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아. 새끼야.
모름지기 찐친이라면 그리 불려야 한단 말이, 나는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짜 친구라면 아껴줘야지. 상처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배려해줘야지. 미안하단 말에 ‘뭘 미안혀.’라고 말해 줄 수도 있어야지.
한적한 별장을 닮은 지수네 집에 모여 2023년을 마무리하기로 한 날, 하필 세상 끝날 듯 어마어마한 양의 눈이 내렸다. 평소라면 절대 나서지 않았을 길을 엉금엉금 달려 겨우 도착하니, 운전하는 내내 나를 죽일 듯 덮치던 거센 눈발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거실 중정의 함박눈이 우리를 반겼다. 소복소복 눈 쌓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별다른 걱정 하나 없이 편안했던 적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17살 혹은 27살의 나로 돌아가 멍청한 농담이나 하며 시시덕 거리는 기분이란 언제나 완벽하다. 나는 문득 평소에 내가 멋 부리며 자주 하던 말, 나이가 드니 친구는 굳이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단 말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4시 즈음 떠난다고 해놓고는 1시간을 더 머물렀다.
올해는 작년과 달랐던 것 같아. 뭐랄까 작년엔 작은 희망 같은 것을 봤다면 올해는 ’나‘를 조금 회복한 느낌이 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유현이에게 말했다.
정말 거짓말처럼 도로 위의 눈이 모두 녹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