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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크 Sep 15. 2022

발골사들이 모여있는 곳

중국 상하이 왕영건 마사지

상하이에 처음 간 것은 2011년도였다. 당시 나는 세계일주를 계획하고 있었고, 그 여행의 전초전의 느낌으로 중국 상하이에 가게 된다. 그 이후로 나는 뻔질나게 매년 혹은 2년에 한 번씩 상하이를 방문했다.


상하이에 가서 가장 먼저 한 일도 마사지샵을 찾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상하이의 단골 마사지샵을 만들게 된다. 왕영건 마사지. 왕연건. 사람의 이름 같다. 아마도 그럴 것으로 추측한다. 왜냐면 마사지 샵 로고 안에 어느 중국 아저씨가 사람 좋게 웃고 있었으니깐. 중국말은 할 줄도 모르지만, 심지어 한자를 읽을 줄도 모르지만 어떻게 중국어로 된 앱을 다운로드하여서 번역을 돌리고 돌려서 찾아낸 곳. 그곳이 바로 왕영건 마사지 샵이다. 알고 보니 상하이를 여행하는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저렴한 마사지샵으로 이미 유명한 프랜차이즈였다.


왕영건도 하지만 다 같은 왕영건이 아니었다. 프랜차이즈인지라 상하이만 해도 그 당시 20개가 넘는 왕영건이 있었는데, 나는 한국인답게 그 중에서도 가장 평점이 높은 곳을 찾아냈다. 그곳은 내가 묵고 있는 숙소에서는 그다지 멀지는 않았지만 동선이 애매해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고 한참을 걸어야 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을 수 없는, 하지만 핸드폰 번역으로 투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평점을 받은 그 마사지샵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고 한참을 걸어 그 마사지샵을 찾아가서 60분짜리 마사지를 받게 된다. 가격은 대략 우리나라 돈으로 1만 8천 원에서 2만 원 사이였던 것 같다. 매번 다르게 프로모션 기간이 있는데, 내가 갔을 때는 프로모션이 끝나고 난 직후라 정가를 주고 마사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상하이에 지내면서 내가 갔던 왕영건은 주거단지의 상가 1층에 위치해있었다. (애석한 것이 글을 쓰면서 그때 그 왕영건을 찾아보려 했으나,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투명 유리문 안으로는 일렬로 의자를 배치해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직사각형의 조그마한 매장이 있었고, 그 매장 안은 대부분의 시간 사람들이 꽉 차있곤 했다. 마사지 샵 안에는 대형 금붕어 어항이 있었다.


60분짜리 마사지를 선택하면 앉으면 땅으로 꺼질 것만 같은 그 정도로 푹신한 검정 레진 의자에 앉아 족욕을 시작으로 발마사지, 어깨 마사지, 허리 마사지, 목 마사지를 거쳐 마지막으로 머리 마사지를 받는다. 원한다면 발마사지 전에 발 뒤꿈치 각질도 제거해주고 발톱도 바싹 깎아준다.


마사지 샵에 들어가면 발을 일단 뜨거운 물을 넣은 대야에 담가놓는 것부터 시작한다. 나중에 발 각질 제거를 해주겠냐고 마사지사가 묻지만, 나는 늘 싫다고 했다. 아직 생판 남에게 나의 각질과 발톱 손질을 맡길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위생상으로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과연 이곳의 면도칼과 발톱깍이가 위생적으로 잘 관리가 될까라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나는 건강염려증이 있기 때문이다.  


족욕을 하는 대야는 그냥 대야가 아니라 비닐로 감싸 져 있는 나무로 된 대야이다. 그 사이 내 옆자리의 아저씨를 보니 아저씨 발가락에 털들이 숭숭하다. 어떻게 발가락의 털이 저렇게 길게 자랄 수 있을까 싶어서 보고 싶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만 모르는 중국 아저씨의 발가락들을 쳐다보게 된다. 그 와중에 옆의 마사지사는 발가락 털들을 사이로 손을 빠르게 움직여 각질을 벗겨내고 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면, 식욕이 뚝뚝 떨어지지만 아이러니하게 그 장면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다. 마음속으로 마사지사의 재빠른 손짓을 응원한다.


내가 자신있게 구사할 수 있는 중국어는 딴 네 단어 뿐이었다. “니하오(안녕)”, “쉐쉐(고마워)”, “한궈(한국)”,“워아이니(사랑해)”. 그렇게 뻔질나게 상하이를 놀러갔으면서도 제대로 된 중국어 문장 하나 구사하지 못하는 나의 게으름에 가끔은 놀랍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마사지사들과의 의사소통은 손짓과 몸짓, 그리고 때때로는 통역기(참고로 그 당시 중국에서는 여전히 구글 접속이 통제되어 있었다)로 이루어졌다. 손과 몸을 이용해 마사지사에게 내가 받고 싶은 마사지 종류와 집중하고 싶은 부위를 설명한다. '이렇게, 그리고 이렇게 이렇게 해주세요.' 손을 야무지게 그리고 힘 있게 접었다 펴본다. 엄지손가락으로 한 곳을 지그시 누르는 흉내를 낸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동그라미를 만들어서 마사지사를 쳐다본다. “오케이?”


