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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이 Jan 03. 2024

나는 누구인가

사는 동안 모두의 숙제. 20년 5월 투자스터디 과제

공개용으로 썼던 글이 아니기에 조금 적나라하지만 이 또한 누군가는 읽는 글이었기에 다듬어 적었던 그때의 나. 나는 누구일까요. 당신은 누구일까요. 그걸 알아가며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여정이 삶인것 같습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나

열린 사고, 주관성, 자율성, 잡학 다식, 다른 관점, 체계적, 인정욕구, 스스로 찾게 돕는 것, 다양한 경험, 여행, 걷는 것, 자연적인 것, 여름, 혼자만의 시간, 송군, 물건 줄이기, 성장


열린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을 듣는 게 좋다. 조금 다른 관점으로 영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만 남편 외에 취향이 비슷한 사람은 아직 만난 적이 없다. 본인만의 주관, 관점을 가진 이와의 대화는 언제나 흥미롭고 재밌다. 대체로 다양한 것, 다른 것, 새로운 것, 독창적인 거의 모든 것에서 매력을 느낀다. 스스로 떠벌리는 사람보다(블로그에선 내가 이런 것 같군ㅋ) 과묵한 사람에게 관심이 간다. 화려한 인싸보다 개성 있는 아싸가 훨씬 좋다.



@나는 무엇을 싫어하나

폐쇄성, 위대함, 성공 스토리, 자기 계발서, 불공평, 비효율, 참견, 의무, 의존적, 해맑음, 단체 문자, 의미 없는 칭찬, 강요, 내 공감 능력, 만취, 집단주의, 다 같은 생각, 완벽주의, 아이, 과한 육아, 자기 자신을 동정하는 사람


비효율적인 제도, 형식, 권위에 반발심리가 심해서 일반적인 회사 시스템 -수직적 조직 회사는 언제나 갑갑했다. 권위적인 사람에겐 알러지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너무 싫은 티가 난다. 경험 주의자면서 이상적인 시스템을 바라기도 한다. 기본적 원리, 원칙 안에서 상식적이길, 공평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나 자신과 타인에게도 너무 엄격할 때가 있는데 내 상식을 강요하는 것일 수 있다. 늘-타성에 젖지 않으려 경계하고 계속 생각하며 살려고 노력하지만 갈수록 쉽지 않은 거 같아. 최근에 확실하게 싫은 것 하나가 늘었는데, 스스로 공부하지 않고 너무 쉽게 타인에게 돈에 대한 권리(주식투자 같은)를 넘기려는 무지와 게으름.. 기가 질린다. 가장 중요하고 큰 선택을 언제든 남에게 의지할 준비가 돼있는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는 게.



@나는 무엇이 약한가

상상력, 귀차니즘, 관계 유지, 논쟁, 설득, 조직,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않음, 승부욕, 물욕, 호기심, 인내심, 젠더 감수성, 규칙적, 도움 청하고 받는 것, 숫자, 기억력, 방향치, 청력, 책임감, 분투하는 어린 친구들


열린 생각을 지향하지만 나도 모르게 배운 대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꽤나 강하다. 음식 잘하는 여자가 예뻐 보이고, 운전 잘하고 가족 건사 잘하는 남자가 든든해 보이는 것 같은. 상상력과 젠더 감수성이 좋은 사람과 사는 덕에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창의성은 젬병이라고 느낀다. 외국계 회사에서 갑자기 권고사직을 당한 이후 어디서든 제대로 발 담그지 않는 태도가 생겨버렸다. 어떤 회사에서도 직원은 어제든 교체 가능한 배터리라는 생각이 박혀버렸다.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즐겁게 일했는데 이제는 주는 만큼만 일하자-라고 가볍게 생각하게 돼서 회사, 동료에게 애정이 안 생긴다. 내 10-20대가 충분히 괴로웠어서 지금 청년들 고민에도 쉽게 감화된다. 어린 친구들에겐 언제나 약하다. 학창 시절부터 한결같이 외면보다 내면에 관심을 두었어서 지금도 물욕이나 꾸미는 일에 관심이 적다. 잘 보이고 치장해서 속일 수 있는 외면보다 좀 더 파악이 힘든 내면을 알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것 같아. 한때 어떻게든 독심술을 배우고 싶었던 거랑 일맥상통하려나?



