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생일
결혼한 지 12년이 넘은 세월 동안 아무리 싸우고 냉전 중일 때여도 남편이 항상 지키는 것이 있다.
생일 때 미역국 끓여주기
남편의 미역국이 내게 의미하는 것은 크다.
왜냐하면 남편은 아침잠이 정말 심하게 많은데, 그걸 포기하고 출근 전 아침에 일어나서 미역국을 챙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요알못인 남편이 유일하게 요리라고 할 수 있는 '국'을 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의미는, 다정 다감하기보다는 다소 무뚝뚝한, 빈말이라고는 절대 못하는 남편이 나를 향해 보여주는 꾸준한 마음 씀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도 하기 싫어서 서로 냉랭함을 유지하고 있던 때에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미역국을 끓이고 있는 뒷모습. 그는 "미안하다. 화해하자" 이런 말을 먼저 다가와 표현하지 못해도 이런식으로 마음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결혼한 지 4년째 되던 해의 내 생일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남편이 아침에 생일 미역국을 챙겨주었다. 늘 밥과 국, 단출한 두 그릇뿐이긴 했지만 그 어느 밥상보다도 늘 내 마음을 꽉 채워주는 두 그릇의 상이었다.
"으악~ 나 늦겠다, 빨리 나가자!"
4년째 생일 미역국상을 받다 보니 배가 불렀는지, 나는 고마움을 전할 틈도 없이 이렇게 말하고 황급히 출근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아침밥을 거르고 출근하기 일쑤였던 우리는 오래간만에 아침을 챙겨 먹다 보니 늦어졌고, 당시 우리 부부는 함께 차를 타고 출근을 했는데 몇 분만 늦어도 막히는 구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차장으로 내려와서 부랴부랴 차문을 여는 데 계기판에 어떤 흰 정체가 눈에 들어왔다. 엇, 뭐지?
남편이 쓴 생일 카드였다.
"어, 이거 뭐야?"
실실 새어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그리고는 얼른 꺼내서 보려고 했더니 남편 왈,
"나중에 보고 어서 운전이나 하세요~"
자신의 이벤트가 성공했음을 직감하고 뿌듯한 표정을 뒤로한채 또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그였다. 나는 일단 시동을 걸었고, 먼저 도착하는 남편의 직장에 그를 내려 주었다.
그리고는 카드를 봉투에서 꺼내어 바로 펴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귀여운 곰돌이 홀마크베어 카드. 그리고 빼곡히 쓰여 있는 생일 축하 메시지.
빈말 못하는 남편의 귀여운 이벤트에 일터로 향하는 길이 즐거웠고, 직장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피로가 가신 느낌이었다.
결혼한 지 12년이 넘은 지금은?
희한하게도 남편의 미역국 끓이는 솜씨는 늘지 않았다. 대신 남편은 작년에 기가 막히게 잘하는 미역국 집을 찾았다. 가자미 미역국과 갈비 미역국이었는데 보글보글 끓일 때 향부터 남다르더니 역시 일품이었다. 양도 많아서 같은 달에 생일이 다 있는 우리 가족에게 딱이다!
이제 나이가 먹었나 보다. 맛없는 정성보다는 맛있는 정성이 더 좋은 걸 어째~
그땐 그랬지♬
[Magazine - 그땐 그랬지]
*위의 글 메인에 떠서 많이 읽어주셨더라고요. 감사합니다. '그땐 그랬지' 브런치 매거진 만들어서 지난 기억들을 써보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