족욕을 끝내면 마사지사는 나의 발에 물기를 닦아주고 발부터 마사지를 시작한다. 아, 이 족욕의 물 온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어렸을 때 목욕탕을 가면,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열탕에 들어가서 ‘아유~ 시원하다’를 외치고 있었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온몸이 벌겋게 익을 때까지 열탕 속에 몸을 담근 채로 김장 얘기나 손자 손녀 얘기를 하던 동네 할머니들. 조금이라도 온도가 떨어질라치면 물이 뜨겁지 않다고 목욕탕 주인에게 바로 성화를 부리곤 하셨다. 열탕은 뜨거워야 맛이라면서.


왕영건의 족욕 물의 온도는 내가 보기에 할머니들이 자주 가는 동네 목욕탕의 열탕 정도의 온도이다. 처음 물이 담긴 대야에 발을 넣을 때는 엄청나게 뜨거워서 이거 도대체 발을 넣을 수는 있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옆을 보고 그 옆에 옆을 봐도, 태연하게 족욕을 하고 있는 다른 중국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할 말 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대야에 말을 넣고 삼 초간은 ‘아, 이거 너무 뜨거운데’ 하면서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하지만 몇 초가 지나지 않아 괜찮아지기는 무슨, 쪼렙인 나는 몇 번이나 대야에서 발을 뺐다 담갔다 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대야의 물의 온도가 식어서 나에게 딱 알맞은 온도가 된다.


왕영건의 중국식 마사지는 딱 내 스타일이다. 각 나라마다, 그리고 마사지마다 다른 스타일이 있다. 우리나라는 약간 아로마 마사지를 선호하는 것 같고, 태국에서는 수동적 요가라 불리는 큰 근육들을 스트레칭시켜주는 타이 마사지가 유명하다. 내가 경험해본 바로는 중국의 마사지는 발골을 하는 느낌이다. 중국의 마사지는 마사지사가 나의 뼈와 뼈 사이에 붙어있는 근육과 살을 분리하는 느낌이랄까. 뼈 있는 닭발을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닭발에서 혀로, 입술로, 이빨로 오물오물, 닭발에서 뼈를 살에서 하나하나 발골해내는 느낌. 그 느낌을 중국 마사지에서 느낄 수 있다. 중국의 마사지사들은 나의 뼈를 살에서 하나하나 발골해준다.


중국 마사지를 받다 보면 나의 손가락에도 14개의 뼈가 있다는 사실을 (엄지 손가락에 2개, 나머지 손가락에는 3개씩), 어깨에도 다양한 뼈가 있다는 사실을 (흉쇄관절과 쇄골을 지나, 건봉 쇄골 관절과 견봉과 부리 돌기 사이가 눌렀을 때 가장 아프다) 알게 된다. 사람의 몸에는 자기 자신조차 존재하는지 몰랐던 정말 다양한 뼈들과 근육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살에 파묻혀서 보이지 않았던 곳 들 혹은 별 다른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곳들 에서 ‘아, 이곳에 이런 근육이 있구나!’, ‘아, 이곳에 뼈가 있구나’ 마치 그런 느낌? 그리고는 ‘아니, 여기가 이렇게 아프다고!’라는 느낌.


중국에서 마사지를 받으면서 새로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 개의 단어를 배우게 되었다. ‘(통) 아파요’, ‘(칭이디엔) 살살’, ‘(쭝이 디엔) 세게’. 나는 번역기를 이용해서 중국인 마사지사는 중국의 어플을 이용해서 서로 대화를 했다. ‘왜 중국에 있다’. ‘얼마나 있다’. ‘아픕니다’. 마사지사가 핸드폰 액정으로 보여주는 번역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는 번역체였지만, 그래도 서로 말은 통했다. 아마 나의 번역은 이렇게 보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나 중국 놀러 온다’, ‘나 한 달 중국 있다’, ‘아니 아프다’ (아프지 않다는 뜻이었다).


마지막으로 상하이에 놀러 갔던 때가 2019년 12월이었다. (그렇다, 이 망할 코로나). 당시 2주간 상하이에 머무르면서 머무르면서 이틀에 한 번씩은 왕영건에 들렸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며, 교통비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평점 최고의 왕영건은 내 스타일이었고 마사지를 하루만 안 받아도 왕영건의 로고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중국의 마사지는 뭔가 대체 의학의 느낌이랄까. ‘몸에 좋을 거야, 마사지는 혈액순환에 좋고, 혈액순환은 건강에 좋으니깐’ 자기 합리화를 하며 왕영건 님에게 위안화 현금을 탕진했었다.


아, 사실 그 왕영건이 좋았던 이유는 마사지 말고 또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왕영건 옆에 중국에서 유명한 버블티 체인점, ‘코코’가 있다는 거였다. 마사지가 끝난 후, 옆집에 들려서 녹차 버블티에다 펄 추가해서 먹으며 돌아오는 길은, 완전한 힐링코스였다. 한국에서는 버블티가 못해도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 가격만큼은 했던 것 같은데, 중국에서는 버블티가 한국의 반 값이었다. 마사지도 반값, 버블티도 반값. 생각해보면 내가 상하이에 못 살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상하이에서 돌아와서 중국에서 유학을 했던 친구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게 왕영건을 칭찬해댔다. 하지만 내 친구들 중 왕영건을 아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왜 일까… 왕영건은 이제 막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인가? 아직도 궁금증을 풀지 못했다. 혹시 왕영건을 아시는 분은 저에게 연락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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