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필요한 순간
어느 시인의 말처럼
새는 날아가며 뒤돌아보지 않지만
사람은 아쉽게도 과거의
추억과 후회로 점철된 동물이다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면 새삼
시간의 강력한 영향력에 놀랄 때가 많다
과거에 정말 힘들었던 순간들도
시간이 쌓여 희미한 모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걸까
흘러가는 모든 시간들은 과거가 되고
과거들은 기억의 쇠퇴로 점차 옅어진다
그래서 사람은 어떠한 아픔도 불행도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시간은 보약이라는 것
하지만 모든 일에 절대적인 건 없는 법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지울 수 없는 상처의 흔적을 보여주며
내 예상을 가볍게 뒤집은 영화이다
어떤 상처는 치유가 안 되는 고통이다
극복할 수 없는 아픔
사람은 그걸 지닌 채도 살아갈 수 있다
주인공 '리'는 고향 맨체스터를
떠나 보스턴에서 살고 있다
맨체스터에서 본인의 인생을
송두리째로 바꾸어버린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리'는 형의 죽음으로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매 순간 상처가 떠오른다
그의 옆에는 형이 부탁한 조카 '패트릭'이 있다
나는 영화가 자연스레
남겨진 둘이 서로 위안이 되어주며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으나
영화 속에 극복과 성장은 없었다
단지 하루하루 버텨내는 사람이 있을 뿐
'리'가 고향으로 돌아와
살고 싶은 이유가 없었음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조카 덕분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가치관이나 생각의 차이로
위로나 힐링이 되어주는 존재는 아니지만
옆에 있어주는 사람의 존재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다면
상대는 어떤 조언도 힐링도
필요 없는 상태일지 모른다
다만 당신이 함께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한국에는 4월이 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어떤 아픔은 때론 영원히 안고
묵묵히 살아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