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가가 맞는 걸까?'라는 질문이 찾아올 때
첫 책을 막 출간했던 즈음의 일입니다. 다음 원고 투고를 위해 동네 커피숍에서 신나게 타이핑을 하던 중이었죠. 안지 얼마 안 된 지인이 절 발견하고는 뭘 하고 있냐고 묻더라고요. 망설이다 '글을 쓰고 있어요'라고 수줍게 답했습니다.
바로 상대의 눈빛에 담긴 질문을 발견했죠.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글을 쓴다고? 무슨 글을 쓰는 걸까?란 의아한 물음이었습니다. 책을 한 권 냈고 더 출간하고 싶어서 투고할 원고를 쓰는 중이라고 털어놓자 여지없이 다음 물음이 찾아왔습니다. “어머, 책을 썼다고요? 무슨 책을 냈어요?”
당당하게 답을 하면 되었겠지만 마음이 조금 쓰렸어요. 당시 제 첫 책의 판매가 부진해서 Yes24 판매 지수만 봐도 마음이 좀 아릴 때였거든요. (이후, 책이 출간 9개월 만에 세종도서 교양도서로 선정되면서 판매를 더 하게 되었지만요.) 얘기를 이어가다 상대는 의미심장한 질문(그 이후로도 수차례 듣게 된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머 그럼, 지원 씨는 작가네요?”
이 지점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지더라고요. 날 작가라고 하는 게 맞을까? 아니, 그런데 작가의 정의가 뭐지? 사람들이 작가를 말할 땐 ‘소설가, 문학가, 예술가, 또는 그럴듯한 베스트셀러를 쓴 사람’이라는 생각의 틀이 있지 않나? 작가라고 하면 생각이 깊고 심오한, 그런 사람 아닌가? 그런 이미지에 내가 부합하는 인간인 걸까? 란 의문이 찾아와요. 그 순간부터는 혀가 뻣뻣해지고 등뒤에 땀이 삐질삐질 솟곤 합니다.
최근에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브런치라는 온라인 공간에선 그래도 서로를 부를 때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어느 정도 익숙합니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작가'라는 단어가 대화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생각이 많아지고 어색해져요. 강연이나 편집자분들과 미팅을 할 때는 그래도 그 호칭을 듣기도 하고 받아들이게 되지만, 처음 누군가를 만나 절 소개해야 할 때는 고민이 되더라고요. 스스로를 설명하는 것에 몹시 서투른 전 ‘단행본 쓰는 일을 해요’ 내지는 ‘집필 노동자’라고 얼버무리곤 합니다.
물론 제 성향과 태도가 글 쓰는 절 알리기에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요즘에는 글 쓰는 사람의 홍보능력이나 당당한 태도, 퍼스널 브랜딩, 힙한 이미지, 인싸력(?) 그런 것들이 중요하니까요. 안타깝게도 제 경우 힙해지거나 당당한 성향을 가지려면 다시 태어나야 할 수준인데, 이런 수줍음은 책 홍보나 판매에 1도 도움이 안 됩니다. 그걸 깨닫고도 여전히 작가라는 이름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순간은 옵니다. ‘내가 정말 작가가 맞는 걸까?’ ‘작가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내게 있나?’라는 질문이 찾아오는 거죠.
최근 글쓰기 슬럼프가 와서 또 한 번 작가란 이름에 대한 질문이 찾아왔어요. 때마침 오랜만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속 글귀가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왜 소설가가 예술가가 아니어서는 안 되는가. 대체 누가 언제 그런 것을 정했는가. 아무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딱히 예술가가 아니어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소설가란 예술가이기 이전에 자유인이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때에 나 좋을 대로 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자유인의 정의입니다. 예술가가 되어서 세간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부자유한 격식을 차리는 것보다 극히 평범한,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자유인이면 됩니다.
이 담담하고도 단단한 글귀를 읽고 나니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글 속 소설가를 작가라는 이름으로 바꾸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하루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만 불가능하니까요) 작가라는 이름에 지나치게 짓눌릴 필요가 없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가'라는 이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이름을 무겁게 여긴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저였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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