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골프공 하나를 멀리 날려버리려는 욕심
눈앞에 드넓은 푸른 잔디가 펼쳐진다. 각 종 미디어들, 자동차의 소음과 같이 불편한 소리와는 멀어진다. 듬성듬성 자리한 호수와 모래밭은 마치 지구를 미니어처 화 한 것 같다. 조그만 공 하나를 바닥에 놓고, 내 능력을 시험한다. 얼마나 멀리 정확하게 보낼 수 있을까? 쭉 뻗어 날아가는 공과 함께 마음속 응어리 들도 날아간다.
취미 얼리어답터라는 자부심이 있지만, 골프에 대해서는 조금 늦게 시작한 감이 있다. 원래 구기종목에 특기가 없는 탓이다. 그나마 못하면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다른 종목에 비해,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에 가깝다 생각하며 시작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골프란, 드라이버를 휘두르는 멋진 모습을 보고 시작하지만, 드라이버는 정작 가장 마지막에 배우게 된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하찮은 기술이다. 골프는 거리에 따라 채를 바꿔가면서 친다. 정확도보다 거리가 중요한 곳에서는 드라이버를, 정확도가 중요한 곳에서는 아이언을, 완벽한 컨트롤이 필요한 홀 컵 주변에서는 퍼터를 사용한다. 골프는 7번 아이언에서부터 시작된다. 많은 골프초보자들은 공감 할 거다. 지겹게 7번 아이언을 친다. 강사들은 7번이 아닌 다른 채는 손도 못 대게 한다. 그렇게 폼이 좀 잡히면 드라이버를 배우고, 필드를 나가면서 어프로치 샷과 퍼팅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교육과정 덕분에 열심히 채만 휘두르다, 굳어버린 몸은 인정하지 않고 원하는 폼만 노력하다 골프에 대한 흥미를 잃기 십상이다.
골프의 진짜 즐거움은 영국에서 배웠다. 신사의 나라, 곱게 깔린 초록색 잔디와, 성처럼 보이는 건물들, 각종 국제대회를 위해 설계된 아름다운 조경과 코스들… 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처음 머리 올리는 시점에 좋은 골프장이 웬 말이냐. 줍는 공보다 버리는 공도 많은데, 코스의 개념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많은 비를 맞고 자란 잔디들은 파릇파릇하다 못해 푸른 숲을 형성한다. 하지만 모든 걸 상회할 만큼 저렴한 가격(이만 원도 안 된다), 앞 뒤 팀이 없어 공을 몇 개씩 놓고 치는 여유로움은 골프가 생활스포츠임을 상기시켜 준다. 영국에서의 골프레슨도 이와 같았다. 7번 아이언을 잡는 한국과 다르게 퍼터를 먼저 들고 필드로 나간다. 홀 컵에 공이 들어가는 딸랑 거리는 소리에 골프에 대한 재미가 올라간다. 그리고 어프로치를 배운다. 이제 파3 코스를 즐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롱 아이언과 드라이버를 배우기 위해 레인지로 간다. “You can play golf”라는 슬로건에 맞게, 정말 골프를 치며 놀 수 있게 가르쳐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원포인트, “필드에서는 그냥 앞 만 보고 치세요~ 생각을 많이 하면 안돼요.”
골프가 어려운 이유는 공이 앞으로 멀리 안 나가서도, 홀 컵에 넣기 위해 두세 번 계속 쳐야 해서도 아니다. 진짜 이유는 바로 멋지게 치기 위한 뽀다구! 프로들과 같이 활처럼 휘어지는 아름다운 허리 곡선과 스윙 궤도는 물론이고, 초록 들판에 어울리는 멋들어진 패션이 빠진다면 마치 시작조차 못할 것 같은 어려움이 있다. 더군다나 ‘골프’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순간 쇼핑 금액은 두배 세배로 솟구친다. 이미 굳어버릴 대로 굳은 몸이라 공만 앞으로 나간다면 폼은 포기한 지 오래고, 아직 패션만큼은 포기하기 어렵다.
골프를 즐기는 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PC방처럼 이곳저곳에 자리 잡은 스크린 골프장을 가는 것이다. 골프 채도 빌려주고, 잘 못 쳐도 보정이 되고, 일행 말고 보는 사람도 없다. 대신 퍼팅이나 잔디의 감을 살리기 어렵다. 다음 선택지는 파3 퍼블릭이 있다. 서울 근교에도 몇 군데 있으며, 정식 코스가 아닌 탓에 비교적 사람도 적어 예약도 수월하고 못 쳐도 눈치가 덜하다. 정규코스로 가면 뒷팀의 압박이 시작된다. 그나마 퍼블릭은 다 같이 못 치는 경향이 있어서 괜찮다. 캐디들의 중요한 역할이 못 쳐도 앞으로 이동시켜 전체적인 흐름의 지연을 막는 것이라 느껴진다. 최근, 닌텐도 스위치 전용 골프채를 샀다. 그리고 마리오 골프를 한다. 집에서 느끼는 스크린과 비슷하다고 할까? 얼마나 연습이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슬라이스를 치고, 다운블로 판정을 받는 것 보니 꽤나 사실감 있게 (못 치는) 골프를 반영하는 것 같다.
한 때 스케이트보드에 빠졌던 시절, 모든 난간과 경사면이 보드를 위한 기물로 보이던 적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으로 골프영상을 보며, 나도 모르게 벽에 머리를 박고 몸을 돌린다. 그리고 수건을 골프채인 것처럼 휘두른다. 정작 연습장에는 가지 않는다. 이렇게 10년간 초보로 머무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