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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꿈, 이룰 수 있을까?

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 팝업 전시, 뒤늦은 후기

by 유랑선생

브런치에 가입한 지 6년이 되었다. 2020년 2월, 브런치 작가에 합격하면서 이 글쓰기 플랫폼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깊은 생각은 없었다. 초보 저자라 책 출간 후 조용하게라도 소식을 알릴 SNS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단 마음이었다. 고민은 했다. 평소 성향으로 미루어보아 내가 SNS와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을 인간임을 예측했기에. 긴 글 위주의 공간, 텍스트 중심의 공간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구독자 0명 상태에서 어떻게 글을 올리지? 막막했던 기억도 있고, 구독자가 수천명인 작가님들 공간을 부러움에 기웃대던 순간도 기억난다. 그때는 몰랐다. 브런치 활동에 이토록 진심이 될 줄은.

6년 전 받았던 메일


지난주, 브런치 10주년 전시회에 갔다. 감사하게도 브런치팀에서 초대장을 보내주시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가 볼 마음이었다. 브런치는 내게도 뜻깊은 공간이니까. 6년 간 이 공간에서 연재를 해왔다. 스스로 마감을 정하고 글을 쓰고 다듬고 발행하며, 그리고 이웃분들과 소통하며 글쓰기의 깊은 맛을 알았다. 작가의 꿈, 100인에 선정되어 전시된 이웃분들 귀한 글도 읽고픈 마음이었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몇 달 전 브런치팀의 한 프로덕트 리더님과 브런치 멤버십 관련 일로 메일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내가 글 쓰는 일에 회의감을 많이 품었을 시기에, 주고받은 메일이었다.) 10년 간 이 팀에 계셨단 이 분의 편지 속 한 부분이 마음에 많이 남았다.


브런치팀의 한 분이 보내주신 메일. 업무 메일(?) 속 한 문장이었지만 브런치에 10년 간 몸담으신 분의 지난 시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글귀였다.


묘한 일이다. 본업을 해도 글 쓰는 일을 지속해도, 육아나 살림도, 계속하다 보면 세상 모든 이에게 ‘동지의식’ 같은 것이 생긴다. 어떤 업에 종사하든, 어떤 위치에 있든 어떤 역할을 하든 모두들 자신의 자리에서 분투하는 중이구나. 진심과 고민과 고단함과 기쁨을 동시에 껴안고 그 일을 지속하고 있겠구나.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있다. 전시를 준비하는 브런치 팀 분들도 지금 같은 과정을 건너고 있겠구나 싶었다. 그 마음과 정성이 담긴 전시가 어떨까. 궁금했고 응원도 보내고 싶었다.

사실 작년에 성수에서 열린 <작가의 여정> 브런치 팝업 전시회에도 초청장을 보내주셔서 들렀던 기억이 있다. 당시 대상 수상하신 소람 작가님을 잠깐 뵈었지만 바쁘실 것 같아 축하인사 드리고 거의 혼자 구경을 했다. 이번에는 이웃이신 조니워커 작가님정재경 작가님께 전시를 핑계 겸 뵙자고 연락을 드렸다. 두 분과 지난 3월 브런치 멤버십 작가와의 만남으로 한 번 뵌 적이 있다. 다시 뵙고 글쓰기 얘길 나누고 싶었다. 연락 전 망설이긴 했다. 난 누군가에게 먼저 만나자는 얘기 건네는 게 어려운 회피형 인간이니까. 그래도 용기를 내어 연락하니 흔쾌히 두 분 다 만남에 응해주셨다.


카카오에서 줌으로 진행했던 브런치멤버십 작가와의 만남 현장. 정재경 작가님과 조니워커 작가님과 함께 해서 더 뜻깊었다.


퇴근 후 서촌 유스퀘이크로 급히 발길을 옮겼다. 가는 길에 우연히도 이웃인 이석재 작가님(브런치 필명 미친 PD 작가님)을 마주쳤다. 한 번도 실제로 뵌 적은 없지만 한 번에 알아봤다. (이석재 작가님은 이번 전시에 직접 참여한 분이기에 더욱 반가웠다.) 지독한 길치인 내가 경복궁역에서 전시장과 반대편으로 가려는 중이었는데, 작가님 덕분에 유스퀘이크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이름표를 받고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1층 전시 공간 중 어떤 곳에 들어섰는데 어두컴컴했다. 어리둥절한 참에 누군가 형광 라이트를 밝혔다. 벽에 글귀가 쓰여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내면의 고민을 담은 문장들이다.


나에게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으면 어쩌지?

유명한 사람만 작가가 될 수 있는 걸까?


