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는 직장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을 산다. 직장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사업체라는 것은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2021년 기준 상시 여성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 사업장), 부모의 고용형태 역시 안정적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직장어린이집 설치가 의무화되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시설과 프로그램, 환경이 모두 훌륭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곳은 어디든 경쟁이 치열하기 마련이다.
얼마 전 지역 내 한 대학의 직장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던 후배 S가 원내에서의 속 시끄러운 일로 결국 다른 원으로 옮겨가는 일이 있었다. S는 그 대학에서 전임강사로 일하고 있다. 처음엔 그녀도 직장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음에 무척이나 기뻐했었다.
S의 아들 B가 다니던 반에는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였다. 일반 교직원의 자녀들부터 정년교수, 비정년교수, 강사의 자녀들이 섞여있었고, 대학에 재직 중이지 않은 부모들도 몇몇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해당 대학의 정년교수이자 보직교수인 A의 아들 W가 반 친구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S는 아들을 목욕시키며 여기저기 멍이 들어있는 것을 자주 발견했지만, '사내 녀석들이 놀다 보면 그렇지 뭐' 하며 가볍게 넘겨버렸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아들과 등원 시간에 실랑이를 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고, B는 급기야 A교수의 아들 W가 무서워서 어린이집에 못 가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같은 학과는 아니지만 A교수와 같은 단과 대학에 속해 있는 S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전임이긴 하지만 강사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러나 하루가 멀다 하고 맞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면 그대로 있을 수도 없어 어린이집에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 당일, 어린이집 원장은 내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네 어머니, W가 좀 과격한 부분이 있습니다."
"좀 과격한 게 아니고, 계속 상처가 생기는 수준인데요."
"그런데 어머니, B(S의 아들)도 W(A교수의 아들)을 계속 자극하는 면이 있습니다."
"네?"
"그러니까... 이런 거죠. B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W도 가지고 놀고 싶은데 쉽게 잘 안 내주니까요.."
S는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마치 '너의 아들도 완벽하지 않으니, 남의 아들 탓하지 말고 적당히 넘어가'라는 말을 한 시간 내내 듣고 돌아온 기분이랄까.
실제로 그날 원장과 담임선생님은 W보다는 B가 평소에 보이는 문제적 행동에 대해 더 상세히 이야기해주었다. 그 후로 S는 혹시라도 아들이 원에서 피해를 입을까 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멈추었단다. 선생님들이 혹시라도 B에게 불이익을 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W가 괴롭히는 아이들은 B뿐만이 아니었다. 남아, 여아 가릴 것 없이 아이들을 때리고 다녔고,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뺏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W가 등장하기만 해도 두려워하는 양상을 보였다. 원에서의 폭력이 일상화되어가는 동안, 담임선생님과 원장은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많은 것들을 쉬쉬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아이들의 상처를 보면서도 함께 쉬쉬하고 넘어간부모들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해 윗반에 다니던 남자아이와 W가 화장실에서 큰 싸움이 났다.
한 살 많은 남자아이는 다른 단과대학 정년교수이자 보직자인 Q교수의 아들이었다. 병원에 갈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지만, 두 아이 모두 코피가 흐를 정도로 격렬한 싸움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Q교수와 그의 와이프는 말 그대로 원을 뒤집어놓았다. 경찰을 불러 원내 CCTV를 열람하고, 오래도록 이어져 온 W의 폭력 사태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어린이집이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을 경우 법적 공방을 예고했다.
사태가 커지자 어린이집 원장은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공식 사과문을 올리고, 간담회를 열어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명을 하며 문제의 해결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S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깨달았단다. 직장 어린이집에는 부모의 직장 계급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말이다. 교수의 아이와 교직원의 아이를 대할 때, 정년 교수의 아이와 강사의 아이를 대할 때, 주요 부서의 보직교수 아이를 대할 때와 신임 교수 아이를 대할 때..... 어린이집의 표정은 모두 조금씩 달랐고, 그 다름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대학 안의 암묵적 계층 문화는 어린이집이라는 특수 환경을 만나자 그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직장어린이집은 많은 이들의 말처럼 정말 축복일까?
직장 내에서의 나의 위치가 아이에게 어떤 형태로든 불리함으로 작용할 때, 난 그걸 감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