리고 이해해주길.


 재이야. 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 길을 걷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눈물이 흘러. 네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서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 너는 보통의 아기들이 겪지 않아도 될 시련을 너무 많이 겪었고 울지 않았어도 될 울음을 너무 많이 울었잖아. 아무리 울어도 누구 하나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는, 손 내밀어 안아주지 않는 병실에서 30일의 시간을 홀로 견뎌냈잖아. 그리고 퇴원한 날부터 지금까지도 매일매일 열심히 애쓰고 있잖아. 어쩌면 네가 힘들어 울지 않았던 날이 며칠 없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슬퍼질 때면, 아빠는 세상에 나와서 우는 울음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얘기를 기억해. 정말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재이의 앞날엔 더 이상의 울음은 없지 않을까 하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정말 그럴 거라고 아빠는 믿어. 그러니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재이야. 너를 키우며 아빠는 항상 '너는 과연 태어나서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어. 너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엄마 아빠와 함께한 지난 1년간의 시간이 어땠는지 물어볼 거야. 너는 행복했니. 만약 행복한 날이 있었다면 그런 날들이 365일 중 몇 날이나 되었니. 어제 보여준 건강한 웃음소리는 행복의 웃음이었니. 아빠는 그게 너무 궁금해. 언젠가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내가 너에게 말을 걸고, 네가 나를 아빠라고 부르며 세상에 있는 모든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 재잘재잘 떠들어 대는 날이 온다면, 정말로 그런 날이 올 수 있다면 그때는 왜 너의 태명이 '행복이'었는지, 지난 1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 엄마와 아빠는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마음으로 너를 키웠는지 모두 얘기해줄게. 너를 너무 사랑하고 아껴서 너를 품에서 정말 내려놓지 않았다고, 남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묻겠지만 그건 절대 과장이나 거짓말이 아니라고. 엄마랑 아빠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너를 사랑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밤이 새도록 얘기해줄 거야.

 

 사랑하는 재이야. 최근에서야 아빠는 너를 완전히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고 하면 너의 마음이 너무 서운할까. 네가 아프든 건강하든, 남들보다 느리든 빠르든 그런 건 이제 아무 상관없어. 아빠가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게. 누군가 얘기하더라 육아의 목표는 자식의 독립이라고, 자식이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키워내는 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재이야. 아빠는 그 말을 믿지 않을래. 아빠가 언제나 항상 함께 있을 거야. 함께 있지 못할 때면 언제든 한달음에 달려갈 거야.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을 거야. 우리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너무 많으니까 아빠는 너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려해. 너의 시간 위에 아빠의 시간까지 듬뿍 얹어서. 그러니 아주 천천히 너만의 시간을 가지렴. 그리고 그렇게 너만의 호흡으로 조심조심 자라나렴. 아무도 모를 아주 작은 변화라도 엄마와 아빠가 절대 놓치지 않고 알아챌 거야. 그리고 너무 대단하다고 잘 해냈다고 칭찬해줄 거야. 재이야 앞으로 건강해야 돼. 그리고 행복해야 돼. 우리 같이 행복하자.

 사랑해.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 귀여운 재이에게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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