솔직해지겠다. 글을 쓰면 이 물음이 사라질 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7년째 비슷한 질문을 거듭하는 중이다. 어떤 분들은 '글 쓴 지 7년 된 당신도 이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냐' 질문하시는데 그렇다. 최근에도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에 시달렸다. (특히 요즘에는 번아웃과 회의감에 시달려서 '이렇게 글을 계속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물음을 많이 던졌다. 주변 말대로 책이며 글을 지나치게 많이 내놓은게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

다음 <꿈의 정원> 구역에서는 브런치북 프로젝트 수상작과 다양한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여섯 작가님들의 다양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웃 분들의 글쓰기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나도 8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으로 대상을 수상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 공간에 책과 이름이 있었다.


브런치북 수상작 사진들과 전시장 3층에 놓인 그림의 말들(오른 쪽 사진은 사실 미친 PD 작가님이 찍어주신 것)



여섯 작가님들의 공간과 100편의 글도 만날 수 있어 기뻤다. 6인의 작가 공간에 참여하신 정재경 작가님과 이석재 작가님께 도슨트 설명을 듣듯, 각 소장품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 행운이었다. 이웃이자 작년 대상 수상하신 최재운 작가님도 잠시 마주칠 수 있어 좋았다.


정재경 작가님의 글쓰기 10년 노트가 담긴 공간(좌)과 미친PD 작가님의 스포츠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우)
대상 수상작으로 실린 최재운 작가님 책(좌)과 100인의 작가님들 글 전시된 모습(우)



100인의 글쓰기 공간도 찬찬히 둘러봤다. 글쓰기에 대한 진심이 가득 담긴 문장들을 읽었다. 이웃인 정혜영 작가님, sweet little kitty 작가님, nay 작가님, 찬란 작가님 글을 발견했다. 시간이 부족해 더 많은 글을 시간과 정성 들여 읽지 못했단 게 아쉽다.



이웃 작가님들인 정혜영, sweet little kitty, nay, 찬란 작가님 글. 다른 작가님 글도 더 찍고 싶었는데 다른 분들도 글을 읽고 있어서 찍기가 어려웠다.

전시된 글 읽으며 글쓰기에 따라오는 질문을 곱씹고 답했을, 작가님들의 시간을 상상해 봤다. 역시나 깊은 동료애가 발동한다. 큰 응원을 보낼 수밖에. (나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이기도 하겠지)

전시를 훑어본 뒤, 정재경 작가님, 조니워커 작가님과 근처 식당에서 저녁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아무래도 주요한 대화 주제는 글쓰기다. 최근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제법 있었다. 글이나 책을 갈수록 읽지 않는 시대에 내가 얼마나 오래 글을 쓸 수 있을까. 나조차도 집중력이 산산이 흩어지는 시기인데. 그래도 두 분의 얘기 들으며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다.


작가의 꿈을 이루는 타이핑 공간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센스 만점인 조니워커 작가님이 사진 찍어주심.


오는 길에 글쓰기란 행위를 곱씹어 봤다. 글쓰기는 마라톤과 비슷한 면이 있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각자의 결승점을 향해 뛴다. 뛰는 도중에는 앞서거나 뒤처지는 순간, 승패에 신경이 쏠리지만, -그래서 번민과 열등감에 종종 사로잡히지만- 종내는 각자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뛰는 행위를 이어간다. 결국 결과나 순위가 아니라 자신의 호흡과 맥박을 느끼며 뛰는 그 순간이 남는다. 그렇다면 나에겐 브런치에서 7년 간 홀로 마감을 정하고, 글을 쓰고 다듬고 발행하고, 누군가와 소통한 그 시간이 남는 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생각해 본다. 작가의 꿈, 이룰 수 있을까? 그리고 이어갈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 나 역시 명확한 답을 단정짓지 못한다. (7년째 매일 글쓰고 있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읽는 분들께 너무 힘빠지는 얘기가 되려나 싶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큼은 안다. 나도 내 곁의 글벗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글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매순간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자를 짓고 다듬고 있다는 것. 그것이 무의미한 행위는 아니라는 생각. 이 믿음을 부여잡고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는다.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멤버십 연재 끝나고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그동안 제대로 이웃분들 글도 제대로 찾아오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제가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던 청소년 책 원고 마감을 못했던 터라(원고 마감을 몇 달 밀렸는데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었네요) 집중력을 끌어올리려, 브런치 앱이며 인스타 앱이며 모두 지운 상태였어요.


사실 브런치 전시를 보러 간 날 오전에야 원고 마감을 해서 편집자님께 겨우 보냈습니다. 이웃분들 글도 꽤 오랫동안 찾아가지 못해 죄송했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이번 전시 가서 보니 브런치팀 분들이 6개월 전에 뵈었던 때보다 아주 조금씩 수척해진(?) 느낌이었는데 전시를 위한 시간과 정성을 엿볼 수 있었어요. 멋진 전시 공간 기획하고 구성하고 진심을 담아 환대해주셔서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게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어요. 확실히 이 공간에서 마감을 거듭하면서 제 글쓰기가 많이 달라졌음을 깨달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 )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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