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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창 Jan 31. 2023

나의 이름은 과장 , 차장 아닌 지도자 이다.

선수 트레이너 or 스트렝스&컨디셔닝 코치로 살아가기 feat 임창민

나왔다.... 팀에서


이제 객기를 부릴 나이는 지났건만 또 그렇게 난 불특정 다수와 내 주위의 단 한명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해버렸다. 버티고 있어어야 했던 전혀 거룩하지 않은 이유인 두달 후면 나오는 직원 할인 신차의 혜택을 포기하고 5시 땡하면 퇴근할 수 있는 권리를 뒤로 하로 또 다시 결정해 버렸다. 수많은 이유들이 있으나 "나는 나로서 자유롭고 싶다" 어린 치기가 나를 이끌었지도 모른다. 아니 혹은 버틸 만큼 버틴 트레이너로서의 자존감이 무너져버리기 직전에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팀에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 지배를 당하거나 또는 누군가를 지배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는 그것을 영향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직원들은 자신의 지배력이 미쳐 일을 수월하게 회사에서 손해 보지 않게 일하는 능력을 진짜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그 안에 어떠한 지도자 또는 삶의 가치를 승화 시키기 위한 고귀한 가치는 희미하게 있을것 같긴 하다. 내가 이렇게 잘난척 스럽게 이야기 하는 이유는 어쨋든 나는 내 삶의 두번째로 "보장"이라는 안정감을 바로 걷어 찼다. 그러나 그러한 보장을 걷어찬 나의 미래는 지치고 건강을 잃겠지만 "트레이너로서의 가치와 고민 능력"이란 측면에서는 발전의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어포던스란 다이나믹 시스템 이론에서 최적의 움직임을 찾아 내재 시키는 촉발 매개체로서 마치 현관문의 손잡이 처럼 문을 잡아 당기도록 유도하는 일종의 티칭 접근법이다. 어포던스는 행동을 이끌어내 인간 움직임의 자기 조직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제약 또는 차이로 주목 받고 있다.


살아가다 보면 이러한 어포던스가 우리의 인생에도 하나쯤 길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을 때가 있다(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삶에서 보이는 어포던스는 "익숙한 길"에 의해서 무시 당하기 일 쑤 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포던스를 눈치채지 못하고 왔던길을 돌아가거나 네비게이션에 지정된 경로를 따라간다.


내 삶에서 그저 스치듯 길에 떨어져 있던 어포던스들이 많았던것 같다. 그저 무시하고 지금까지 갔던 길로 갔으면 좋았겠으나 수많은 책들에게 그리고 칼럼들에게 읽었던 풀리지 않은 질문들이 그러한 어포던스에 관심을 가지게 하였고 말도 안되는 "가지 않은 길"로 이끌고 말았다. 나는 어포던스라는 기회의 창이 안정이라는 포근함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손잡이가 달린 문을 무시하지 못하고 기어이 그것을 당기고 미지의 가지않은 길로 가는 행동이 꼭 그렇게 아름답지 만은 않다.


철학자 비트겐 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그는 아직도 우리의 마음에 살아 있기에 현재 진행형으로 이야기한다). 5년전 내 인생 최대의 목표였던 프로야구팀 수석 트레이너가 되었지만 선수 들이 질문하는 수많은 궁금증 들에 그리고 7년여 동안 재활군, 2군, 1군을 거치며 쌓였던 고민들 무엇보다 선수의 재능을 극복하기 위한 트레이닝 방법론등 수많은 내가 말할 수 없는 난제 들에 대해서 대답할 수 없음을 나는 답답하고 짜증나고 괴로웠다. 그래서 당시 내 인생에서 어포던스 였던 럭비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를 믿고 있는 많은 선수들을 놔두고 나는 어포던스의 손잡이를 잡아 어트랙터의 안정 상태를 깨버리고 혼란과 카오스의 세계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4년여 동안의 어포던스에서의 생활은 빠르게 어트랙터의 상태로 들어가 마치 자유도의 동결이 일어나듯 나의 발걸음을 한발자국씩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내가 트레이너 생활을 왜 해야 하는지도 헷갈리는 수준까지 갔었다. 그런데.... 어포던스를 열고 들어간 선수의 움직임이 자기 조직화 되어 패턴으로 변화하긴 위해선 수많은 변수와의 적응과 대항 그리고 어색한 자유도의 동결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나는 간과 하고 있었다.


