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의 Lover를 듣고
락 발라드는 취향이 아니었지만,
EVE만큼은 좋아했다.
내게 변성기도 찾아오기 전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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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분의 행복을 노래로 살 수 있는,
미러볼이 쉴 틈 없이 돌아가며 어둠을 밝히는 방에서
처음 EVE를 만났다. Lover라는 노래였다.
미성의 이기종이 즐겨 부르던 생소한 노래가 마음에 들어 가사의 의미도 모르는 주제에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불렀던 것이 그때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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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마지막 날까지 난 변하지 않아
그대도 나와 같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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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하이라이트를 부를 때면 영문도 모른 채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내가 영영 나이 들지 않는, 지금과 꼭 같은 모습으로 덩치만 커진 어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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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직 실재하지 않는 그대를 향해 한참 노래 부르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지고 스트레스가 풀렸다. 스트레스 따위 있을 리 없던 시절이었음에도 그랬다. 나는 그때를 내 인생 가장 티 없던 시절이자 인생의 황금기로 기억한다. 정말이지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이었다. 내가 노래하던 그 방에 미러볼 따위 없었어도 전혀 어둡지 않았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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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실실 웃음이 난다. 서른일곱. 목소리 마저 나이 들어버린 오늘, 느닷없이 이 노래가 떠올랐던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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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 따윈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동시에,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동일한 이연종이라 부를 수 있게 해주는, 변치 않는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어렴풋이 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 하나만큼은 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간직하고 싶다. 그 바람이 과한 욕심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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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결국 찾아낸 ‘그대’와
‘그대’와 내가 만들어낸 또 다른 ‘그대’가 나란히 앉아 나와 함께 Lover를 듣고 있다. 모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노래에 맞춰 되도 않는 춤을 추고, 둘은 그런 나를 보며 깔깔대고 웃는다. 노랫말처럼, 그 둘을 위해서라면 한낱 어릿광대라도 한없이 좋기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