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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창 May 05. 2022

대한 민국의 스포츠팀에서 일하는 젊은 트레이너들에게

사람으로 산다는것 트레이너로 산다는것 그 중간 어딘가에서





우리 대부분은 고등학교를 나와 원하든 원하지 않던 학과를 선택해 대학을 가고 그곳에서 누군가는 꿈을 키우고 누군가는 안정이라는 목표를 위해 나아간다. 단순히 인생의 영위가 목적인지 아니면 "뜻"이라는 꿈을 꾸는가에 따라 걸어가야 할 길이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 진다. 20대 후반 또는 30대 초반 아직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면 몽상가 이거나 정의라는 약간은 낮 뜨거운 달달함을 마음에 품고 사는지도 모른다. 불혹이 되어 느끼는 것은 내가 믿는 정의라는 것은 반드시 남을 불편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혹시 아직 꿈을 꾸고 있다면 두가지를 감수해야 하는데 개인의 소소한 행복과 남에게 인정받는것을 조직이란 사회에서는 포기해야 한다. 그래도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면 그리고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면 주식이나 돈 또는 명예가 아닌 한편의 시를 읽기를 권한다.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지음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다른 날 걸어보리라! 생각했지요.
인생 길이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가지 않은 길"은 프로스트가 실의에 빠져 있던 20대 중반에 작성한 시이다. 그는 그시절 직업 없고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했으며 대학에서 학위를 받지 못하고 기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집 앞에 두가지 갈래 길이 있었고 그 길을 보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시를 썻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그가 "인정" 받고 싶어 함을 강렬하게 느낄수 있다. 힘들고 지친 젊은 트레이너들에게 우린 쉽게 이런말을 한다 "인정 받을려고 트레이너 하는게 아니잖아 본래 뜻을 찾아" 이 멘트는 나도 자주 사용하는 것이지만 완벽한 개소리다. 인간이 인정 받고 싶어하는것 , 트레이너가 인정 받고 싶어하는것 그건 당연한 욕망이고 선배들이 해야 할 일은 그 욕망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도와 주는 것이지만?


반문해 보면 한국 사회에서 아니 한국 스포츠에서 트레이너가 인정 받는 직업인가? 조용히 그리고 옳은 길을 가려하는 트레이너가 인정받는가? 딱잘라 말 할 수 있다. 아니다. 스포트라이트 비추는 최고의 스포츠에 있을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세상으로 조금 기어 나온후 후배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사는지 더욱더 뼈저리가 느끼게 되었다. 가장 무서운건 나 또한 그런 것에 이제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애 쓰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면 나에게 그런 힘이 없다고 나 또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수년동안 알고 지낸 프론트가 나에게 말하길 "혼자 다녀라" 후배 들과 같이 다니면 움직이기가 어렵다. 나는 협력해서 큰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배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것이다. 최근 몇명의 팀 트레이너 후배들의 하소연은 나를 더욱더 깊은 골짜기로 빠지게 만드는데 과연 이 직업이 한국의 스포츠 팀이라는 것이 젊은 트레이너들에게 권할 만한 곳인가? 라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어린 그들이 겪은 수많은 일들, 따끔한 질책이 아닌 인격 모독 또는 폭력적 행위, 트레이너 자체를 무시하는 팀의 분위기, 같은 트레이너 끼리 벌어지는 정치 투쟁, 업무 범위를 과도하게 벗어나는 일, 불안한 고용 신분 누군가는 나에게 이야기 한다. 그게 사회고 다 그렇게 산다고 ..... (4년전 나에게 세상을 그렇게 사는게 아니라고 간곡히 가르치던 그 분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잘 살고 있다).


세계 10위 스포츠 강국의 민낯이라면 그냥 그려려니 받아 들여야 하는가?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바뀌고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환경이 이렇다면 팀에서 일하는 트레이너는 "사람"과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쩔수 없다. 이런 환경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직업 철학을 되내이어 미화하거나 아름다운 도전으로 포장하는 수 밖에 없다.  그 것 이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슬픈 상황을 문학으로 승화한 작가들과 같을까?) 12년이 넘는 트레이너 생활 동안 나 자신을 끌어 온것은 "선수의 성공" "성적" 그리고 "인문학적인 뜬 구름의 직업적 철학적 사유"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소설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그 마지막 잎새에 의미를 부여하여 앞으로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후배들에게 그말 밖에 할게 없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나는 거대한 파도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없고 이제 의지도 없다. 쇠심줄 같던 원칙에 대한 답답함도 망치로 계속 두들겨 맞어 이제는 부드러워져 힘을 잃었다. 이게 솔직한 상황이고 이게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올바름을 추구하는 진실된 트레이너들에게 선수의 인생을 바꿀수 있는 힘이 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팀이 아닌 센터에서 일하기를 추천한다. 개인의 행복과 인생의 의미도 중요하다. 팀에서 일하는 트레이너는 항상 선수가 먼저고 팀이 먼저고 나는 없다. 팀에서 선수를 상대하면서 유명해진 분들은 정치를 잘하거나, 매스컴 친화적이거나, 포장을 잘하거나, 의도가 다른것일 확률이 매우 높다.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는 트레이너들은 그냥 항상 뒤에 있다. 그냥 뒤에서 빛나지 않고 항상 그렇게 서있을 뿐이다. 그게 트레이너의 모습이라고? 맞다 그게 맞는데 인간은 지친다.


나이가 들면 지친다. 나와 가족 모두의 소소한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지금 이라도 나가는 것이 맞다고 현재의 나는 조언 하겠다. 그런데 딱 하나 운동 선수의 움직임 이라는 진실을 알고 싶다면 그렇다면 버티는 것이 맞다. 지금의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인걸 나 또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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