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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윤영 Apr 30. 202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복음의 시작은 예수그리스도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 제정신으로 하느님을 본 자는 없다. 여기서 제정신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병상에 있거나 혼수상태에 빠져 정신적 육체적 혼란과 착오 속에서 본 것이 아닌 말 그대로 건강한 일상 가윤데 하느님을 본 자룰 말한다.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 존재를 믿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따라서 믿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믿음의 증거가 되고 실체화되는 것은 성경일까. 아무튼 기독인들은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성경은  서규 고대인들의 신에 대한 신념이나 가치관이 담긴 문헌이다. 그렇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많이 읽히는 고전문학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니라 이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느님이 이시니라(요한복음 1:1) 이 말씀을 믿는 자들에겐 하느님의 자녀화가 이루어진다. 그것은 권세이고 사람의 의지나 뜻이 아닌 오로지 하느님에 의한 자녀화이다. 세상의 혈통으로도 아니고 육정으로 기인한 것도 어니다. 그것은 은혜이고 진리이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그리수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예수는 누구인가. 독생하신 하느님이다.


예수를 인간으로 본다면 기독교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는 반드시 신이어야만 한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무지 쉽다. “영접하는 자 곧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 “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믿는다는 것에 대한 자기 자신을 향한 심각한 질문의 태도와 솔직한 답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함께 가는 고행이 따른다고 하는데... 꼭 그래야만 할까. 예수를 믿음으로 그런 고행보다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소망이 이루어지고 기쁨 속에 우리는 보다 행복하고 살만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다시 사는 기쁨보단 여기 이 자리에서 만나는 모든 이웃들과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믿음은 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 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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