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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글이 꿈의 지도가 되어

by 쓰는교사 정쌤

하얀 눈길 위를 걷다가 뒤돌아서 내 발자국을 바라본다. 비뚤비뚤 걷지는 않았는지 어떻게 걸어왔는지. 눈길 위의 발자국을 바라보듯 내가 쓴 글을 읽으며 그 순간의 내 마음이 어떤 발자국을 찍었는지 살펴본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4년이 지나다 보니 블로그에는 항상 ‘n 년 전 오늘’ 쓴 글이 올라온다. 작년에 쓴 글이 올라온 어느 날 그 글을 읽으면서 마음의 방향키를 잘 잡고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한 잎이 파릇파릇 올라와 맑은 연둣빛이 나무를 감싸고 있는 어느 주말 아침의 글이다. 사춘기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따뜻한 바닐라 라테 한 잔을 사 오면서 초록빛 나무를 바라보며 ‘이대로 참 좋다’ 느끼던 때였다.


'순간 내가 요즘 글을 쓰지 못한 이유가 지금 내 안에 차오르는 평화 때문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굳이 글로 쓰지 않아도 내 안에서 샘솟듯 나오는 그 마음 덕에 괜찮아서 입 밖으로, 마음 밖으로 말과 글을 꺼내놓지 않아도 괜찮아서.

그 마음이 뭔지 몰랐는데 그랬던 것 같다. 예전에는 글로 써내고 말로 이야기해야 속이 풀렸는데 이제는 내 안에서 솎아버리는 느낌이다. 물론 다 그러지는 못하겠지만. 예전보다 달라진 것은 내 안에서 정리하고 무엇이 나에게 맞는지 결정한다. 조언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지만 내 마음을 더 잘 들여다보면 해결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있다. (...) 내 마음에 자리를 마련하기에 아까운 사람들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그냥 흘려보내기.

(중략)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그 꿈을 꾸며 실험을 한다. 올해는 내가 많이 내려놓으면서 무리 없는 학급경영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선생님은 여전히 꿈을 꿉니다. 선생님의 생각이 너무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여러분이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서로를 위해 규칙을 지키고 질서가 있는 우리 반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친구는 안 하는데 나만 청소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거 여러분이 잘하는 거예요. 친구가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거지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몫을 잘하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이 알아요. 선생님이 말을 안 하지만 여러분이 어떻게 지내는지 다 알고 있어요. 선생님은 언제나 여러분을 지켜보잖아요. 그러니 자신의 손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렇게 자신의 몫을 잘하는 사람들은 더 큰 나(무의식의 나)를 더 잘 가꾸는 거예요. 그럼 작은 나(보여지는 나)가 조금씩 변하게 돼요. 여러분이 한 행동은 어디에 안 가요. 그러니까 우리 자신의 몫을 잘하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 봅시다. 규칙은 서로를 위해 지키는 거예요. 알았죠?"


이 말을 알아듣는 학생들을 위해 해준다. (...) 나를 지금 버티게 하는 것은 교사의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다. 재잘재잘 나를 잘 따르는 아이들을 볼 때면 내가 조금이라도 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너무 거창하지 않아도 그냥 작은 쓸모 있음에 감사를 느낀다. (...)'

[1년 전 글, 2024. 4. 20]



1년 전 글을 읽으면서 그때의 내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애써도 안 되는 것들과 마주할 때 오는 허무함을 이겨내고 다시 나의 쓸모를 발견한 순간이 내 인생의 좌표 위에 점 하나로 찍혀있다. 또 다른 점으로 찍힌 글에서는 내가 원하는 하루의 삶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지난주까지는 뭐에 바쁜 듯 쫓기는 느낌이었다. 벚꽃 보는 것마저 벚꽃이 지기 전에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했다. 이번 주 학부모 공개수업을 만족스럽게 하고 병원에 검사도 제시간에 도착해서 잘 받고 오니 나 스스로 기분이 참 좋았던 것 같다. 마치 100m 달리기를 이제야 마치고 바닥에 앉아 숨을 들이쉬고 있는 것 같다. 동동거리던 내가 원하던 결과를 얻었기에 누리는 편안함이다.

이 순간의 맛을 알기에 무슨 일을 할 때 내 노력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로 어떤 성적을 받든 노력이 남아있는 그만큼 후회를 하기에. 노력을 다 하면 미련이 없다.

요즘 나의 모토는 '걸림이 없는 하루를 살자'이다. 자려고 누울 때 내 마음에 잔상이 남지 않기를 바란다. 노력을 다하지 못해서, 학생들을 지도에 열정이 지나쳐 화를 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노력이라는 말은 애씀이라기보다는 지금, 여기에 충실한 태도를 말한다. 내가 그 순간 거기에 있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 순간 거기에서 그 일을 진심으로 하느냐.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충실하기, 그리고 거기에 지나침이 없게 하기. 지나침이 없으면 걸림이 없다. 돌아서서 이불킥할 일이 없다. 그런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1년 전 글, 2024. 4. 20]


1년 전 쓴 두 개의 글을 읽으면서 그때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 바르게 방향을 잡아서 실천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과 함께 꿈꾸는 교실을 실천하고 ‘걸림이 없는 하루’를 살아내려고 한 덕분에 내적 성장을 많이 이루었다. 내 영혼의 충만함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그 덕분에 자기경영노트 5기에 참여하고 이종대왕 연수를 들으며 단단학급경영 채팅방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학급경영과 수업에 좋은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받고 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해서 더 좋다.

학기를 시작하며 아팠던 덕분에 이젠 나의 몸과 마음의 체력적 한계도 알게 되어서 너무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몸의 무리뿐만 아니라 마음의 무리까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예전에는 '왜?'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 이제는 '그렇구나' 하고 있다. 나와 정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도 '그렇구나'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나와 다른 생각으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질 필요도 없고 그 또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의 절반은 나와 다르고 세상은 다양성이 존중될 때 유지된다.


다만 내가 중점을 두기로 한 것은 내 곁에 나와 같은 방향을 보고 가려고 하는 사람을 두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교사들 곁으로 나를 놓아두었다. 뭐라도 해서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 곁에 내가 서있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실천했더니 함께 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내가 많은 위로와 영감을 받고 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것처럼 지금 내 주변 환경이 힘들다면 의도적으로 환경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직업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을 온라인으로라도 곁에 두는 것이 아주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롭게 시작할 용기, 다시 시작할 용기, 실패할 용기, 더 많은 사랑을 줄 용기, 더 많은 일을 할 용기, 더 많이 배려하는 용기를 내고 있다. 이번 달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학부모 공개수업을 준비하면서도 동학년과의 협업, 그리고 자료 나눔, 배움 나눔을 하고 학부모에게도 더 기꺼이 나누고 학생들을 향한 마음을 내주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남들에게 잘 보이고자 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내 마음에 들고 싶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내 마음이 편안해져서였다.


1년 전의 글을 읽으면서 그래도 내가 방향키를 제대로 잡고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내 생각을 이렇게 기록해 본다. 이 글 또한 내년의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글은 그 무엇보다 삶을 살아가면서 내 지도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기준, 데이터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니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고 궁금한 것들에 대하여 책을 읽고 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내 앎이 나에게서 끝나지 않고 나의 자녀, 나의 학생들에게 흘러갈 수 있어서 더없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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