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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전 입대날 일기를 10살 아들에게 읽어주다가.

지금 당장을 기록해야 할 이유

저녁 자기 전 침대에서 아이들에게 내 일기장을 읽어주곤 하다. 


오늘은 뒤적거리다 보니 2006년(무려 18년 전이다), 군입대 하던 날의 일기가 눈에 밟혔다. 아직 두 아들은 군대 가려면 10년은 족히 남았지만, 오늘만큼은 내 기분에 취해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10살 첫째는 꽤 궁금해한다. 


2006년 9월 26일
"306 보충대대로 아침에 출발했다(부산->경기도). 드디어 입영일이다. 혼자 와서 외롭다. 시간을 잘못 맞춰서 집에 연락을 빨리 못한 게 아쉽다. 점시 먹고 전화해야겠다. (...) 짜장면 한 그릇을 후딱 먹었다. 의외로 맛있다. 피시방 가서 싸이홈피 글이라도 남기려 했지 나 벌써 늦었다. 어머니께 전화드리고 얼른 연병장으로 가야지? 

입영하는 첫날 기억에 남은 것은 '기다림'과 '낯섦'이다. 그 거대한 창고 같은 강당에서 건장한 장정 1400명이 쭈그려 기다렸던 일, 서로가 낯설었던 것. 앞으로 어떤 사람을, 어떤 일을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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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반응을 보인다. "아빠 나 그거 알아. 싸이월드. 유튜브에서 봤어" "군대가 어디에 있어?" 등이다. 적극적이다. 나름 흐뭇하다. 당연하지만(?) 와이프는 내가 군대 이야기를 하면 싫어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 군대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준다! 


"이야기가 더 있는데 이건 다음에 또 읽어줄게" 


좀 아껴둬야겠다. 신병교육대까지 일기는 있는데 본대 가서는 일기가 없다. 아마 누가 보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쉽게 쓰지 못했을지도. 기억을 되짚어볼 때 생활관 생존에 치여서 쓸 겨를도 없었을 것 같긴 하다. 


군대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쓴 게 아닌데 또 조금 흥분한 듯하다. 일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별 것 아닌 오늘 같아도, 지금 당장 일기를 써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20년 전, 10년 전 일기를 이렇게 다시 읽다 보면 꼭 이런 생각이 팍팍 든다. '좀 더 자세히 써둘걸'이란 아쉬움이 항상 든다. 40대의 내가 20대의 내 일상이 궁금하다. 읽기 전에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읽고 나서는 어디 꽉 막혀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하던 기억들이 몽글한 감정과 함께 확 쏟아져 나온다. 희한한 기분이다. 흥미로운 드라마나 영화 못지않다. 노스탤지어라고 부르는, 그런 또 다른 종류의 재미가 내가 직접 쓴 일기에 베여있다. 


영상기록이나 사진도 그런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글은 특히 나 자신의 옛 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거기에 더해 혼자 쓰는 일기는 인스타나 블로그 같은 공개일기에 비해 더 솔직하게 쓸 수 있다. 드러내지 못할 사생활도 담을 수 있는 것이 혼자 쓰는 비공개 일기, 비밀일기의 묘미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지금 당장의 일상은 기록할 가치가 별로 없게 느껴진다. 20년 전 일기를 처음 쓰기 시작하던 나도 그랬다. 당시에는 반성일기를 썼는데 그래서 일기장에 반성 외의 내용이 없다. 짧게라도 반성할 거리 외의 것들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일상이란 것은 매일 반복되는 것들의 합이다. 그리고 반복되는 것들은 당연히 여겨지기 마련이다. 당연한 것은 잘 인식되지 않는다. 반복은 소중한 것과 하찮은 것을 가리지 않으니 반복되어 당연히 여겨지는 것 중에는 분명 소중한 것도 섞여있을 것이다.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는 그런 것들을 건지게 해 준다. 미래의 나에게 소중한 지금을 전해줄 수 있다. 그러면 미래의 나는 자기 자신과 미래의 내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들을 또 전해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자기 전에 두 아들에게 22년 치의 일기를 전해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7살 둘째 아들도 재미를 보았는지 "아빠 오늘 이야기는?"이라고 매일 물어본다. 22년 전 처음 일기 쓰기를 시작할 때는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보상이다. 


그래서 지금 40대의 삶을 예전보다 더 꼼꼼히 기록중이다. 어디 사람들에게 내놓을만한 자랑거리 없는 일상이라도, 드라마 같은 극적인 반전과 엎치락 뒤치락 하는 역동적인 플롯이 없는 일상이라도 말이다. 이런 습관이 잡혀있으면 때로 드라마같은 극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잊지 않고 기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작은 팁을 한 가지 드리자면, 시간순서에 따른 객관적인 이야기 묘사 후 인상 깊은 사건이나 소감을 쓰는 것을 추천한다. 20대 나의 일기장을 보다 보면 그 부분이 아쉽다. 위에서 언급한 반성일기처럼, 일기 쓰는 순간의 관심사에만 한정된 일기가 많아서 당시의 일상을 살펴볼 수가 없다. 오전엔 누굴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오후에는 무엇을 공부했고 어떤 곳에 갔는지 등 말이다. 지금 내가 일기를 쓰는 방식이다. 과거의 나에게 꼭 알려주고픈 일기 쓰기 방법이다. 


일기를 쓰고자 마음먹으신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아래 링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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