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그냥 최근 근황 글
안녕하세요, 유랑 선생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근황 토크입니다. 제가 구독자 멤버십 글 쓰면서는 일주일에 한 번 연재하는 유료 글 외에 다른 글을 쓸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7~9월 근황을 몰아 올립니다. 브런치에 가끔 근황 글을 올릴 때면 '네 잡다한 소식을 누가 그렇게까지 궁금해할까?'라는 생각으로 머뭇거리게 됩니다. (그래서 고민하다 거의 올리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대다수 글쓰기 관련 얘기니까 꿋꿋하게 올려보려고 합니다.
근황 1. 제 글 하나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어요. (사실 인스타그램에 이미 올린 소식 재탕이긴 하지만. 허허), 비상교육에서 이번에 나오는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 첫 단원에 제 글 ‘우리는 왜 첫사랑 이야기를 좋아할까?’라는 글이 담겼습니다. 제목을 들으면 상당히 감성이 넘치는 글일 것 같지만, 첫사랑의 추억이 강렬하게 각인되는 이유를 경제학의 법칙과 엮은 글이에요. 네, 맞습니다. 감성파괴 글이죠.
사실 이 글은 제가 두 번째 책을 위해 출판사에 투고하던 샘플 원고입니다. 제가 언젠가 구독자 멤버십 연재 글 도입부에 썼던 투고 사연에 나온 글이에요. 투고에 성공해서 2020년에 <토론하는 10대를 위한 경제문학융합콘서트>라는 책으로 꿈결출판사에서 출간되어 나왔는데 슬프게도 절판이 되었지요. ㅠㅠ. 소설 소나기 속 첫사랑을 도입부에 등장시키고, 뒷부분에 경제학 원리를 설명하는 비문학 글이었습니다.
제 본업이 교사이다 보니 교과서에 실렸다는 게 유독 기분 좋게 느껴지네요. 출판사에 가보면 2022년 개정 교육과정 교과서를 미리 볼 수 있는 교과서 전시관이 있든요. 그걸 보면서 기쁜 마음에 혼자 히죽이기도 했습니다. (쓰고 나서 상상해 보니 제 모습이 좀 음흉하게 느껴지네요)
2. 8월 초에는 올해 나온 책 『평범한 말들의 편 가르기, 차별의 말들』 관련해서 국악방송 라디오의 <은영선의 함께 걷는 길>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했어요. (8월 16일에 방송이 되었습니다.) 의외로 출간 후에 오롯이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만 나눌 기회가 흔치 않은데, 이 방송에서는 정말 책 속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라디오 부스에 간 것이 처음이고 책 얘기를 꽤 길게 하는 터라 낯설고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진행자인 성우 은영선 선생님께서 워낙 유려한 솜씨, 편안한 목소리로 진행을 해주셔서 녹음이 수월하게 끝났습니다.
방송에서 정상과 비정상, 등급에 대한 이야기를 고루 나눴습니다. 특히 저는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흔히 정상과 비정상이란 말을 쉽게 하지만, 사실은 그 명확한 경계선은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모두 어떤 스펙트럼 위, 조금씩 다른 위치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행자인 은영선 성우님께서 '차별의 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조심하는 것도 좋지만 이제 공감과 연대의 말, 앞으로 쓰면 좋을 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책도 많아졌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을 여러모로 되새기고 곱씹어 보았습니다.
3. 방학과 가을 시즌에 도서관과 학교 강의를 이곳저곳 다녔습니다. 제 첫 책인 『그림이 보이고 경제가 읽히는 순간』 (자음과 모음, 2019)을 주제로 학부모님과 학생들을 만났는데, 성인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에드워드 호퍼와 경제 대공황, 렘브란트와 초기 자본주의 시기의 부르주아 이야기 등등을 엮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일단 그림 관련 원고를 쓰거나 강연 준비를 하면 기분이 좋아요. 그림 파일 담으면서 눈호강을 할 수 있거든요.
며칠 전 일산에 있는 학교에도 강연을 갔는데요, 『자본주의 사회, 빈부격차는 당연한 걸까』(글담, 2024)란 책 관련하여 강의를 갔습니다.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흐름이라던가, 빈부격차와 관련된 쟁점 등에 대한 얘길 나눴는데요, 강의 끝나고 두 학생이 남아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더라고요. 자본주의의 전망이나 사회주의에 대한 물음이었어요. 보통 제게 질문하는 친구들은 사회나 경제에 관심 있거나 관련학과 진학을 꿈꾸는 학생이 많은데, 이번에는 둘 모두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터라 놀랐습니다. 심지어 한 학생은 사회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를 소설에 넣고 싶다고 얘기해서 더 놀랐죠 ㅎㅎ조금 더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저도 집에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 해서, 더 길게 얘기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더군요. 소설에 무정부주의자를 넣는다니?!
