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익힌 진리 -직장편-

“열정 하나로 버텼던 나, 이제는 거리 두기를 배운다.”

by PYT

언젠가부터였다. 출근길에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한 건. 야근 후 텅 빈 사무실에서 불 꺼진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지?"라는 질문이 불쑥 떠올랐던 순간들.

회사생활은 늘 이상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서 줄타기를 강요한다.
나는 꽤 열정적인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조직에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진심이 언제부턴가 나를 가장 먼저 소진시켰다.


그래서 써본다. 직장생활 10년 차를 향해 가며 내가 몸으로, 마음으로 깨달은 이야기들.

누군가에겐 조금은 냉소적이고, 조금은 씁쓸할 수 있지만, 이건 '버티며' 살아온 한 사람의 생존 기록이다.





1. 누군가를 대신하여 칼춤 추지말아라. 그 칼에 먼저 맞는 건 나다.

- 타인을 위해 용감하게 나서는 일, 누군가의 부당함에 대신 목소리를 내는 일. 분명 정의롭고 가치 있는 행동처럼 보이지만, 직장은 그런 이상이 통하지 않는 곳이 많다.

또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도움을 받았던 사람은 잠깐의 감동은 받지만, 기억은 금세 잊히고, 도움은 쉽게 배신당한다. 내가 내준 용기, 그저 ‘고마웠어’ 한마디로 끝나면 다행이지, 당연하게 받는 사람들도 태반이다. 너를 위해 나서준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조차 믿지 말아라. 그 사람들은 본인들의 사회생활하기에도 바쁘다. 행동의 대가를 너무 순진하게 기대하진 말라는 것, 그리고 굳이 나설필요가 없는 일에 나서지 말 것.


2. 직장에서의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 내가 곧 회사고, 회사가 곧 나인 삶을 꿈꿨다. 하지만 그런 일체화는 결국 나를 갈아넣는 일이 되고 만다. 회사를 위해 온 마음과 시간을 쏟은 사람일수록, 회사가 그를 놓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 남는 건 번아웃과 회의감 뿐. 조직과의 건강한 거리는 ‘생존’이 아니라 ‘자존’을 위한 선택이다. 아 물론, 일 외에도 사람간의 관계서도.


3. 가면을 써라

-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게 먹히지 않는 곳이 사회다. 우리가 직장을 선택할 때는 보통 '열정', ' 직무' , '네임벨류' , '돈' 등으로 사회는 엄연히 일과 승진 등 관계보다는 다른 요소가 우선되어서 만난 사이다. 선택지에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가 포함되었던 적이 없지 않은가? (들어가기 전까지는 사람들의 성향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결국 직장은 진정성이 통하는 곳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얽힌 전쟁터 같은 곳일 수 있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다면, 나 혼자 맨얼굴일 필요는 없다. 물론 간혹가다 좋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들은 가면을 쓰고 있을 것이니, 적당한 사회생활을 해라. 회사에 들어갈 때는 다른 모자로.


4. 나 없어도 잘 굴러간다.

- “내가 없으면 안 될 거야.” 그런 착각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한다. 하지만 회사는 언제든 나의 대체자를 찾을 수 있고,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한다. 내 자리는 결국 시스템의 한 조각일 뿐이다. 그러니 너무 스스로를 희생하지 마라. 회사는 내 것이 아니고, 언제든 나를 벗어던질 수 있다. 차가운 말이지만, 현실이다.


5. 말을 아끼지 않아도 된다.

- 사회에서는 말을 아껴라라는 말들을 많이한다. 조용히 일하는 것이 미덕인 양 여겨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말 없는 자는 더 많은 말의 중심이 되곤 한다. 사람들 사이에 말은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돌기 때문에 굳이 말을 아끼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 사람은 말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누군가의 입방아에 오르내일 뿐이다.


6. 티를 내라, 내가 잘났다는 사실을

- 묵묵히 일하면 언젠가 알아줄 거라는 생각, 참 순진했다. 조직은 말하지 않는 사람의 공로를 다른 이의 공으로 포장하기 쉽다. 누군가는 결과보다 말을 잘 포장해서 인정받고, 누군가는 존재조차 묻힌다. 내가 해낸 일은 내가 직접 말해야 한다. 잘한 건 드러내야 하고, 때론 ‘겸손’이라는 미덕은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티 내지 않으면, 그저 배경으로 잊힐 뿐, 가만히 있으면 평생 곳간에서 썩는 가마니만 될뿐이다.


7.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다.

- 진정한 승리자는 버티는 자라고들 말한다. 그런 건 없다. 버티지 말고, 아니다 싶으면 새로운 곳을 찾아라.

더 큰 화를 면할 것이다.


8. 어, 이게 되네?의 상황을 만들지 말아라

- 타이트한 일정 내에 해내야하는, 누가봐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프로젝트들이 있다. 그 프로젝트를 그렇게 하지마라. 한번 해내면, 그 사람들은 너가 얼마나 거기에 바쳐서 일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게 아니라 '거봐, 되네'라며 더욱 너를 몰아세울 것이다. 한 번의 기적은, 다음 지옥의 기준이 된다.


9. 진실은 승리하지 않는다.

- 진실은 결코 승리하지 않는다. 거짓을 이기는 건 진실이 아니고, 더 큰 거짓이다.




나는 누구보다 일에 열정적이었고, 조직에 헌신적이었다. 그런 내가 이 지점까지 오게 된 이유는 단 하나다.
너무 많이 믿었고, 너무 많이 기대했으며, 너무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비관론자가 아니며, 사람을 좋아한다. 다만, 그저 현실을 배우고, 상처를 딛고 일어난 사람일 뿐이다.
그 일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을 배워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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