@나는 무엇이 강할까/ 잘할까 

(주관적으로 잘한다는 게 남들보다 뛰어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존감, 주체적, 의구심, 회의적, 이해력, 조직, 시스템에서 문제 찾기, 똑똑한 척, 어른인 척, 글로 마음 전달, 정리 정돈, 적응력, 반성 습관, 잔소리, 실천력, 자신감, 계속 배우고 성장하려는 마음, 제안. 제시, 측은지심, 직감, 운


대체로 사람에 대한 느낌이 잘 맞아와서 이를 자만하는 경향도 있어 늘 조심하려 한다. 일부러 의도하는 행동일수록 잘 보이고, 얕은수를 쓰는 사람은 바로 느껴진다. 학창 시절 채점을 매길 때도 동그라미 말고 틀린 문제에 작대기 표시만 했었다. 잘하는 것보다 부족한 것에 집중하고 그걸 보완하는 습관이 있다 보니 시스템이나 사람에게서도 문제 되는 부분을 잘 찾고 제안할 수 있다.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적다는 게 문제지만. 지금은 잘하는 것도 스스로 칭찬하고 더 키우려고 노력한다. 나이듦의 미학인지 흑백으로 격했던 이전과 달리 이해력은 넓어지고 감정도 균형이 맞춰지는 느낌. 원리,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스스로의 꼰대 기질이 느껴져서 그릇이 넓어지는 연습(포용력)을 하려 하지만 잘 되진 않는 것 같아.


혼자 해결하고 생각해온 습관으로 주관 있고 자신 있어 보이는 태도 때문인지 의도치 않게 상담사 역할을 자주 맡았다. 듣기 싫은 괴로운 얘기들을 잔뜩 듣고, 그로 인해 내가 흔들리고 괴롭고. 내가 죽겠기에 그런 사람들과 멀어지고 그럴 기회를 안 만들려고 많이 거리를 두었다. 아픈 사람일수록, 문제 있는 사람일수록 눈에 띄고 다가가서 안아주고 싶어서. 웬만큼 건강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북돋아 주면 털고 일어나 어른이 된다. 많이 꼬이고 오래 고립된 사람들은 나도 같이 망가질 만큼 끌어내리곤 해서 아직 덜 여문 20대의 내가 감당할 수 없어서 다 끊어냈다.


모든 문제의 답은 본인의 삶 속에 있다고 믿는다. 사람마다 그 답을 찾는 능력의 차, 반복해 본 차이가 있을 뿐, 세상에서 본인을 가장 잘 아는 건 본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난 그런 게 조금 미숙한 사람들을 돕고 싶었고 지금도 그렇다. 좀 더 나이가 들면 그런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 그전에 아직은 제대로 내 삶에 집중하고 싶다. 


© jwwhitt, 출처 Unsplash


@성장기

지금 나이에서 인생을 딱 반으로 접었을 때.

앞선 절반에 해당하는 시기는 잘 떠올리지 않는 편인데. 갈수록 과거 기억이 지워지기도 하고 굳이 돌아보고 싶은 행복한 추억의 시기도 아니기 때문이겠지.

지금의 나를 키워준 소중한 혼란의 시기였지만, 역시. 파헤쳐서 행복한 기억은 별로 없으니까.

부모님은 시장 한복판에서 귀금속 가게를 했다. 성실히 모아서 초등학교 중반쯤 자수성가로 집 장만하시고 내 방이 생기기 전까진 천장에 우다다 뛰어다니는 쥐들이 익숙한 가게 안 작은 단칸방에서 넷이 조로록 누워지냈다. 가장 단란할 수 있던 시기에 가장 또렷한 기억은 거의 폭력으로 점철된 것들 뿐이라.


손이나 각종 도구로 그렇게 맞곤 했는데 어린 뼈에 병신이 안된 것도 신기하고. 맞고 우는 어린 엄마를 안아줄 만큼 성숙하지 못했던 게 마음 아파서. 툭하면 공중으로 날아가던 밥상. 맞으며 바라봤던 빙글빙글 돌아가던 하늘이 아직도 영화처럼 선명하던가. 그때 아버지 나이가 20대 중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빠였구나.. 깨달은 후로는 분노보단 불쌍했다. 어린 엄마는 돌아갈 곳도 없고 정을 못 받고 자라 집요하게 가정을 지키고자 했고, 어린 아버지는 장애를 앓으며 혼자 지내온 내성적인 사람이어서 가족에게만 풀었을 뿐.


주변에선 일상이었던 풍경. 오늘은 여기서 와장창. 오늘은 저 집에서 와장창.