"자기 조직화를 위해 연습하는 선수에게 적절한 변수와 소음은 도움이 되지만 한 동작 한 방향으로의 강요는 발전과 창의성을 망친다"


어쨋는 나는 한방향을 지향하는(그 방향성은 선수를 위함인가?) 조직 사회의 방향성에 또 한번 대항하고 적응 하지 못하고 뛰쳐 나왔다.


그리고 4년 만에 다시 만난 임창민을.. 팀을 나온 후 10월 부터 다시 창민이를 운동 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달은 것.... 나는 4년 전 보다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으며 4년전 6년동안 전성기를 함께 한 선수의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한 것은 거짓이었다. 2018년의 트레이너 정연창과 2022년의 트레이너 정연창은 완전히 다른 사람 이었다. 마치 이상할 정도로 임창민의 모든 동작과 움직임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런 평가 없이 걸음걸이 움직임 섀도우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4년 동안의 시간은 나에게 건강을 잃고 자신감을 잃고 프로페셜함을 잃은 시간 이었지만 또 다른 표현으로 트레이너로서 자기 조직화 하기 위한 자유도의 동결 시간 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창민이는 나와 4개월의 훈련을 하고 다시 팀에 복귀 했다. 잘 모르겠다. 야구란 어려우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가 마운드에서 보고 싶은 크로져 임창민의 모습을 다시 볼꺼라고 확신 한다.


임창민 선수의 재활 복귀 후 인터뷰


내가 임창민을 응원하는 것은 그가 야구 선수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삶에 감사할 줄 알며 자신을 절제 할 줄 알고(바람직하진 않을 수도 있지만 다이어트를 권유하고 3주만에 8kg를 감량했다. 굶은 적은 없다) 우리가 잃어 버린 "프로 선수로서의 가치"를 빛나게 하는 선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트레이너들에게도 이런 모습을 바라는 것은 무리인가.


"나는 길들지 않는다" 나는 마음이 늙지 않기 위해 싸운다. 그것이 젊은 사람들 처럼 잘 놀고 말을 줄여 "어쩔"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고민" "꿈" "이상" "길들여지지 않는" 단어를 껌처럼 곱씹으며 잊지 않기 위함을 의미한다. "돈" "명예" "그럴싸함" 그런것에 기대면 나이가 젊더라도 마음은 늙은 것이다.


아침 일찍 중학교 운동장에 나가 야구 선수들을 운동 시키는 연골이 사라진 42살 중년의 트레이너는 무릎에 테이핑을 하고 함께 뛰어다닌다.


책상에 앉자 쇼핑 사이트를 뒤지가나 혹은 술자리에 앉자 임원들에게 “제가 잘 길들여 졌습니다” 라고 애기하지 못하고 (그러면 주5일과 복지가 주어진다) 아침 부터 저녁 까지 선수들과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는 이유는 혹시 내가 한 방향성의 팀을 탈피 하지 못하여 책상에 앉자 쇼핑 사이트나  뒤지는 그런 마음이 늙은 트레이너가 되지 않기 위함이다.


하지만 "나는 길들지 않는다"라는 책 또한 어포던스 일뿐 우리의 나의 멱살을 잡고 이끄는 것은 트레이너의 능력과 고민이 선수의 인생을 바꾸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은둔하며 내 할일을 하며 그러나 내 가족들을 잘 지키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한국에서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 맨 꼭대기가 빛나기 위한 획일적인 조직의 방향성이라면 나는 정중히 (그 삶도 존중한단 의미이다) 사양하며 조금 불편함을 감수하고 다시 어포던스의 손잡이를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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