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는 이유로 우리는 종종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라 여긴다.
하지만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날수록 나는 점점 그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일본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나는 ‘외국인 직원’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야 할 때가 있었다.
이용자들 중 일부는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르기 어려워했고, 서툰 억양에 당황하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 조심스러워졌고, 말을 꺼내기 전에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문장을 다듬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어르신 한 분은 상담이 끝난 후, 조용히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천천히 말해줘서 더 좋았어요. 당신은 마음이 따뜻하네요.”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그 한마디가, 내가 이곳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준 힘이었다.
말은 완벽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진심은 따로 존재한다.
문화는 다를지라도, 누군가의 불안한 눈빛은 언어 없이도 읽을 수 있다.
국적이 다르다는 사실은 때로 관계를 시작하는 데 있어 장벽처럼 느껴지지만, 그 장벽 너머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통된 감정이 분명히 존재한다.
외로움, 상실, 불안, 희망.
우리가 사회복지 현장에서 마주하는 감정들은 국적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따뜻하게 다가가면 생각보다 훨씬 쉽게 통하게 된다.
나는 때때로 ‘다르다’는 사실에 위축되었지만, 그 다름이 오히려 진심을 더 섬세하게 전달해야겠다는 다짐이 되기도 했다.
말보다 표정에 더 마음을 담고, 서류보다 먼저 사람의 눈을 바라보게 된 것도 아마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매일 낯선 문화와 언어 속에서 일하고 있다.
모든 상황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고, 여전히 오해와 긴장 사이를 조심스럽게 걷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국적은 다르지만, 마음은 통한다.
그 진심만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천천히, 그리고 충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