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phine in Paris, 1
Josephine in Paris, 1
글 조세핀 (앙상블리안 칼럼니스트)
피아니스트의 고질병
악기, 특히 피아노를 쳐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와르르 쏟아지는 엄청난 개수의 음표들을 손가락으로 잘 정립하려면 정말 오랜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험이나 연주를 앞두고 눈물을 삼키며 머릿속에 꾸역꾸역 악보를 쑤셔 넣는 과정은 정말 극한의 인내심이 필요하 다. 그런데 이런 고된 시간을 몇 번 거치면 피아니스트는 이상하게 정신력이 강해진다. 연습 은 언제든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뭐든 연습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 치 피아노처럼 수천, 수만 번의 반복을 거치면 인생의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 다.
“Je suis pianiste de Corée.”
서른넷, 마냥 어리다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나이. 아무리 백 세 시대라지만 삼십 대 중반이 되면 어리다는 말보다는 젊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물론 늙은 것은 아니다. 박완서 선생님은 “젊다는 건 체력이나 용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과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옳지 못한 일에 분노하고 부조리에 고뇌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을 말한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나는 현재 내 정신의 능력이 젊음의 한가운데, 그것도 최 정점에 있다고 믿고 서른넷에 유학을 결정했다. 심지어 한국의 음악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하 던 중 휴학을 하고 나온 것이다. 젊은 중년보다는 아직 나이 먹은 청년일 때 무언가 인생을 건 도전을 해 보고 싶었다.
온실 속 화초
패기 넘치게 프랑스에 유학을 온 바로 첫날, 나는 바로 그날 밤부터 무너졌다. 나는 내가 그동안 그토록 곱게 살아왔는지 전혀 몰랐다. 늘 가족, 식구, 또는 고양이와 함께 산 것만으로도 그간 내 삶은 공주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전혀 모르는 곳에 오롯이 나 혼자, 세 개의 캐리어를 끌어안고 덩그러니 남겨진 그 순간.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강렬한 두려움을 마주했다. 집 주위에는 무언가 수상한 걸 피우고 있는 집시들이 모여 있어서 물 한 병 사 러 나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곳, 더구나 원활하지 못한 언어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공포는 점차 생존의 문제로 부풀었다. 살면서 외로움을 겪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그간 크고 작은 고독을 종종 경험했지만, 이번 것은 완전히 그 규모가 달랐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궤적들이 갑자기 모두 까마득하게 멀어지고 작아졌다. 내가 피아노를 공부하러 왔다는 사실마저도 흐릿해졌다. 당장 깨끗한 물 한 모 금 마시지 못하는 어리석은 이방인에게 피아노, 음악, 예술 따위는 하찮은 것이 된다. 내가 지 금 여기서 당장 다치거나 아프거나 죽더라도, 그 어떤 험악한 일이 일어나도 나는 진정 혼자 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 나는 여기서, 정말로 혼자다. 내가 아는 사람은 모두 약 9천 km 너 머에 떨어져 있다. 문득 숨이 안 쉬어진다. 내가 이렇게 진짜로 혼자였던 적이 있었나?
홀로서기
두 달간 학교 오디션, 어학원, 집, 각종 행정 문제 등으로 바빴지만, 내가 유학 생활을 이어 나가려면 결국 마음이 진정으로 홀로 설 수 있어야 했다. 나는 사람이 주위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는 데에도 이렇게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한지 몰랐다. 첫 한 달은 듣는 것, 보는 것, 먹는 것, 사실 그 어떤 감각에도 명확하지 못했다. 낮엔 밖에 나가 파리의 아름다움을 즐기려고 노력했지만, 감각이 둔해져 있으니 있는 그대로를 진심으로 만끽할 수가 없었다. 밤이 되어 집에 우두커니 혼자 있으면 공포가 선명해지며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눈물은 점차 어둠을 뚫고 나왔다. 낮에도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지곤 했다. 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자꾸만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싶었다. 그들의 존재를 쉼 없이 나 자신에게 각인해야 했다. 내가 타지에 혼자 있다는 것을 잠깐이라 도 잊고 싶었다. 여기서도 일상의 반복은 차츰 자리를 잡아갔지만, 매일 마주하는 불안은 나 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어지기만 했다. 이상하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방향을 올바르게 잡고, 반복해서 연습하면 해결되던데. 이건 내가 여태 봐왔던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연습으로 안 되는 것
나는 목표하던 음악원에 안정적으로 합격했고, 낯설었던 집을 내 방식대로 꾸미며 최대한 정 을 붙여나갔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매일 요리해 먹었다. 그러다 보면 가끔 기분은 좋아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마음은 고독감에 매일 진동한다. 아무리 따뜻한 옷을 입고 차를 마셔도 마음의 냉기가 감싸지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이 차가운 집에서 나 혼자 의식주를 해결하는 이 현실의 시공간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루에 수십 번씩 모든 걸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 내 사람들을 마주 보고, 만지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삶을 공유할 수 있는 따뜻한 나의 모국. 유학을 나오기 전에는 내가 외로 움을 타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것은 아마 내가 물리적으로 정말 혼자 있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연습의 힘을 맹신하던 오만한 피아니스트에서 삶 앞에 평등하게 나약한 한 작은 인간이 되었다. 나는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하다. 이 당연한 명제를 그간 알면서도 사실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마도 존재하는 이유의 범위를, 누리고 있던 것에 대한 감사를, 궁극적으로는 사랑의 크기를 매우 넓혀나가는 유학 생활이 될 것 같 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연습으로는 안 되는 것 같다. 그저 어떤 계기로, 뼈저리게 깨닫는 것뿐이다. 그것이 마음의 틀을 송두리째 바꿀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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