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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박 Jun 08. 2023

버려진 구두 한 짝


길 옆의 구두 [Dall-E 2 x 라박]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출근길. 낡은 남자구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도시고속도로라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차가 멈춰서는 일이 없는 곳이었다. 구두는 가드레일 바로 아래 초라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그 후로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그 구두가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오가는 차에 부딪히는 때도 있는지 위치나 방향이 꽤나 달라져 있는 날도 많았다.


구두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학교로 오는 동안에 온갖 상상을 하곤 했다. 어떤 연유로 저 구두는 저기에 놓여있게 되었을까. 그것도 한 짝만 쓸쓸하게.. 대체 너의 주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너에게도 분명 빛나는 순간이 있었겠지. 환한 매대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널 선택한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널 신고 처음 대문을 나서던 반짝이던 순간들 말이야..


저마다 속도를 내며 다니는 길이어서인지 구두는 그 후로도 한참을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 비라도 오는 날엔 더욱 쓸쓸해 보였다.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그곳을 지날 때마다 눈으로 인사했다.


아직도 거기에 있네, 누가 너를 구해줄 수 있을까.

.

.

.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도 구두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겨울 방학이 다가오던 어느 날 아침, 구두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왠지 모르게 아쉽고, 짠한 기분이었다. 로드킬을 당한 고양이의 사체를 볼 때처럼..


구두가 놓여있던 가드레일 아래를 보며 짧게 인사했다.


그동안 수고 많았네, 좋은 곳으로 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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