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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울 때도, 기쁠 때도 일기를 쓰는 이유.

고통의 일기는 사실 자연스럽다. 당장에는 힘든 현재 상황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일기이기 때문이다. 대중에 노출된 연예인들이 인텨뷰에서 종종 일기를 오래 써왔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일기의 장점 때문일테다. '심리적 생존' 기술이랄까. 연예인은 아니라지만 우리도 특히 직장 같은 곳에서는 얼추 '준-연예인'처럼 행동해야한다.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 의해 시도 때도 없이 평가받게 되고 어디 쉽게 털어놓지 못할 말들이 쌓이니까 말이다. 이럴 때가 일기와 친분을 틀 수 있는 기회다.


반면 기쁨의 일기는 생각보다 자연스럽지 않다. 별 문제 없이 즐거운 순간에는 그 자체로 그저 만끽하고 싶다. 그 순간에 기록하고 남기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럴 땐 그저 간단하게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그 순간을 남긴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우울하고 고통스러울 때 사진이나 영상을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통은 문자로 남고 기쁨은 이미지로 주로 남는 것 같다.


최근에는 가족여행이나 나들이 일기를 더 세세하게 쓰려고 의식적으로 애를 쓴다. 자기 전 두 아들(초4, 초1)이 나의 일기를 읽어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 때 여행이나 나들이 이야기를 읽어주면 상당히 좋아한다(잠도 빨리 들고!). 최근 몇년 사이 가족 나들이나 여행은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핫한(?) 가족 제주여행 일기. 일기는 기본적으로 구글캘린더(좌)로 쓴다음 PDF(우)로 인쇄해서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왜인지 과거 일기일수록 경사, 좋은 일에 관한 일기가 별로 없다. 분명 기억에 남는 꽤 좋은 순간들이 있는데 말이다. 22년 전, 20살부터 쓴 일기인데 그때부터 이런 모든 즐거운 순간들이 꼼꼼하게 다 기록되어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싶다. 물론 아직은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니 내 일기 속 인생격통에 관한 깊은 이야기들을 할 수 없다. 그러니 당장 아이들에 대해서는 일기장의 장점이 발휘될 기회가 없었기에 더욱 그리 느끼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희노애락이 균형있게 기록되었다면 더 좋았겠다 싶다.


이제 40대다. 일기가 더 정교해진다. 그런데 그럴수록 한편으론 일상을 이리 자세히 기록하는게 뭔 쓸모인가 싶을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아이들에게, 나 자신에게 이렇게 일기를 다시 읽어줄 때 사라진다. 즐거운 드라마나 영화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날것의 이야기, 내가, 우리가 직접 맛본 경험의 이야기는 묵혀두다 잊혀진 즐거움을 다시 끌어내 준다.


지금 내가 잘 써두면 분명 몇년 뒤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감사하겠지.


대학생이 된 두 아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알고 싶다고 할 때 이 일기가 좋은 이야기 보따리가 될 수 있겠지.


지금은 생생하다고 여기는 기억들이 시간을 먹고 헤어져 바스라져갈 때 이 일기장이 그걸 메꿔주고 기워주겠지.


일기를 다시 읽다보면 지금 쓰는 일기가 미래에 어떤 가치를 가질지 엿볼 수 있다. 과거의 나에게는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일기를 다시 읽는 순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뒤섞이는 묘한 순간이기도 하다.


괴롭든, 즐겁든 일단 기록으로 남기면 미래의 나에게 좋은 선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에게 나눠 줄 수도 있을 것이고.




[펜메모덕후의 일기쓰기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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