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교사 정쌤 Jun 03. 2024

빈둥거리는 연습이 필요해

치유와 성장을 위한 글쓰기 

퇴근길에 ㅈㅇ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오랜만에 언니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나보다 먼저 아팠고 나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면서도 또 애쓰고 있는 언니이기에 언니가 하는 말을 그저 듣고 싶었다.(언니는 나보다 먼저 갑상선암 수술을 했고 가정과 학교 모두 잘하고 있다.)


"언니, 잘 지내요? 언니 몸도 괜찮은지 궁금하고 목소리도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응, 잘 지내지. 너도 잘 지내? 쉬엄쉬엄해야 해. 이제 쉬는 것도 배우고 빈둥거리는 시간을 잘 가져야 해. 안 그러면 아파."

"그러게요. 언니. 근데 또 일을 하고 학급 담임을 맡으니 예전처럼 일을 하고 있어요. 어느 날은 내 몸의 에너지를 너무 써서 내가 명줄 줄이면서 일하는구나 싶은 느낌이 드는 날이 있어요. 기력이 달리는 날이요. 언니는 어때요?"

"나도 알지. 나이도 들고 우린 수술도 해서 더 기력이 달리지. 그러니까 퇴근 후에는 빈둥거려야 해. 예전에는 사람들이 드라마 몰아보기 하는 게 이해가 안 갔는데 요즘은 퇴근 후에 누워서 쉬면서 텔레비전도 보거든. 이제 이해가 되는 것 같아. 일부러 빈둥거리며 쉬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쉬어. 쉬어야 해."

"아, 그래야겠어요. 이번 주 좀 피곤하게 보냈어요. 오늘은 푹 쉬어야겠어요."

" 00이랑 6월에 한 번 보자. 주말에라도 얼굴 봐야지."

"하하하. 언니 방학 때 하루 날 잡아서 온종일 봐요. 찔끔 보는 거 별로예요. 길게 편안하게 봐요."

"그래, 그러자. 건강 잘 챙기고 잘 지내."

"네, 언니도 잘 지내요. 곧 봐요."

"그래, 있어."


언니의 "그래, 있어."라는 말이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그냥 거기 잘 있으라는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오늘 왜 이렇게 몸이 가라앉고 힘들었을까? 일주일 동안 조금씩 힘들었던 게 누적되어 나타났다. 남편 없이 집안일하고 아이들 케어하느라 조금 더 피곤했다. 그리고 우리 반 학생들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기대를 하는 것은 부작용이 많다. 이렇게 기운이 빠지는 일이 너무 많이 생긴다. 그냥 해야 하는데 기대를 갖고 했다. 하고 기대를 갖게 되었는지 기대를 갖고 하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기대를 가졌기에 실망과 함께 마음이 괴로웠던 것 같다. 제일 영향을 받은 것은 아이들에 대한 기대이다. 기대하지 말고 그저 해주고 지나가야 하는 데 아직 멀었다. 아직 정신 수양이 더 필요하다. 


수양하는 마음으로, 초연하게, 자유로움에 다다르기 위해 침묵과 명상을 하며 나를 잘 갈고닦기, 그래야 학교에서 나를 쥐어짜지 않는다. 조금 더 내려놓고 빈둥거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쉬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쉼을 해야 하는 때이다. 더 오래가기 위해서, 아니 더 건강하게 가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빈둥거려야 한다. 

2024.05.30. 목.

매거진의 이전글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