제 어릴 적도 모습도 기억나더군요. 학창 시절 저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지내거나 말간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녀는 아니었어요. 곧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시니컬해지던 아이였죠. 그럼에도 외롭지는 않았던 건 글이랑 책이 있었던 덕분이었어요. 상상 속 세계를 짓고 허물며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남몰래 '난 남과 달라'라는 자부심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치기 어린것이었지만 - 을 느끼던 아이였습니다. 양귀자의 『모순』 같은 소설을 레퍼런스 삼아 도무지 해석하기 어려운 제 삶이나 가족의 모습을 홀로 해석해 보기도 했고요. 그래서 학교 강연을 가거나 근무지에서 어릴 때 저와 비슷한 친구들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4. 바로 어제의 일이었는데요, 저의 브런치 6년 이웃이신 늘봄유정 작가님께서 운영하시는 독서모임에 초청되어 갔습니다. 늘봄유정 작가님은 교육자원봉사동아리를 오랫동안 운영하고 계세요. 그 교육자원봉사동아리에서 독서모임을 하고, 작가와의 만남에 저를 초청해 주신 거예요. 작가님은 평소에 중고등학교에 방문하셔서 교육자원 봉사로 디베이트 토론 수업을 진행하시거든요. 저도 사회과 교사라 그 얘기를 읽으면서 늘 감탄하고 동질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아늑한 공간에서 진행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포트락 파티처럼 독서모임 회원분들이 먹을 걸 싸 오시기도 했는데요, 덕분에 맛있는 브런치까지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봄유정 작가님이 제 책을 6권 이미 갖고 계셔서 감동의 펀치를 연속 맞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평범한 말들의 편 가르기, 차별의 말들>를 주제로, 사회적 쓸모, 갓생,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얘길 했습니다. 특히 사회적 쓸모에 대한 대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늘봄유정 작가님께서 글쓰기와 교육자원봉사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봉사도 글쓰기도 개인에게는 큰 의미가 있고 뜻깊은 행위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경제적 가치로 환원할 수 없단 이유 하나로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는 시선을 받는 경우가 있거든요. (저도 글 쓰면서 꽤 들어본 얘기입니다.) 한편으로는 제 자신이 그 사회적 쓸모와 숫자의 세계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사고를 하고 있나, 질문을 던져보게 되더라고요.
늘봄유정 작가님의 따스한 환대에도 정말 감사했어요. 저는 사실 브런치 초창기에 이곳의 이웃분들 보면서 자주 놀라곤 했습니다. 이렇게 대가 없이 타인에게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니. 평소 머리 굴리는 데 익숙한 저에게 좀 결여된 특성이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늘 온기를 나누는 것보다 조금씩 거리두기 하는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곤 했거든요. 다정함이나 인간관계의 정 나누기 등의 단어는 관심 바깥의 얘기였죠.
6년 전에 브런치 시작하고 이웃분들 만나면서 ‘나도 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주변에 온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했어요. 그래서 ‘덜 시니컬해지기’, ‘다정한 사람 되기’ ‘긍정적인 면 살펴보기’ 프로젝트를 조용히 혼자 5년째 진행 중이에요(정말 조용히 저 혼자만 진행하고 있어서 제 주변 분들은 이 얘기 들으면 깜짝 놀랄 거예요;;;; )
그런데 모든 인간에게는 타고난 성향과 기질이란 게 있잖아요. 저도 내면의 다정함을 품고는 있지만 늘 표현이 서투른 편이거든요. 그런 표현을 하루에 열 마디 정도 내뱉으면 기력이 금방 소진돼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수월하지는 않은데, 늘봄유정 작가님의 따스함을 보면서 다시 마음의 고삐를 붙잡았습니다.
