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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언니 Feb 19. 2024

어설픈 완벽주의의 함정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을 갖는다는 건 슬픔을 줘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는 완벽주의 또한 비슷한 슬픔을 우리에게 준다고 생각한다.




완벽주의하면

떠오르는 것?


완벽을 추구하는 태도는 당신을 성취하는 삶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자기 파괴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 차이는 어떤 방식으로 완벽을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스스로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리고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에서 이야기하는 완벽주의는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이전에는 완벽주의라고 하면 결점이 없다던가, 실수가 없어야 한다던가 하는 등의 특징을 떠올렸다. 하지만, 책에서는 이 외에도 습관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거나, 축하할 만한 순간에 충분히 기뻐하지 못한다거나,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마음 한 켠에 얹은 채로 사는 등. 불안함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평소에 이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자기 검열이 심하고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 때문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그러다가 이번 기회에 불안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것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거의’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저녁식사는 거의 완벽했다, 완두콩을 태우지만 않았으면. 지난 한 주는 거의 완벽했다, 화요일에 요가 수업을 빼먹지만 않았으면.


조금만 더 했으면 이것보다 더 나은 성과가 나왔을 텐데, 이것보다 더 큰 시련이 닥쳐오면 어떻게 하지? 그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정말이지 고약한 습관이다. 이루어낸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놓친 것들에 자꾸만 시선을 분산시킨다면, 현재를 충만하게 누릴 수 없다. 이런 고약한 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혹여나 남들에게 피해를 주게 될까 염려하며, 필요 이상의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간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결함이 정말 생각하는 것만큼 치명적일까? 오히려 이런 불안감이 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로막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게 만드는 건 아닐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 어설픈 완벽주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 자체가 아닌 사고의 과정을 관찰한다.

우리는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생각에서 눈을 돌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스트레스 때문에 콘치즈 엽기떡볶이가 땡긴다면 콘치즈 엽기떡볶이가 땡긴다는 생각에서 눈을 돌려보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꼭 콘치즈 엽기떡볶이가 먹고 싶다기보다는 당과 탄수화물을 섭취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떡볶이를 먹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산책이나 유산소 운동으로 뇌를 환기한다던지 나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줄 다른 취미활동을 한다던지. 당과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목적(=스트레스 해소)을 달성할 수도 있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보자. 나는 내향인이라 낯선 사람들이 모여있는 자리에 가는 것을 꺼려한다. 여기서 생각은 '낯선 모임에 가기 싫다'이며, 사고의 과정은 '새로운 관계를 맺는데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이다. 여기서 만약에 에너지를 사용하기 싫은 마음을 이겨내고 새로운 경험과 관계를 찾아 나서는 일에 도전한다면, 내게 필요한 기회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기회를 위해 이만큼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생각해 볼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01/ 결과보다 과정에 주의를 기울인다.

나는 결과와 과정 중 어느 쪽을 중시하는 편일까? 결과에만 지나치게 포커스를 두다 보면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것들을 상대적으로 작게 느끼거나 소홀하게 된다.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에서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다룬다.


호흡명상을 통해 습득하고자 하는 기술은 호흡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주의를 다시 호흡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기억하기 바란다.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실제로 명상을 하다 보면 자꾸만 흐트러지는 정신 때문에 '아, 역시 나는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데 주의란 원래 흩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명상의 원래 목적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주의를 다시 호흡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니. 우리가 '호흡에 집중한다는 결과'만 바라볼게 아니라, '주의를 계속해서 호흡으로 되돌린다'는 과정에 집중한다면, '명상에 실패했다'고 낙담하지 않고 호흡에 집중하는 방법을 익히는데 보다 도움이 될 것이다.



02/ 끝맺지 못한 일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 것

내 방에는 뜨다만 뜨개질거리들이 한가득 있다. 얼마 전에 초롱꽃 모빌을 뜨다가 완성을 눈앞에 두고 책장에 방치한 지도 2주가 지나고 있다. 그러던 중에 새롭게 뜨고 싶은 꿀벌 인형의 도안을 발견했는데, 완성하지 못한 모빌이 눈에 밟혀 꿀벌 인형을 뜨기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모빌을 완성하고 나서야 꿀벌인형을 떠야만 하는 걸까?



과거의 일에 발목이 잡혀 있다면 새로운 일에 완전히 몰입할 수 없다. 새로운 방에 들어가 뜨개질을 시작하면 좋겠지만 방금 나온 방의 문을 닫기 망설인다. 문을 닫는다는 것은 시작한 일을 끝내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끝내지 못한 데서 오는 불편한 마음도 감수해야 한다.


심히 찔렸다. 그래서 그 길로 나는 호박벌 인형을 뜨러 갔을까? 제 버릇 남 못준다고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하던 일을 꼭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걷어내고 나자, 오히려 모빌을 마저 완성할 마음이 생겼다. 나는 그날로 모빌을 완성했고 이제 곧 호박벌 인형을 뜨기 시작할 것이다.


마무리 짓지 못한 것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는데 방해가 되면 안 된다. 내가 정말로 목표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안다면, 지금 붙들고 있는 미완의 과제들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 정말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판단해 볼 수 있게 된다.


도중에 그만두는 것은 나약함의 상징이 아니다. 폭설 속에 운전하고 있는 가족에게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차를 세우거나 되돌아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당신의 필요와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그만두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 일을 꼭 마무리 지어야 해'라는 생각을 하기 전에 그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그 일을 하기 위해 미루고 있는 일들이 더 중요하진 않은지 한 번쯤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완벽주의는 일종의 강박증의 한 종류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그 원인을 명확히 파악할수록 우리는 요 녀석을 유리하게 이용해 먹기가 쉬워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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