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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빈 Dec 28. 2021

눈이 녹으면

'멋지게 나이 들기'를 꿈꾸지만, 가끔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생각의 차이를 느낄 때면 깨어 있는 채로 나이를 먹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끼곤 한다.


 어떤 모습을 지향하며 나이를 먹어갈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어느샌가 몇몇 사람들의 인식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통념들이 무섭게 생각을 지배하려 든다.


 나이가 들어가며 생기는 주름은 심술궂은 주름, 인자한 주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같은 주름살도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품행은 무엇일까.


 종종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앞자리에 노인분들이 서계시면 자리를 양보하곤 한다. 양보를 받은 어르신분들의 반응은 제각각인데,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채 일어나기도 전에 몸을 들이미는 분도 있는가 하면, 생긋 웃으시며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분도 있다.

 하루는 사람이 꽤 많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멋진 페도라를 쓴 어르신이 내 앞에 섰다. 선뜻 자리를 양보해드렸는데, 어르신께서 하시는 말씀이 꽤나 인상 깊었다.

 "앉아 있어요, 요즘엔 나 같은 노인보다도 젊은이들이 더 힘든 거 같아요. 지하철에서라도 편히 앉아 가세요."

 사실 자리를 양보해드리며 처음 듣는 말이었기에,  ‘내 얼굴이 많이 피폐해 보였나..’하며 적잖이 당황했으나 이미 일어났으니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괜찮다며 자리를 한 번 더 권해드리니 앉으시며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시며 인자한 주름이 담긴 미소를 지어주셨다.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나도 모르게 인자한 주름이 담긴 미소라고 적어 내려가며, 순간을 결정짓는 품행은 굳이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생긋 웃으시며 “멀끔하게 생긴   어릴  나를 보는  같아 허허허라며 기분 좋게 웃으시는 어르신을 보며 어쩌면 멋지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눈이 녹으면 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산뜻한 봄이 온다고 말할  있는, 온도 높은  한마디를 건넬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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