5. <최소한의 과학공부> 저자이자 제 브런치 이웃이신 배대웅 작가님이 운영하시는 글쓰기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어요. 배대웅 작가님 뿐 아니라 5분의 작가님 (김보영 작가님, 샤인젠틀리 작가님, 소위 작가님, Sweet little kitty 작가님, 회색토끼 작가님)과 함께 대면으로 한 번 만났고, 비대면으로도 밤늦게 (저처럼 육아하는 분들이 꽤 계셔서) 만나고 있습니다.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 쓰기>에 대한 글을 보고, 글쓰기에 대한 고민도 나눴어요.
저는 배대웅 작가님이 글쓰기 공지글을 보자마자 신청을 했는데요, 요즘 글쓰기 슬럼프가 컸던 게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6년 전 브런치 글쓰기 시작할 때의 저는 매일 흥분한 상태였습니다. 이야기보따리를 더 재미나게 활자로 풀고 싶다는 욕구가 최고조에 달할 때였죠. 하지만 책 쓰고 브런치 연재를 지속하다 보니 그 욕구가 많이 사그라지지 않았나 싶어서, 이 난국을 타개하고자 세미나에 참가했습니다.
책을 보면서 서로 글쓰기 고민을 나눴는데요, 일단 배대웅 작가님이 회의하기 전에 5~6장에 달하는 발제문을 보내주셔서 놀랐어요. 이 단어를 작가님이 좋아하실지 모르겠지만 열정과 탐구 정신(!), 진솔함을 모두 지닌 분이시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작가님들의 글쓰기에 대한 반짝이는 마음, 진지하고 진솔한 고민을 통해서 배운 점이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글쓰기를 몇 십 년째 이어가고 계신 분들도 많은데 고작 7년째 밖에 안 된 제가 느슨해졌다는 건, 너무 섣부르고 주제넘은 일 아닐까, 반성을 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마음 고삐도 다시 붙들었지요. (여전히 슬럼프이긴 하지만요)
6. 지난주 10화를 끝으로 멤버십 구독 연재 글이었던 <책 쓰기 고민해결소 2> 연재가 끝났습니다. 제가 유료 연재를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잘은 모르겠어요. 이건 유료 연재의 성격보다 제 성향에 기인한 부작용이 있더라고요. 구독료를 내는 분들에게 제공해 드리는 글인 만큼 어떻게든 실질적 도움이 되어드려야겠단 강박이 너무 컸어요. 물론 그만큼 출간 기획안도 기획안 예시도, 워크시트도 제공해 드렸고, 구독자분들에게 도움도 드린 것 같아 뜻깊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많이 몰아붙이며 글을 쓰는 스타일이라서 에너지를 꽤 많이 소진했죠. 다음 연재는 무료 글로, 조금은 더 편안하게 쓰고 싶은 이야기를 더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냈던 책에 실렸던 글을 좀 추려서 연재를 하게 될 수도 있고요.
덧붙이자면 저도 브런치 10년, 작가의 꿈에 응모하는 글을 써서 발행하고 싶었어요. 이 공간을 통해서 글을 쓰는데 큰 힘을 얻었고 글 쓰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셈이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원고 집필 등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글을 올리지 못해 아쉽더라고요.
사실 좋은 소식을 주로 담았지만, 나머지 날들 대다수는 원고에 집중하지 못해서 머리 쥐어뜯는 순간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실제로 원고 마감을 제 때 하지 못해 죄책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ㅠㅠ) 한 번씩 창피하거나 자존심 상하거나 이불킥을 하고 싶은 순간도 계속 쌓이고 있고요. (솔직히 저도 제가 원하는 기획안을 넌지시 얘기해도 출판사에 까일 때(?)가 꽤 많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오은영 선생님이 TV에 출연하셔서 하신 말씀, “제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체면 구겨질 일은 계속 생긴다. 결과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으니 최선을 다할 뿐” 이란 얘기를 곱씹으며 큰 힘을 얻어요.
초보라 서툰 순간, 거절당하고 창피한 순간의 나를 좀 마주해도, 누구나 다 그런 시간을 한 번씩 겪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게 인생의 기본 디폴트이고 속성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아무튼 이 글 읽는 여러분들도 가끔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순간을 맞을까 걱정되어도 '누구나 다 겪는 과정이니까 창피할 것 없다'는 생각으로 원하시는 바, 마음껏 시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길고 잡다한 근황(?)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11월 후반기나 12월쯤, 다시 연재글로(아마 무료 연재글이 될 듯합니다) 찾아오겠습니다. 이제 날이 시원해졌으니 마음 선선하고 행복한 날들 보내시길 바라요.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