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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Sep 17. 2023

결혼식장에서 생긴 일

따뜻하게 대화하는 법도 배워야 하나

책임님 넥타이 한 모습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그지. 내가 처음하고 왔으니까.


결혼식 장에서 넥타이를 한 내 모습을 보고 후배가 말했다. 나는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대충 농담처럼 아무 대답이나 하고 말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의 내 대답은 사회생활을 하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될 종류의, 어딘가 결여된 사람이나 할 법한 대답이었던 것 같다.


요 근래 나는, 내 건조한 답변만큼이나 까다롭고 퉁명스러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과연 나라면, 거꾸로 이런 사람과 가까이 알고 지내고 싶을까.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변화의 조짐은 이전에도 있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에이전시의 한 직원은 나를 보면 미드 덱스터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덱스터가 냉철한 사이코패스 이야기인걸 안 건 나중의 일이었다.

어쨌든 이날의 짧은 대화를 통해 나는 다시 한번 확신했던 것 같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다행히 내겐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생활을 잘해나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때 과연 어떻게 대답했어야 좋았을까. 나의 질문에 친구들의 답이 갈렸다.

T발 나 C야를 외치던 승준이 내 대답을 지지해 주었으나, 그건 오히려 내게 내려진 또 한 번의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그가 내게 공감했단 사실은, 나 역시 그처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감정이 부족한 사람이란 증거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사실 나는 애초에 승준의 대답을 기대하고 카톡방에 물음을 던졌던 것이 아니었다. 사실 기대했던 건, 사회생활 만렙 희윤의 대답이었다.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에서도, 그의 주변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고 나는 내심 그 모습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그의 대답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마치 ‘인간관계 교과서’에 실릴 법한 모범적인 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작, 어때. 잘 어울려? 라니. 마치 how are you? 란 물음에 fine thank you and you? 라 말하는 것처럼 낯간지럽지 않은가.

나는 어쩌면 인싸로 가는 길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좌절하고 절망했다. 하지만 내겐 아직 참고할 수 있는, 두 명의 대답이 남아 있었다.


평소에 맬 일이 없긴 하지~

최근 사회생활, 특히 젊은 새대와의 소통에 눈을 뜬 기종의 대답은 그나마 가장 무난했다. 그 정도로 대화 나눌 수다면, 중간은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뻔한 대답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 부드러우면서도 다정한, 상대방의 관심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그런 특별한 스킬. 그러니까 내가 얻고자 했던 건 아는 사람만 아는 노하우였다. 하지만 기존 나의 대답을 타박하며, 이건 좀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그의 말을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하다 못해 기종의 대답엔 친절함을 상징하는 물결이라도 붙어 있지 않은가.


내 마지막 희망 지수는 딱 지수스러운 대답을 해주었다.

으 개 어색함.

문자를 보자마자 나는 멋쩍게 웃으며 민망해하는 지수의 익숙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 말을 들으면 누군가는 다시 한번, 아니라고 하나도 안 어색하고 잘 어울린다는 대답을 해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역시 내 기준엔 충분치 않았다. 지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 특히 나 같은 사람이 그런 말을 뱉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겐 좀 더 나와 어울리는 답이 필요했다.  


이날의 대화는 별 소득 없이, 결국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 하며 비방만 하다 끝이 났지만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과연 다른 사람들은 상대방의 관심을 어떻게 받아내고 반응하는지. 외향적이며 활기차고 낙관적인 성격의 ENFP라면 더 나은 답을 알고 있을까? 그럴리야 없겠지만,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내게 정답을 알려 주었으면 좋겠다.


언제고 대화 나누고 싶은 다정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기란 역시나 쉽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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