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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Dec 30. 2023

폭설이 내린 날의 송년회

병신아. 새끼야.

모름지기 찐친이라면 그리 불려야 한단 말이, 나는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짜 친구라면 아껴줘야지. 상처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배려해줘야지. 미안하단 말에 ‘뭘 미안혀.’라고 말해 줄 수도 있어야지.


한적한 별장을 닮은 지수네 집에 모여 2023년을 마무리하기로 한 날, 하필 세상 끝날 듯 어마어마한 양의 눈이 내렸다. 평소라면 절대 나서지 않았을 길을 엉금엉금 달려 겨우 도착하니, 운전하는 내내 나를 죽일 듯 덮치던 거센 눈발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거실 중정의 함박눈이 우리를 반겼다. 소복소복 눈 쌓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별다른 걱정 하나 없이 편안했던 적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17살 혹은 27살의 나로 돌아가 멍청한 농담이나 하며 시시덕 거리는 기분이란 언제나 완벽하다. 나는 문득 평소에 내가 멋 부리며 자주 하던 말, 나이가 드니 친구는 굳이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단 말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4시 즈음 떠난다고 해놓고는 1시간을 더 머물렀다.


올해는 작년과 달랐던 것 같아. 뭐랄까 작년엔 작은 희망 같은 것을 봤다면 올해는 ’나‘를 조금 회복한 느낌이 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유현이에게 말했다.


정말 거짓말처럼 도로 위의 눈이 모두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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