시장 사람들은 그렇게 끈끈하게 정도 많고, 솔직하며 폭력적이었다. 감정에 솔직한 사람들을 보고 자라 사람의 이중성이나 다양한 면에 익숙하고, 기대치가 낮다. 외려 착하고 좋은 얼굴만 보이는 사람을 보면 '얘 어디 문제 있겠구나' 생각하는 안 좋은 지레짐작이 생겼지..



내성적이고 침울한 성격을 바꾸려 한 시도 때문인지, 예민한 기질 때문인지 중학생부터 시작된 조울증은 결혼 후 30대 초반 극으로 달릴 때까지 젊은 시절을 함께했다. 조증일 땐 세상 더없이 시원, 유쾌하게 지냈고, 우울증 기간은 내 속을 갉아먹으며 생각이 무거워 압사하거나 질식하겠다 싶을 때까지 달팽이처럼 움크렸다.


그나마 소질 있었던 미대 쪽으로 고3이 돼서야 진로를 정하고 6개월간 입시미술학원 다니며 그림 그리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선 긋기 연습부터 시작한 그림이 꽤 빨리 늘어서 시기와 따돌림을 받기도 했는데 워낙 애늙은이였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림이 계속느니 막판엔 외려 중심 집단에 껴주기도 하고. 나는 그대로인데 아이들끼리의 편가르기와 이지메가 한참 어리게 느껴지던 시절이다. 내가 생각해도 재수 없게 시니컬한 성격이었다.

대학 1년을 후회 없이 신나게 지나고 바로 휴학. 알바들을 시작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년을 정착 못하고 이 일 저 일 기웃대며 삶에 별다른 기대 없이 표류하며 살아왔다.


고3 때 당당히 외출증을 끊고 (집에 갔다 온다고) 일주일간 바다 보고 온 경험이나, 대학시절 충동적으로 삭발해 본 후로 일반적인 경계란 것이 얼마나 별것 아닌지, 자신감이란 게 얼마나 하찮은 일을 겪고서도 얻어지는지 알게 되곤 조금 쿨해 보이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실제로는 아닌데)


부모님이 종일 자영업에 매달리는 집안 특성상 집안일도 학교생활도 할 수 있는 만큼 각자가 알아서 하는데 익숙했고 서로 연락도 자주 안 하고 알아서 잘 하겠거니 믿음과 무관심이 적절히 배합된. 그런 집안이라 사랑받으며 자란 남동생 와이프가 가족이 되고 초반 명절 풍경은 무슨 블랙코미디 같았다. 윷놀이하자고 다 같이 둘러앉아 모두가 어색해했던.. ㅋ



스스로 답을 찾는 습관, 혼자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 도움받거나 도움 청하지 못하는 것, 독립적인 태도, 고집스러움 모두 이런 성장기에서 비롯된 거라 믿는다. 혼자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고야 물어보는데 늘 혼자 답을 찾다 보니 잘 찾게 된 건지 웬만한 문제 해결은 스스로 되더라. 너무 오래 습관들이다 보니 이제 도움받는 법을 잘 모르겠다. 어릴 땐 사람들 힘든 모습을 너무 많이 봐서, 짐이 될 것 같아서, 내 문제니까, 관계에서 눈치 보다 입은 닫고 귀만 열었다. 주변에 힘든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 잘 들어주니 문제 있는 사람들이 더 꼬였고 쉽게 공감하고 동요하는 마음은 갈수록 너덜너덜.. 듣기만 하고 발설하지 못하는 마음은 쌓이다 글로 배설됐다.

마구 뱉어버리고 태우고, 또 뱉고 태우고. 아버지보다 더 엄마와 남동생에게 독하게 굴었다. 모진 말로 할퀴고, 상처 주고, 기이한 행동으로 잠 못 이루게 하고. 친척들도 비슷하게 기억한다. 어린 시절의 내가 많이 유별났다는 것.


© josephyates_, 출처 Unsplash



@내 반쪽

20대 초반에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수려한 외모에 키가 컸던 남편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만났다. 이미 7년 된 여자친구가 있었고 다 함께 어울리다 역시 고민 들어주다 둘 다 보이는 면과 달리 어두운 마음이 맞닿았다. 지금보다 한참이나 애어른이었던 내가 그를 감쌌고 그 사람은 편안해했다. 

결혼하고 1년 반 동안 가장 심했던 우울의 늪을 지나고 한참 후에, 발랄해진 나를 보며 아주 가끔 예전 내 모습(우린 '그녀'라고 지칭한다)이 그립다고 말하는 사람.

