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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Jan 16. 2023

세상 마지막 날까지 난 변하지 않아

EVE의 Lover를 듣고

락 발라드는 취향이 아니었지만,

EVE만큼은 좋아했다.

내게 변성기도 찾아오기 전의 기억이다.

60분의 행복을 노래로 살 수 있는,

미러볼이 쉴 틈 없이 돌아가며 어둠을 밝히는 방에서

처음 EVE를 만났다. Lover라는 노래였다.

미성의 이기종이 즐겨 부르던 생소한 노래가 마음에 들어 가사의 의미도 모르는 주제에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불렀던 것이 그때의 추억이다.

세상 마지막 날까지 난 변하지 않아

그대도 나와 같지 않은가요

노래의 하이라이트를 부를 때면 영문도 모른 채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내가 영영 나이 들지 않는, 지금과 꼭 같은 모습으로 덩치만 커진 어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아직 실재하지 않는 그대를 향해 한참 노래 부르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지고 스트레스가 풀렸다. 스트레스 따위 있을 리 없던 시절이었음에도 그랬다. 나는 그때를 내 인생 가장 티 없던 시절이자 인생의 황금기로 기억한다. 정말이지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이었다. 내가 노래하던 그 방에 미러볼 따위 없었어도 전혀 어둡지 않았을 만큼.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실실 웃음이 난다. 서른일곱. 목소리 마저 나이 들어버린 오늘, 느닷없이 이 노래가 떠올랐던 건 왜일까.

나는 이제,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 따윈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동시에,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동일한 이연종이라 부를 수 있게 해주는, 변치 않는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어렴풋이 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 하나만큼은 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간직하고 싶다. 그 바람이 과한 욕심은 아닐 것이다.

내가 결국 찾아낸 ‘그대’와

‘그대’와 내가 만들어낸 또 다른 ‘그대’가 나란히 앉아 나와 함께 Lover를 듣고 있다. 모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노래에 맞춰 되도 않는 춤을 추고, 둘은 그런 나를 보며 깔깔대고 웃는다. 노랫말처럼, 그 둘을 위해서라면 한낱 어릿광대라도 한없이 좋기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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