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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돌 May 11. 2020

야생의 길을 걷다 1

[트레킹 이야기] 강릉 바우길 13구간 '향호 바람의 길'


"여기서 악어 나올 것 같지 않아?"

"밥도 먹기 전에 되려 우리가 악어밥이 될 것 같은데..."

"여기 13구간은 '야생의 길'로 이름 바꿔야 될 것 같다."


배가 너무 고팠다. 뭐라도 먹어볼 요량으로 저수지 옆을 걷다 말고 주저앉아 삼각김밥이라도 한 입 베어 물 참이었다. 배는 이미 진즉에 고파왔는데 앉을만한 자리를 찾지 못해 주린 배를 잡고 계속 걷던 중이었다. 허기가 져 예민한 상태여서 그랬는지 그 입 다물라고 장난을 가장한 호통을 치려다, 야생의 길로 이름을 바꿔버리는 그의 말에 호통을 거두고 키득거린다.


웬만한 허기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나.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길 초입의 향호를 벗어나 솔숲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로 여기 향호 저수지길까지 오는 길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오죽하면 '향호 바람의 길'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놔두고 '야생의 길'로 바꿔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기까지 하겠는가? 야생의 길답게 길 옆 저수지에 악어라도 살 것 같다는 말이 아주 헛소리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돌이라도 씹어먹을 듯한 심정으로 길 위에 앉긴 했지만 배낭에 든 음식에 손을 바로 뻗지는 않는다.



"너무 힘드니까 오히려 먹는 게 안 당기네."

"그래? 그래도 좀 먹어. 먹어야 또 걷지." 

"어디로 가야 할지 헷갈리는 길이 너무 많아서 더 힘들었나 봐."

"그렇지. 몸이 계속 긴장하고 있으니깐."


오늘은 처서.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인즉슨 처서 무렵의 햇살이 얼마나 따가울지, 풀들은 제 큰 키를 얼마나 뽐내고 있을지를 충분히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는 얘기다. 지나치게 자연친화적인 13구간의 어떤 길은 여름날에 걷기에는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일단 풀때기들의 후려치기는 기본. 발목을 후려치는 풀때기들의 속도와 강도는 상상 그 이상이다. 여름이라고 짧은 바지를 입고 걸었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비좁은 숲길을 걸을 때는 양쪽으로 서 있는 나무 가지와 줄기들이 몸통을 찔러대기도 한다. 무엇보다 햇살이 따갑다. 조금 더 챙 넓은 모자를 샀어야 했다. 툭 튀어나온 광대 위로 기미가 하나 둘 보란 듯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길이 험해서만 힘이 들었던 건 아니다. 

솔숲길을 지나다 본 빈 집 한 채가 내내 마음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빈 집이네. 요양원에 가셨나...?"


시골길을 걷다 보면 크게 세 종류의 집을 만나게 된다. 하나는 펜션 못지않은 세련미를 뽐내는 집이다. 외지에서 들어와 멋들어지게 집을 짓고 노후를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이거나 원래 살던 집을 리모델링해서 사는 지역주민이다. 또 하나는 딱 그 동네에 어울리는 그야말로 시골집. 어디 하나 손댄 곳 없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집이다. 이런 집은 고된 노동의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지막 하나는 폐가이다. 이런 집은 기둥이 부러지고 지붕 한쪽이 눌러앉아 폐가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집도 있지만 얼핏 봐서는 폐가 같지 않은 집도 많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는 집이라는 걸 금세 눈치챌 수 있다. 


마음에 내내 남아있던 그 집은 철근과 철사로 입구가 막혀 있었다. 입구 바로 안 쪽에는 창고가 있었는데 그 한 켠에는 박스더미를 머리에 인 오토바이가 서 있었다. 뒤꿈치를 들고 더 안쪽으로 몸을 기울여 보았다. 그 안에는 함석지붕을 덮고 있는 빈 집이 넓은 과수원 땅 한편에 우뚝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집주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한 때 도끼와 낫과 호미를 자유자재로 다루던 노부부가 아니었을까?



우리 아부지는 술을 참 좋아했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먹고 마당에 나갔다가 다리를 삐끗한 모양이다. 병원에 가지도 않았다. 괜찮으려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려니 그렇게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다 결국 사달이 났다. 다리를 움직이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병원을 거쳐 요양원. 그리고 그다음은... 그렇다 바로 그곳으로 갔다.


움직일 수 없는 고통은 어떤 것일까 가끔 생각한다. 다리에서부터 시작된 마비는 결국 아부지의 몸 전체를 앗아갔다. 음식도 씹어내질 못했다. 삼키지도 못했다.  끝내는 치매 증상까지 와 기억을 잃는 아픔까지 겪었다. 


나는 원래부터 고무장갑을 하지 않은 채로 설거지를 했다. 답답해서다. 그런데 손도 나이를 먹기 시작했다. 손에서 보이는 나이 때문에 겁이 나자 고무장갑을 끼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다시 벗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꼭 코 끝이 간질간질하거나 머리 밑이 가렵다. 거품이 잔뜩 묻은 고무장갑을 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잠깐의 찰나에 아부지의 고통이 내게도 찾아왔다. 아부지의 움직일 수 없는 고통이 떠오르는 것이다. 침대 옆에 손을 묶어놓을 수 밖에 없다 했다. 링거를 자꾸 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전해 들은 후부터는 아부지 손등에 울퉁불퉁 솟은 시퍼런 혈관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래서 장갑을 벗어버렸다. 코 끝이 간질거리면 흐르는 물에 얼른 거품을 씻어 내리고 코를 긁는다. 그러면 아부지 생각이 덜 났다. 


아부지와 함께 살던 집도 함석지붕이었다. 우리는 함석지붕을 때려 박는 빗소리를 들으며 겨우 겨우 꾸역꾸역 그 시간을 살았다. 그때는 그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아 두려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냈는데, 아부지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아버지가 곁을 떠난 지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아부지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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