'걔 오래전에 죽었어'


살면서 처음 내 감정을 묻고, 내 모습을 봐주고, 내가 가장 큰 우주인 사람.

집 밖에선 세상 성격 좋고 원만한 가면을 능숙하게 쓰면서 집안에선 나도 모르는 고집을 피우고, 걱정이 성질이 되어 나오고, 감정 컨트롤이 안됐던 나를. 내 감정이 단순하게 슬픈지, 괴로운지, 너무 좋은 건지, 우울한지를 자각하게 만들었다. 무심하게 살다 감정에 솔직해지고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까지. 그 단순한 솔직함을 깨닫는데 몇 년이 걸렸다. 그 단순한 감정들에 솔직해지는 게 그렇게 괴로울 일이었을까.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잡학다식한 사람. 가장 재밌는 사람. 감수성이 가장 좋은 사람. 가장 어른이면서 외로운 아이의 모습을 감춘 사람. 직선적인 말로 나를 강하게 단련시킨 사람.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는 유일한 사람.

20년을 함께했지만 여전히 남편과 나누는 대화는 즐겁고 신선하다. 언제나 내가 간과하는 핵심을 푹- 찔러준다. 아이라는 삶의 무게추없이 가볍게 유유자적 살고 있다. 이 사람과 라면 죽을 때까지도 아이처럼 살수 있을 것 같다.



@다채로운 사회생활

대학 휴학을 시작으로 20대는 끊임없이 많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쉬지 않고 지냈다.

주중, 주말, 오전, 오후 나눠서 3-4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도 하고 계속 다른 사람들과 섞이고 다양한 나이대의 삶을 접하고, 수없이 다른 인생들을 만나고.

해본 일을 a4용지에 쭉 나열하면 종이 가득 채울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후회 없이 치열하게 살았다는 감정만 남아있다. 


그때 많이 배웠다. 사람에 대해서. 하찮은 돈에도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하니 인정받고, 예쁨 받았고 질투나 시기도 받고, 미련 없이 관두고 또 다른 경험을 찾아 이동하고. 일도 사람도 재밌었다. 돈에 얽매이지 않으니 구속받지도 않았고 책임질 지위가 아니니 어디서든 가벼운 마음으로. 표면적인 경험들을 얻고 인내와 책임감은 피해 다녔다. 

그 결과, 지금 나이에도 못 얻은 2가지가 여전히 버겁다.



@지금의 나는 (3년 전)

비상장 중계회사와 생명보험사, 자문사(조만간 증권사로 옮기겠지만)에 위촉된 상태로 프리하게 살고 있다. 꽤 오래전 정규직 권고사직 이후 나이 때문에 단기 알바만 전전하고 다니다가 17년 여름 신라젠으로 처음 주식투자를 시작하고, 지인 정보에만 의지해 비상장 투자도 접하게 됐다.

금융지식이 너무 없어서 초보일 때 뭣도 모르고 투자자산운용사로 벼락공부를 하고, 다음 해엔 투권인을 따두었다.


쓸 곳 없는 자격증일지라도 내겐 수박겉핡기나마 기초지식이 되어줘서 잘했다 싶다.

지금 우리 집 정식 고정수입은 남편 월급뿐이지만 희한하게도 내 활동들로 인해 주기적으로 몇십, 몇백이 들어오기도 해서 투자도 해가며 어찌어찌 지내지만 10년간 변액보험 모아둔 돈은 신라젠으로 폭망, 묻지 마 코인폭망, 자가 빌라는 몇 년째 매매가 안돼서 진퇴양난의 상태.

몇 개월째 지금의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정말 어쩌다 보니 비전문가인 주제에 진짜 '전업투자자'로 살고 있는 셈..


비상장 투자를 시작하고 살면서 처음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는데,

이쪽에 발 담근 이후 내 인생이 바뀔 거라는 강한 느낌. 투자를 내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확신.

(그러니까 제대로 공부해야겠다 생각했고)

신라젠이 폭망한 이후 더더 강하게 다잡았다. 그래, 잘못된 확신으로 시작한 투자가 망해버렸으니까 제대로 한번 해봐야겠다는 오기가 생긴다. 이전보다 신중해졌고 작은 수익의 기쁨이 더 커졌다. 성장을 확신하니 어느 정도 마이너스에도 흔들리지 않게 됐다. 그냥 오를 거라 내버려 두던 때와 다르다. 


