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평가하는 말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내 인생의 전문가 되기
by 펜메모덕후의 일기연구소 Mar 19. 2024
나는 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은 생각보다 쉽게 평가대에 오른다. 공인이 아닌 이상 직접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가 그리 많진 않겠지만 간접평가는 꽤 흔하다. 예를 들면 누가 무엇해서 크게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여태 난 뭐 했지?'란 말이 툭 튀어나온다. 그 성공한 사람이 내게 뭐라고 직접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알아서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이다.
ChatGPT4한테 부탁하니 이런 것도 그려준다.
'크게 성공했다'라는 평가는 대게 다수의 기준을 통과해야 주어진다. 즉, 거기에는 거대한 한국사회 또는 내 주변 사람들의 판단이 스며있는 것이다. 홀로 하는 평가같아도 그 뒤에는 거대한 무리가 있다. 실패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재산과 명예라는 획일적인 평가기준도 숨 막히지만 무엇보다 성공과 실패 이전 과정에 대해 세세하게 들어줄 시간과 여유는 희귀하다. 물론 그를 성공케해준 이유 두어가지 정도야 흥미롭게 들어볼 의향은 있지만 밋밋하며 길고 긴 과정의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아니, 현실적인 한계로 다 들어줄 수 도 없다. 잠깐 듣다가도 "그래서 뭐?" "결론만 말해라"란 말로 이야기는 차갑게 토막 나기 마련이다.
구구절절하게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만큼은 나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결론만 잘라 듣는 거대한 집단적 사고가 내재화되는 걸 막아보자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마저도 과정 다 자르고 결론말 말하라는 식의 태도는 취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잘 들어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되려 간결하고 정확하게 내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더 잘 전달 할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요약하는 것이랑 책의 몇장만 대충 읽고 요약하는 것은 다르다. 둘다 짧지만 책의 핵심은 전자의 경우가 더 잘 집어낼 것이다. 일기쓰기로 내 인생이란 책을 전체적으로 읽고 있는 사람도 그러하다.
나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원인을 고민할 때도 인생 책을 전체적으로 읽은 사람과 부분적으로 읽은 사람의 차이는 클 것이다. 운으로 얻은 성공을 내 실력이라고 오해하지 않는다. 반대로, 내 실력이 발휘되었음에도 운이라고 우기는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즉, 내 삶이 지금 왜 이런 것인가에 대한 엉뚱한 원인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나 자신을 포함해서!) 바로 잡아줄 수 있다. "네가 퇴사한 이유는 결국 나약해서가 아니냐"는 단순한 결론에 대해 직장생활 2,000쪽짜리 일기장이 스며든 대답을 할 수 있게 된다. 구구절절 내 이야기를 내가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면 "네 결국 그런 것이겠죠"라며 심지어 나 자신도 휘말릴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나약함'이라는 딱 한 가지 원인만 부각하다보니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워서 그렇다. 쉬운 것은 때로 강력하다. 그리고 타인의 인생을 구구절절 모른다는 무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목소리에 더욱 자신감이 붙어 그 단순함에 힘이 더해진다. 간결하고 힘있고 자신감에 가득찬 큰 목소리로 누가 이런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 옆에 듣는 사람들도 쉽게 휩쓸린다. '그런 결론을 어디 쉽게 낼 수 있겠는가?'라며 확신에 찰 만한 이유가 있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강력한 목소리에 동화되며 공명음이 나기 시작한다. 의도적으로 대중을 선동할 때도 자주 쓰이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사건의 한면만, 사건의 한가지 원인만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것 말이다.
역사를 배우는 학생이라면 단 하나의 원인만을 찾아내려는 것이 잘못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상황은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일어난다.
J. Salevouris, Michael, 역사학의 방법과 기술 : 실용지침서(The Methods and Skills of History: A Practical Guide)
역사가들은 '역사적 사건발생에 대해 한 가지 원인만 찾는 것'을 지양한다. 퇴사라는 내 인생의 역사적 사건도 내가 나약하다는 원인 하나만으로 발생한 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애초에 '개인의 나약함'이란 원인 한 가지만 존재한다면 입사부터 거절당했을 것이다.
전문가로 성장하는 일 중에 하나가 책 쓰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일기 쓰기란 내 인생을 책으로 쓰는 일이다. 즉, 일기를 계속 쓰면 나는 내 인생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다. 내가 내 삶의 전문가가 되면 아무개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된다. 전문가들은 그런 이들이다. 논리와 경험의 기록이란 근거 위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이들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지적을 알아차리기도 더 수월하다. 그럴 때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이를 인정하고 갱신하기로 다짐하는 것이 또한 전문가들의 믿음직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내 삶을 일기라는 기록으로 선명히 그려놓지 않으면 세상의 흐릿한 평가 프레임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되어 버린다. 심지어 나 자신도 그 말에 휩쓸려 그리할 수 있다. 세상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