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바르 칼라 포핸드 마사지
인도에서 지낼 때였다. 때는 크리스마스였다. ‘경건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심신의 때를 벗겨내리라’라는 다짐으로 연말에 2주간 휴가를 쓰고 아쉬람(요가원)에 들어가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시작한 지 몇 달 안 된 요가에 재미를 느끼고 있을 때였다. 그래, 요가의 고장 인도에 왔으면 아쉬람 정도는 들어가 봐야지.
내가 지내던 북인도의 뉴델리에서, 내가 선택한 아쉬람이 있던 남인도의 케랄라까지 가는 길은 머나먼 여정이었다. 뉴델리에서 무려 3시간 반 동안 비행기를 타고 케랄라의 주도, 티루바난타푸람에 도착해서 다시 아쉬람이 있는 나야르 담이라는 마을까지는 2시간 동안 택시를 타고 들어가야지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왔지만 저녁이 되어서 밖이 깜깜해졌을 때야 아쉬람을 도착할 수 있었다. 아쉬람에 들고 나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리셉션에 가서 오늘부터 12월 31일까지 10일 코스로 등록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리셉션에서 처음에는 4일만 등록이 가능하고일 지나고 나서야 연장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긴 여정에 지쳤던 나는 귀찮게 그러지 말고 10일을 등록해달라고 떼를 썼지만, 그들은 내 요청을 받아주지 않고 4일만 등록을 해줬다. 나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들의 큰 뜻을.
그곳에서는 평생의 꿈이었던 ‘인도에서의 요가 수행’을 하기 위해 전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줄리아 로버트가 나왔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 영화의 현실판이랄까. 40인실의 여자 숙소에 내 옆자리 침대에 있던 미국인 사라는 긴 휴가를 내고 뉴욕에서 무려 3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고 크리스마스를 이곳에서 보내기 위해서 왔다. 몸에 쉽게 혈전이 생겨서 비행기를 오래 타지 못한다는 그녀는 아쉬람에 도착하자마자 입고 있던 압박스타킹을 벗어던졌다. 이렇게 간절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처럼 ‘그냥 한번 해볼까?’라는 마음으로 온 사람은 없어 보였다.
아쉬람은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요가를 수행하는 스케줄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기후가 온화한 남인도의 겨울이라고 해도 새벽 4시의 공기는 너무 차가웠다. 이불에서 빠져나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공동의 노동을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곳은 호텔이 아니었다. 나는 요가 리트릿이라는 말에 속았다. 아침 4시 기상, 아침 4시 반부터 2시간간의 요가 수업. 6시 반부터 7시까지의 휴식. 7시부터 8시까지 아침식사 시간. 8시부터 9시까지 휴식 시간. 9시부터 11시까지 명상시간. 그리고 11시부터의 공동 노동 시간이었다. 공동 노동시간에는 아쉬람에서 지내는 모두가 강당에 모여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나눴다. 첫째 날 나의 일은 대걸레로 요가하는 강당을 닦는 일이었고, 둘째 날의 나의 일은 공용 욕실과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이었다.
나는 직장인이었다. 금쪽같은 휴가를 모으고 모아서 연말에 한번 제대로 된 휴가를 온 것이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하고 싶은 것이라고는 쉬는 것밖에 없었다. 우리 집 욕실 청소도 미루고 미룰 때까지 미루다가 하지 않는 내가 여기 와서 공용 욕실 청소라니.
그리고 아쉬람에서는 하루 2끼의 식사만 제공이 되었다. 첫 끼는 오전 7시, 그리고 두 번째 이자 마지막 끼니는 오후 2시. 그리고는 그다음 날 아침까지 아무런 음식도 제공되지 않았다. 매점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아쉬람에서 제공되는 음식들은 완벽한 채식으로 이루어진 식단이었다. 계란도 없었다 (내 단백질!). 제공되는 소박한 식사 메뉴 중에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은 감자와 쌀밥뿐이었다.
그것만 먹고 나니 저녁이 되자 허기가 져서 참을 수가 없었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지금 쉬러 온 거지, 스스로 고행의 길을 걸으러 온 것이 아닌데 (아쉬람은 수행을 하러 오는 곳이 맞다. 나의 마음 가짐이 잘못 돼먹었던 것이다) 나는 그냥 요가를 수행하면서 멋진 사진이나 몇 장 찍어볼 생각이었다. 나는 고행의 연말을 보내러 온 것이 아니란 말이다.
내가 아쉬람에 있을 때 20명가량의 일본인으로 이루어진 그룹이 있었다. 교육자를 위한 과정 TTC (Teachers Training Course)라는 요가 선생님이 되는 자격증 코스를 들으러 온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200시간 동안 교육을 듣고 나면 자격증을 발급해준다고 했다. 그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덕분에 아쉬람에 있던 요가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서 통역을 부탁했다. ‘아, 저는 한국인입니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다릅니다.’라고 설명해야 했던 순간. 하지만 우리에게는 만국의 공통 언어, 바디랭귀지가 있었다. 일본일 친구들은 요가 선생님의 동작을 보고 바디랭귀지로 질문을 하고, 답을 찾으며 수업을 따라갔다.
결론적으로 난 4일 만에 그곳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첫 등록 시에는 4일만 등록할 수 있다는 룰이 존재하는 거 보니 말이다.