절박해지니 월급 받던 돈보다 더 소중하고 희열이 있다. 마냥 재밌던 이전과 다르고 부업 정도인 일반 사람들과도 마음가짐이 다르다. 앞으로나 난 상장 주식과 비상장 투자를 함께 병행하고 싶다. 잘 알고 투자하고 싶다. 기업과 함께 성장해 보고 싶다. 이게 아니면 안 돼. 다 걸어야 한다. 에지워크를 걷는다는 게 어떤 건지 체감하고 있다.


잘 모르고 외면하고 있었어서 이렇게 많은 칼날 사이를 달리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길을 가고 있는 건지, 여기서 어떻게든 나만의 길을 찾아야겠다는 결단이 뒤범벅돼서 밤마다 잠 못 이루지만 난 어떻게든 찾고 싶어. 내 관점을 믿고 싶어. 내 부족함을 채우고 싶어. 목표한 바를 현실로 꺼내고 싶어.



@궁극적으로 지금의 내가 닿고자 하는 지점은 어디일까

작년부터 계속 되물었다. 왜 부자가 되고 싶은지. 얼마나 필요한지. 어디에 쓰고 싶은지.

단둘뿐인 우리 부부는 소박하고 욕심도 작아서 지금도 행복하다. 어떤 결핍 정도는 다스릴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다. 

- 이제 경험의 크기, 행복의 크기를 확장하고 나눌 만큼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가 돈 들이지 않고 가까운 곳 산책만으로 채웠던 작은 행복을 돈에 대한 재고 없이, 좀 더 구속 없이 더 넓은 곳에서 더 다른 것들을 볼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싶은 거다. 여전히 힘든 알바로 생활비 보태는 엄마의 딴딴한 어깨도 풀고 싶고, 어렵게 회생한 남동생 사업 자금도 보태고 싶다. 한 평생 정말 좋은 세상 못 누려보신 홀시어머니께도 좀 다른 세상을 누려보게 해드리고 싶다. 가능하다면 아버지께 받은 결혼자금도 갚고 싶다. 


없던 욕심들이 생긴 거지. 여건이 안되니까 그냥 지나쳤던 것들을 지나치고 싶지 않아졌고 바꾸고 싶어졌어. 우리 인생이 너무 길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소박하게 살더라도 은퇴를 하든 못하든 앞으로 몇십억의 돈이 든다는 간단한 사실도.


이제야 내 게으름과 부족함, 두려움을 인정하고 다른 방법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투자를 한다는 게 이렇게나 모든 것들에 곤두서있어야 하고 계속 깨어있어야 하는 피곤한 일인 줄 전혀 몰랐다.

대체로 글로 표현하는데 막힘없고 자신 있는 편인데 이번엔 왜 이렇게 산만할까.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대체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 역시 착각일 수도 있고 뒤죽박죽인 기억은 나도 모르게 편집되고 각색됐겠지. 적어도 자신조차 속이며 살진 말자고 다짐하지만 그것조차 트릭일지도 모른다.


난 운이 좋다. 나에겐 좋은 기질과 역량도 있어. 노력을 더해 더 크게 키울 생각이다.

계속 다른 걸 시도하고 다른 삶을 살아봐야지. 큰 두려움을 알고 나서 설레임이 커졌다.

앞으로 얼마나 더 큰 변화를 겪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두근거린다. 근자감이 있다.

언제나처럼, 내가 원하는 길을 찾을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으니까.




"인간은 자신에 대해 정직해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얘기할 때면 언제나 윤색해진다.

이 영화는 그러한, 즉 자신을 실제보다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이기주의는 인간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죄악이다."  -'라쇼몽'에 대해 구로사와 아키라

(글을 거의 다 썼을 때 라쇼몽 유튜브 보다가 '나는 누구인가'에 뒤통수 맞은 글이라 적어봄




소설 한 편 나오지 않을 개인사가 어디 있을까. 

투자를 시작하고 무엇보다 나를 제대로 아는 것 또한 중요했기에 이런 글을 두번정도 적었다.

그런 계기마저 없다면 구태여 구구절절 자신의 얘기를 늘어놓을 일이 있겠나.

죽을 때까지 타인 사이를 헤매듯 자기탐험도 계속 되겠지. 

앞으로는 점점 더 그럴 가능성이 적어지겠지만 좋은 의미로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는 시도들이 계속 되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내가 이르고자 한 길보다 더 멀리 가있기를. 미래의 나에게 부탁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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