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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박 Aug 30. 2023

아이의 영구치를 닦으며

마지막까지 잘 부탁해

잘부탁해 [라박 × Dall.E]


어느 날엔 매우 독립적이고, 어느 날엔 매우 의존적인.. 그야말로 극단적 양면성의 소유자인 K는 오늘 아침 이를 닦아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자고 일어나 보니 혀 끝에 뭔가 생긴 것 같다며, 엄마가 닦아주면 아프지 않을 것 같단다. 그러고 보니 K의 이를 마지막으로 닦아준 것도 한참 된 것 같다.


다른 아이들보다 영구치가 조금 늦게 나기 시작한 K의 치아들은 공사를 막 시작한 인테리어 현장처럼 들쑥날쑥 자유롭고 어지럽다. 얼마 전에 모습을 드러내고 본격적으로 내려오기 시작한 대문니는 K의 입크기에 비해 너무나 거대해서 볼 때마다 무척 낯설다. 입 속에 웅크리고 숨어 있는 어른 K의 모습을 슬쩍 보는 기분이랄까.


곧 사라질 유치들과 별일 없으면 K가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아갈 영구치들을 이리저리 번갈아 닦으며 생각해 본다. 아마도 너네들은 내가 K의 옆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하겠지..


맛있는 걸 먹는 날들이 훨씬 더 많기를.

큼직한 대문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날이 더 많기를.

언젠가 엄마보다 훨씬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이를 부딪히며 격렬하고 행복한 키스를 하기를.

그 순간들 속에서 오래도록 많이 많이 행복하기를..


마지막까지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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