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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빈 Nov 04. 2021

점, 선, 면

 2016년 여름, 입대 후 훈련소 과정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되었을 때 나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였다. 사회에서 접하지 못해 본 것들을 처음으로 겪다 보니 모든 게 미숙했다. 그곳에서 만난 선임들은 참 다양했다. 조금은 까칠한 선임도 있었고 여유 있고 유한 선임들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임은 나와 속칭 “아빠 군번”(본인의 입대일보다 1년가량 빠른 사람) 사이인 선임인데, 사람이 참 선했다. 다른 말보다도 선하다 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느리고 미숙하더라도 결코 화내는 법이 없었다.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훗날 내가 선임병의 위치가 된다면 태도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던 것 같다. 입대 전 풍문으로 듣기론 군대에선 반면교사를 마음에 새길 일이 많다고 했는데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을 만나 분명 기쁜 마음도 들었다.


 전역한 지 꽤 시간이 지나고 직장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처음에는 잘 알지 못했는데 지내다 보니 앞서 말한 선임의 모습이 간간히 투영되었다. 외모는 전혀 달랐지만 그려진 선은 비슷했다. 전에 좋았던 기억들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더 정감이 가더라. 예상한 대로 어렵지 않게 친해졌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사람은 살아오면서 저마다의 선을 그려나간다. 방향과 길이가 다른 선들이다. 무수한 선들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형태를 구체화시킨다. 찍어놓은 점들은 선이 되고 모인 선들은 면이 된다. 그 사람이 그려놓은 어느 한 면을 보며 흔히 “그 사람은 그런 면이 있더라”라고 한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어떤 사람에게서 다른 특정한 사람이 떠오르거나 그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아마 조금은 달라도 비슷한 선들을 그려온 사람들일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볼 때 주변 지인의 좋았던 면이 새로 만난 누군가에게서도 비친다면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따뜻해진다.


 관계를 쌓아가며 배우고 싶은 점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내가 아직 그려나가지 못한 면들을 근사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 완벽하게 따라 그리진 못하더라도 바라보며 비슷한 점들이라도 찍어나가려면 이러한 사유에 긍정적인 도움을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무수히 많은 점들을 찍고 지우길 반복한다. 삐뚤빼뚤 그어진 선들을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며 올곧은 선들을, 그럴듯한 면을 그려낼 수 있기를 바라보며. 또 언젠간 누군가에게 그러한 사유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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