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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평가하는 말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내 인생의 전문가 되기

나는 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은 생각보다 쉽게 평가대에 오른다. 공인이 아닌 이상 직접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가 그리 많진 않겠지만 간접평가는 꽤 흔하다. 예를 들면 누가 무엇해서 크게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여태 난 뭐 했지?'란 말이 툭 튀어나온다. 그 성공한 사람이 내게 뭐라고 직접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알아서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이다.


ChatGPT4한테 부탁하니 이런 것도 그려준다.


'크게 성공했다'라는 평가는 대게 다수의 기준을 통과야 주어진다. 즉, 거기에는 거대한 한국사회 또는 내 주변 사람들의 판단이 스며있는 것이다. 홀로 하는 평가같아도 그 뒤에는 거대한 무리가 있다. 실패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재산과 명예라는 획일적인 평가기준도 숨 막히지만 무엇보다 성공과 실패 이전 과정에 대해 세세하게 들어줄 시간과 여유는 희귀하다. 물론 그를 성공케해준 이유 두어가지 정도야 흥미롭게 들어볼 의향은 있지만 밋밋하며 길고 긴 과정의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아니, 현실적인 한계로 다 들어줄 수 도 없다. 잠깐 듣다가도 "그래서 뭐?" "결론만 말해라"란 말로 이야기는 차갑게 토막 나기 마련이다.


구구절절하게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만큼은 나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결론만 잘라 듣는 거대한 집단적 사고가 내재화되는 걸 막아보자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마저도 과정 다 자르고 결론말 말하라는 식의 태도는 취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잘 들어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되려 간결하고 정확하게 내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더 잘 전달 할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요약하는 것이랑 책의 몇장만 대충 읽고 요약하는 것은 다르다. 둘다 짧지만 책의 핵심은 전자의 경우가 더 잘 집어낼 것이다. 일기쓰기로 내 인생이란 책을 전체적으로 읽고 있는 사람도 그러하다. 


나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원인을 고민할 때도 인생 책을 전체적으로 읽은 사람과 부분적으로 읽은 사람의 차이는 클 것이다. 운으로 얻은 성공을 내 실력이라고 오해하지 않는다. 반대로, 내 실력이 발휘되었음에도 운이라고 우기는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즉, 내 삶이 지금 왜 이런 것인가에 대한 엉뚱한 원인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나 자신을 포함해서!) 바로 잡아줄 수 있다. "네가 퇴사한 이유는 결국 나약해서가 아니냐"는 단순한 결론에 대해 직장생활 2,000쪽짜리 일기장이 스며든 대답을 할 수 있게 된다. 구구절절 내 이야기를 내가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면 "네 결국 그런 것이겠죠"라며 심지어 나 자신도 휘말릴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나약함'이라는 딱 한 가지 원인만 부각하다보니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워서 그렇다. 쉬운 것은 때로 강력하다. 그리고 타인의 인생을 구구절절 모른다는 무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목소리에 더욱 자신감이 붙어 그 단순함에 힘이 더해진다. 간결하고 힘있고 자신감에 가득찬 큰 목소리로 누가 이런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 옆에 듣는 사람들도 쉽게 휩쓸린다. '그런 결론을 어디 쉽게 낼 수 있겠는가?'라며 확신에 찰 만한 이유가 있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강력한 목소리에 동화되며 공명음이 나기 시작한다. 의도적으로 대중을 선동할 때도 자주 쓰이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사건의 한면만, 사건의 한가지 원인만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것 말이다. 


역사를 배우는 학생이라면 단 하나의 원인만을 찾아내려는 것이 잘못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상황은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일어난다.

J. Salevouris, Michael, 역사학의 방법과 기술 : 실용지침서(The Methods and Skills of History: A Practical Guide)


역사가들은 '역사적 사건발생에 대해 한 가지 원인만 찾는 것'을 지양한다. 퇴사라는 내 인생의 역사적 사건도 내가 나약하다는 원인 하나만으로 발생한 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애초에 '개인의 나약함'이란 원인 한 가지만 존재한다면 입사부터 거절당했을 것이다.


전문가로 성장하는 일 중에 하나가 책 쓰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일기 쓰기란 내 인생을 책으로 쓰는 일이다. 즉, 일기를 계속 쓰면 나는 내 인생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다. 내가 내 삶의 전문가가 되면 아무개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된다. 전문가들은 그런 이들이다. 논리와 경험의 기록이란 근거 위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이들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지적을 알아차리기도 더 수월하다. 그럴 때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이를 인정하고 갱신하기로 다짐하는 것이 또한 전문가들의 믿음직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내 삶을 일기라는 기록으로 선명히 그려놓지 않으면 세상의 흐릿한 평가 프레임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되어 버린다. 심지어 나 자신도 그 말에 휩쓸려 그리할 수 있다. 세상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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