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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 할 응어리를 풀어놓는 비밀일기장1

[일기에 진심인 편입니다-개정판] 1장 1부.

 "암초항해" by ChatGPT4 Image Generator 
흔히들 인생을 고해라고 한다. 삶의 바다 곳곳에 무수한 고통이 암초처럼 놓여 있는 탓이다.

이기주, <글의 품격>


시련 없는 인생이 있을까. 운명처럼 만나는 것이 '인생의 암초'다. 버틸만한 것도 있는가 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 절벽같은 장애물을 만날 때도 있다. 견딜만하다 싶으면 두겹, 세겹, 겹겹이 함께 오기도 하고 누군가가 짜맞춘 듯 기막힌 타이밍에 등장할 때도 있다.


역경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고통을 일으키기 때문이겠지만, 누군가와 쉽게 공유할 수 없는 이야기인 점도 한 몫한다. 가시밭 길에 홀로 서 있는 경험이다. 직장에 가면 속 이야기 함부러 꺼내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 수긍이 가는 조언이지만 막상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를 막 털어놓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왜 인가. 그만큼 홀로 서 있기란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일테다.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연결되는 경험이다. 연결되면 안도감을 느낀다. 수용적인 경청이 힘있는 이유도 그것일 것이다.


속 이야기를 받아준 사람이 신뢰할만한 사람이라면 큰 복이다. 앞으로도 험악할(?) 직장생활에서 등을 맞댈 수 있는 사람을 찾은 것이다. 귀인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항상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때론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이 '인류애를 증발시키는' 배신감은 정신을 지치게 하고 결국 인간관계를 시들게 만든다.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가 언젠가는 거치게 되는 시름의 역이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나는 험담을 일기에 썼다. 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내게 왜 그런 말을 할까. 객관적으로 내가 실수한 것일까. 남탓과 내탓이 중구난방으로 속에서 끓어오르는 순간이 있으면 곧바로 스마트폰의 일기장을 펼쳤다. 어디서든 말이다. 그렇게 글로 멀리를 식히고 나면 그나마 냉정한 판단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굴 붉히며 분노하고 짜증내는 나, 성급하고 비이성적인 나'는 일기에 다 담아두고나서 현실의 나는 꽤나 정리된 모습으로 다른 사람 앞에 나타났다고 하면 맞는 말일테다.


이런 식으로 일기를 쓰면 혼자인데 혼자가 아닌듯한 느낌이 든다. 일기가 내게 한마디 해주는 말도 없지만, 왠지 상담 받은 기분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잘 털어놓기만해도 연결된 기분이 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잘 경청해주는 사람만 만나도 한결 가벼워지지 않는가. 일기는 정말 일언반구 없이 내 말을 들어주기만 한다. 그것이 일기의 장점이자 한계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신뢰할만한, 가까운 이들이 필요하다. 그들은 나의 말을 경청해줄 수 있고 거기에 반응해줄 수 있다. 조언해줄 수 있고 행동을 같이 해줄 수도 있다. 일기가 사람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일기 나름의 장점은 꽤 크다. 상담사든 지인이든 항상 내 곁에 머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하지만 일기는 가능하다. 내가 항상 휴대하기만 하면 말이다.


블로그나 SNS의 공개일기와 다른, 비밀일기만의 매력이자 강력한 장점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정말 마음껏 쏟아놓을 수 있다. 내 삶에서 비밀일기장은 인생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기록이 되었다. 예전에는 응어리를 묵히다 일기에 털어놨지만 지금은 응어리 지는 과정 중에도 다 쓴다. 어떻게든 쓰고, 또 쓴다.


고통은 기록을 부른다

증명된 이론은 아닐지 몰라도, 인생의 격통은 기록을 불러오는 듯 하다. 역경을 통과한 역사적 인물들 중에서는 작가는 아니지만 일기를 쓴 사람들이 꽤 있다. 정조 왕은 어린 시절부터 험악한 인생의 암초를 통과했다. 당시 그가 기록한 존현각 일기의 일부이다.


"내가 이렇게 일기를 쓰는 것은 지금 당하는 핍박을 후세에 전하여 알게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임금을 만날 때에도 몸을 구부리지 않았고 신발 끄는 소리를 탁탁 내며 전혀 삼가고 두려워하는 뜻이 없었다."
"흉도들이 심복을 널리 심어놓아 밤낮으로 엿보고 살펴 위협할 거리로 삼았다."
"두렵고 불안하여 차라리 살고 싶지 않았다."

[정조 세손시절의 존현각 일기 중]


그가 분노와 복수심에 삼켜지지 않고 결국 성왕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나는 그의 오랜 일기습관이 이에 한몫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왕이 된 후에 일성록을 신하들과 함께 기록하며 국정 운영까지 일기의 쓸모를 넓힌다. 일기를 개인적 기록에서 사회적 기록으로까지 확장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를, 백범김구는 '백범일지'를 썼다. 고통의 시기를 일기와 자서전의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치하의 고통을 보여주는 기록들로는 안나 프랭크의 일기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같은 회고록 형태의 기록이 있다. 


그들의 경험처럼 역사책에 남을만한 고난아닐지 모르지만, 우리도 자신만의 인생 암초를 만난다. 제2차세계대전이 꼭 역사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1차, 2차 대전쟁을 겪기도 한다. 직장, 학교, 가정에서 말이다. 


이 때 우리도 그들처럼 기록해보면 어떨까. 당장에는 고통을 토로할 수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 이 고통에 대해 말할 준비를 미리 해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이후에는 나 자신에게 또는 소중한 이들에게 건네줄 인생 이야기를 더욱 선명하게 남길수도 있을 것이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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