나는 아쉬람을 도망 나와서 케랄라의 히피들의 성지라는 바르칼라 Varkala를 찾아갔다. 아라비아해와 맞닿아 있는 곳.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해산물이 잔뜩 들어간 뚝바(우리나라의 칼국수 같은 밀가루 요리)와 킹피셔(인도 맥주)를 시켜먹었다. 이제 진정한 휴가의 시작이었다. 길 가에 있는 슈퍼에 들어가서 산 수영복은 수영복의 기능은 잘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냥 맨 몸을 가려주는 정도의 역할이었달까. 몸에 달라붙지도 않고, 그냥 옷을 입고 수영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바다에서 짠맛을 흠뻑 즐기며 내가 좋아하는 초승달 모양의 타투도 받고 연말을 흐드러지게 보내던 도중, ‘아유르베딕 마사지’ 간판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유르베다는 그 단어 그 자체로 고대로부터 내려온 인도의 전통의학을 뜻한다. 우리의 한의학과 비슷한 의미랄까. ‘아유’는 삶을 의미하며, ‘베다’는 앎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몸의 에너지의 균형을 중시한다.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기운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에 질병이 생긴다고 믿는다. 나의 삶을 알게 하는 학문이라... 흥미로웠다.
아유르베딕 마사지. 지나가다 들어는 봤지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마사지였다. 안 해볼 이유가 없었다. 나는 흐드러지게 휴가를 보내는 중이고, 마사지는 나의 유일무이한 취미가 아닌가. 병원처럼 생긴 아유르베다 마사지샵에 들어가서 마사지를 받고 싶다고 하자 나이 지긋한 아줌마가 우선 설문지를 작성해야 한다며 나에게 A4용지 3장에 빼곡하게 적힌 설문지를 건네어줬다
함께 내어주던 홍차를 마시며 태어난 날짜와 시간, 성별부터 몸의 불편한 곳이 있는지, 어떤 음식을 먹는지, 기분은 어떤지, 지난 몇 년간의 신체적 증상은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설문지를 작성하다 보니 20대 초반의 어려 보이는 친구가 다가왔다. 설문을 통해서 각자 개인의 체질에 맞는 아로마 오일을 선택한다고 했다. 선택된 오일은 따듯하게 데워진 후 마사지 사의 손을 통해 온 몸에 발라진다. 오일과 함께 마사지 사는 몸의 혈자리를 더럽게 마찰시키고 압박시켜서 몸의 약한 부분의 독소를 빼내는 마사지라고 했다.
가격은 60분에 8만 원이었다. 사실 90분짜리를 하고 싶었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마사지라 90분의 가격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마사지 샵의 많은 방 중 하나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마사지 침대 하나가 있었고, 그 옆에 막대기에 달린 조그마한 항아리가 있었다. 아로마 오일을 매달아 놓는 곳인 듯했다. 모든 옷을 벗고 얇은 천으로 몸을 감싸고 침대에 누우니 아로마 오일을 매달아 놓은 항아리에서 곧 오일이 뚝뚝 떨어졌다. 온도는 따듯하다고 느끼는 힘든 미지근한 정도랄까. 그리고 아무런 향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향이 나는 아로마 오일이라는데 무취의 오일이 규칙적인 리듬에 따라 내 이마 위로 한 방울씩 톡톡 떨어졌다.
곧 방으로는 아까 마사지샵에 들어가자마자 나를 반겨줬던 나이 지극한 아줌마와 나의 설문지를 받으러 온 소녀가 들어왔다. 아유르베딕 마사지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두 명의 마사지사가 대칭적으로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름하야 포핸드 마사지. 네 개의 손으로 하는 마사지로 유명했다. 두 명의 마사지사가 네 개의 손에 한가득 오일을 묻히더니 싹싹싹 리듬감 있게 누워있는 나의 몸을 손바닥으로 마찰시키기 시작했다.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네 개의 손이 대칭적으로 나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두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얼마나 오랜 시간 함께 합을 맞춰와 던 것인지, 두 마사지사의 손들은 마치 군무를 추듯 칼각을 맞춰가며 마사지를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받아봤던 마사지와는 달랐다. 마사지인 듯 마사지가 아닌 듯 오묘했다. 태국 마사지처럼 큰 근육들을 풀어주는 것도 아니었고, 딥티슈 마사지처럼 손가락과 손바닥의 압을 통해서 근육을 마사지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마사지와 가장 유사한 느낌이라면 때를 미는 느낌? 아니면 내 몸에 불이라도 붙이려는 건지 빠른 마찰로 이곳저곳을 문질렀다. 마찰로 인해서 온 몸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까, 한참을 내 몸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네 개의 손이 멈춰 섰다. 그러더니 마사지를 해주시던 아줌마가 방 바깥으로 나가 무언가가 가득 차 있는 흰색 천 주머니 네 개를 가져왔다. 천 주머니 안은 바삭거리는 조그마한 허브 잎들로 가득 차 있었고, 따듯했다. 흰 주머니에서는 은은하게 한약 냄새가 났다. 이번에는 그 흰색 주머니 네 개가 내 몸 위에 올려졌다. 뜨겁지는 않았다. 타인의 따듯한 손을 잡았을 때의 온도랄까.
자극적인 것 하나 없이 은은한 60분의 마사지가 끝났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을 줄 안다고, 처음 받아보는 특이한 마사지에 좋았나, 안 좋았나 말하기 어려웠다. 마사지를 받고 샤워실에 들어가 거울로 본 내 모습은 마치 알에서 깨어난 외계인 같았다. 온몸이 머리카락까지 오일에 푹젖어 미끌거리던 내 모습은 SF영화에서 보던 외계인의 촉감과 비슷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거품을 아무리 내서 샤워를 해도 여전히 미끌 거리던 내 손가락 사이를 느끼며 나는 나에게 아유르베딕 마사지는 단 한 번의 특별한 경험으로 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