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바람 나의 기록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고, 반짝이는 물건이 보이면 관심이 가고, 귀여운 아기나 동물을 보면 챙겨주고 싶고. 이런 것들은 의도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본능과도 같다. 신나는 음악이 들리면 몸이 들썩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춤을 좋아했던 것 같지는 않다. 춤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따로 없지만 수련회 같은 활동으로 춤이나 포크댄스가 나왔을 때, 몸을 흔드는 행동이 부끄러웠는지 이성과 함께하는 뭔가가 그냥 어색했는지 매우 건성으로 했었다. 생각해보면 춤이 부끄러웠던 게 아니고 사교댄스라는 장르가 어색했던 것 같다.
멋진 댄스에는 언제나 흥미가 있었다. 브레이킹 댄스를 하는 사촌 형의 영향을 받아 힙합에는 큰 관심을 가졌다. 만화책 “힙합”은 어려워 보이는 동작을 스텝 별로 풀어 쉽게 가르쳐주었다. 나름 균형감각이 있었기에 팔을 땅에 짚고 허리를 옆으로 빠르게 돌리는 베이비나 머리 박고 물구나무서기 같은 프리즈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브레이킹 댄스의 멋짐은 의외로 빙빙 도는 회전이 아니다. 물론 클라이맥스에 화려한 회전이 들어가면 관중들을 홀리겠지만, 리듬을 타며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쓰지 못하면 기술은 그냥 기교로 끝나버린다. 그래서 망했다.
이상하게도 내 몸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분명 귀로 듣고 생각하며 몸으로 움직이는데, 귀가 잘 듣지 못하는 건지, 귀에서 들은 내용이 머릿속에 느리게 전달되는지, 생각이 너무 긴 건지, 몸이 내가 시키는 대로 안 움직이는 건지, 내 춤은 행위예술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첫 회사에 취직하고 신입생 OT로 싱글레이디 안무를 여럿이 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주 민폐 수준은 아닌가 보다.
이후 다른 도전도 시도하곤 했다. 문워크는 도저히 실패. 씨워크는 그래도 좀 했다고 생각하고. 클럽의 부비 댄스는 나름 이상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레퍼토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맞춰서 가볍게 흔들기만 하면 된다는데 아직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무대를 넓게 쓰는 법에 약한듯하다. 얼굴로 하는 댄스는 그래도 자신 있다.
유흥과 멋 부림의 춤을 예로 들었지만, 결국 춤은 소통이다. 파트너 혹은 대중들을 사로 잡기 위해 몸을 흔들어 댄다.
우연히 차이코프스키의 꽃의 왈츠를 들었다. 책에서 본 그림 때문인지 음악에 대한 본능인지 아이들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두 손을 맞잡고 빙빙 돌아보니 기분이 더 좋다. 문득 걱정이 된다. 한국의 사교댄스는 짝을 찾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춤바람 교실 아니면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와 같이 미국물 먹은 초상류층 RSVP 파티 둘 중 하나 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