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한 번의 경험으로 열을 배우게 해주는 비밀일기장 2

[일기에 진심인 편입니다-개정판]2장 2부

"시간여행을 하는 역사가 By ChatGPT4 Image Generator


(1부에서 이어짐)

앞서 경험이라는 밥그릇을 삭삭 긁어먹는 방법으로 일기 쓰기와 역사가적 사고방식을 제안했었다. 이번장에서는 세 가지 역사가적 사고방식 중 나머지 두 가지를 다루고 싶다. 


맥락, 그때는 그때만 상황이 있었다

좋은 역사가의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는 것을 피하고 최대한 과거 그 사회의 기준으로 그 사회를 보는 능력이다.

J. Salevouris, Michael, <The Methods and Skills of History: A Practical Guide (p. 127).>


나는 6년 전에 첫 직장에서 퇴사를 했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 '안정적인 수입원이었는데 왜 내 발로 걸어 나왔지'란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때의 일기를 펼쳐본다. 그러면 그런 생각이 곧바로 사라진다. 


후회는 비교적 수입원이 불규칙한 '현재의 기준'으로 그때를 판단했기 때문에 나타난 반응이다. 하지만 나의 역사, 즉, 일기장은 '과거의 기준'을 펼쳐준다. 총 6년 재직기간 동안 지독한 소진증후군을 3년 이상 견디다 못해 뛰쳐나온 정황, 맥락이 일기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 동안에 쌓인 일기만 해도 2,000쪽 가까이 된다. 


수백, 수천 년 전의 과거를 다루는 역사책에 비하면 우리 일기장은 찰나 같이 짧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각 개인에게 인생은 직접 경험하는 유일한 그리고 유구한 역사이다. 역사가들처럼 우리도 과거 자신이 처했던 맥락을 고려해줘야 한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세상을 바라보던 시점으로 진입해야 한다. 


특히 비밀일기는 누군가에게 드러낼 수 없는 맥락도 면밀하게 기록할 수 있다. 말 못 할 집안 사정과 속사정들 말이다. 


미래를 아는 '시간여행자'가 되다

시간은 역사의 핵심이다. 시간 없이 역사가 존재할 수 없다. 시간이 일으키는 변화가 있기에 역사도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도 잘 변치 않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조차 변하는 것과 상호작용하며 변화를, 즉, 역사를 만들어낸다. 모든 것이 어제와 동일한 세상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지만, 만약 그런 세상이 있다면 역사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역사란 말을 들으면 시간 중에서도 '과거'만을 떠올리기 쉽다. 정의상 역사는 과거에 관한 것이 맞다. 하지만 역사에는 사실 현재도, 미래도 담겨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지나간' 현재와 미래다. 지금 나의 시점에서는 일기 모든 것이 과거다. 그런데 앞서 맥락을 고려하기 위해 과거의 입장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바로 그 시점이 현재가 된다. 그리고 그 이후 시점의 일기내용은 모두 미래의 일이 되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되는 순간 나는 미래를 알고 있는 '시간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역사가적인 상상력에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 지금 내가 미래의 일을 알고 있다면 어떨 것 같은가. 이런 류의 상상을 펼치는 드라마나 영화의 진부한 소재 중 하나가 로또다. 당첨될 로또번호를 알고 있으니 과거로 돌아가 구매한다는 식이다. 사실 원리는 그것과 동일하다. 미래 일을 알고 있으면 현재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대부분 꽝인 로또 번호 중에 '가치 있는 로또'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현재에까지 파장을 일으킬 과거 사건들을 보는 눈이 생기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들의 탐색하고 이로부터 미래를 위한 현재의 지혜를 짜내는 역사가들 다운 사고방식이다. 나의 역사를 기록하고 돌이켜보는 일기 쓰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일기를 쓰며 경험에서 더욱 많은 것을 얻어내고 싶을 때 활용해 볼 수 있는 3가지 대표적인 역사가적 사고방식에 대해 살펴봤다. 요약하면 이렇다. 


1) 여러 원인에 대한 민감성 Sensitivity to Multiple Causation

2) 과거 사건에 대한 맥락 고려 Consideration of Past Context

3) 시간 흐름에 따른 변화 인식 Awareness of Change Over Time


성실한, 뛰어난, 위대한 역사가

성실한 역사가는 사실을 수집해 검증하고 평가하며 중요한 역사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한다. 

뛰어난 역사가는 사실들 사이의 관계를 탐색해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며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과 역사 변화의 패턴 또는 역사법칙을 찾아낸다. 

위대한 역사가는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로 엮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독자의 내면에 인간과 사회와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물결을 일으킨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데서 출발해 과학을 껴안으며 예술로 완성된다. 

유시민,  <역사의 역사>


일기에 경험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성실한 역사가로서의 첫걸음이다. 나름 팩트체크도 하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묘사하는 단계이다. 여기에 원인과 결과를 고민해 보는 역사가적 사고방식도 적용하기 시작하면 뛰어난 역사가로 발돋움한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줄 의미를 일기에서 찾아내기 시작한다. 일기 쓰기와 역사가적 사고방식을 적용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기 쓰기를 통해 경험의 교훈을 되새김질하며 스스로를 반성하고 변화시킨다. 나만의 강점을 발견하고 키우기도 한다. 객관성과 주관성이 균형을 이루며 결합되는 일기를 쓴다. 위대한 역사가로 성장하는 일기기록자들 중 몇몇은 대중의 생각과 감정에 변화를 일으키는 이야기를 일기에서 빗어내기도 한다. 


돈 드릴로 Don DeLillo는 소설가는 의미에서 시작해 그것을 나타낼 사건들을 만들고, 회고록 작가는 사건들에서 시작해 의미를 끌어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자전적 글쓰기는 체험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난다고 볼 수 있다. 수업에서 대학생들에게 왜 이런 글들이 좋은지 물었을 때, 한결같이 그들은 힘겨운 시기를 잘 견뎌내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작가가 됐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얻었다는 순수한 감상을 내놓았다.

메리 카,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이렇게 일기를 쓰며 자기 인생에 대한 역사가로서 성장하는 이들을 위한 이름을 만들어보고 싶다. 나는 이들을 미스토리언 Mistorian, 즉, 자기 인생에 대한 역사가 My own life's Historian로 부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번의 경험으로 열을 배우게 해주는 비밀일기장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