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글쓰기 고민좀 하느라 한동안 글등록을 못했네요.
오래간만의 글은 꽤 변화무쌍한 인생의 궤적을 그리며 살고 있는 남동생에 대한 얘기로 열어보겠습니다.
저와 2살 터울, 아이 없는 저희와 달리 연년생 예쁜 딸딸이 아빠예요. 그리고 9살 차이 나는 예쁘고, 똑 부러지고, 생활력 강한 와이프와 살고 있지요.(엄마가 미인이라 아이들도 한 미모들 한답니다.)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해온 제 눈에 남동생은 뭘 하든 결국 크게 성공할 떡잎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족으로서의 시선을 떠나 (상냥한 누나라기보다 정 없을 정도로 냉랭, 냉철, 무관심한 누나ㅡ ㅡ) 객관적으로 남동생은 성실, 부지런하고, 신뢰받는 타입이라 생각해요.
어디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해도 점장이나 본사 사람이 눈여겨본 뒤 함께 일하자 하고, 동성들이 좋아하고,(배우자가 있으므로 다른 얘기는 자제하겠음ㅋ), 어떤 일을 믿고 맡겨도 되겠다 싶은 뿌리가 느껴지는 사람입니다.
저와는 어릴 때부터 결이 많이 달랐습니다. 사람 가리고 까탈스러운 저와 달리 친구들이 많았고, 선선했고, 장꾸와는 거리가 먼 침착한 성향이었다고 할까요. 음흉한 구석이나 꿍심없이 반듯한 청년이었고, 세심함과는 거리가 먼 둔한 남편일지언정 착한 심성이 상대에게 전달되는 사람이에요.
한때는 아버지께서 오랫동안 운영해오신 귀금속 소매점에서 함께 일했고, 군 생활을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곳에서 했어서 면회가 안되는 대신 다른 군인보다 휴가를 조금 더 나왔고, 백화점 서비스직으로 일했고, 어릴 때는 정착하지 못한 채 이일 저 일을 접했던 것 같습니다.(그건 저와 비슷하군요)
오랫동안 살아온 소재지에서 어머니와 바 같은 술집을 운영하기도 했고, 그 경험을 살려 건대 큰 클럽을 운영하며 돈도 많이 벌었었죠. 건대 포커스라고 아시는 분 계시려나. 초등학교 친구였던 홍만이와 자금을 합쳐 동업하고 실질적으로는 남동생이 거의 혼자 운영했더랬죠.
동업이 찢어지고 다른 어깨 형제들(!)과 같은 자리에서 다른 클럽을 하다가, 영업이 안 좋아지면서 돈을 쏟아붓다 그것마저 안되어 두 번째 동업을 파하고 수유에 이자카야를 차립니다. 그런데 얼마 안 돼 일본 불매운동이 터지고, 다시 저렴한 실비집으로 바꿨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가게가 안 나가서 다시 닭발집으로 변경하고 그렇게 4년간 가게를 3번이나 바꿔가며 죽을동살동 버텼네요.
1년에 2억넘는 빚을 갚고 집을 키울만큼 큰 돈을 벌어봤던 동생은 다시 4년간 집 크기를 줄여가며, 전세에서 월세로, 최근엔 살림까지 줄여서 결혼한 이후 가장 작은 평수로 이사를 했습니다.
두 딸과 와이프가 없었다면, 남동생은 그 기간을 못 버텼을 거예요. 언제라도 생을 놓을 수 있겠다 싶은 환경 속에서, 그 기간 전화하면 받아주는 정도밖에 할 수 없어서, 별것 없는 얘기라도 들어줘야 했습니다.
알바생이 펑크 내서 몇 번 대신 알바자리를 메꿔줬는데 실제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게 괴로웠어요. 본인의 삶을 깎아가며 일하는 게 여실히 느껴져서.. 내가 알던 동생의 모습과 다른 인격이 되어버린 모습에.. 늘 지쳐있었고, 예민했고, 짜증이 많아지고, 무책임한 알바생들에 지쳐 사람에 대한 불신도 커진 모습. 그렇게 오래 장사해온 녀석이 주방에만 있다 어떤 날은 손님 상대하기가 겁나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공황도 왔던 것 같은데 그 조차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겠죠.
저는 지금까지 남동생만큼 열심히 산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클럽을 할 때도 밤이나 낮이나 전화 오고 받을 때 깨어있고, 대체 잠을 언제 자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고, 한참 잘 나갈 땐 휴식 대신 비타민제를 맞아가며 일했고, 지옥 같던 4년을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하루하루 버틴 건지..
한번은 어느 날 냉장고를 여는데 눈물이 줄줄 났다던가. 우울증인가 보다고. 끝이 안 보이던 그 긴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함께 일을 도왔던 엄마의 몸도 계좌도 녹아가고, 남동생은 몇 년이나 가족 모두의 근심과 밑빠진 돈구멍이었습니다.
작년 10월에 그토록 오래 남동생을 옭아맸던 가게를 손해 보고 정리하고, 지금은 큰손 인테리어 사장 밑에서 막노동에 가까운 온갖 잡일을 하며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현장을 옮겨 다니며 관리하면서 일을 가르쳐 주겠다던 사장은 처음 말과 다르게 잡부에 가깝게 남동생을 부리고 있어 늦기 전에 다시 이직을 고민 중인 남동생. 다시 전화가 자주 옵니다. 다른 인테리어 회사에 들어가 바닥부터 시작할지, 아예 다른 일을 해야 할지, 시작이 녹록지 않은 나이. 가장.
남동생의 허락도 묻지 않고 내 마음대로 발설하는 남동생의 인생.
남동생 좋은 점을 잔뜩 써놨어도 여전히 누나 입장에선 철없는 모습이나 단순함이나 얇은 귀나 왜 저럴까 싶은 부분 역시 한가득이지만. 자녀가 있는 가장으로 나보다 어른이라는 것.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중 가장 치열하게 살아온 내공을 가졌다는 것. 불평하지 않는 태도. 고된 노동에 단련된 뚝뚝한 몸과 마음. 저보다 한참 어른의 삶을 사는 녀석입니다.(와이프의 평가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어린 시절 제가 유난스럽게 자라는 바람에 함께 자라는 남매로서 나 때문에 너무 조용히 자란 것은 아닐까, 남동생에게는 그런 부채감이 있어요. 그리고 한강으로 걸어들어가 나 좀 붙잡아 달라며 울먹이던 통화 역시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때 신고 와서 우리 집에 벗어두고 간 캐릭터 양말을 내가 꽤 오래 보관하며 신었다는 걸 녀석은 모를 겁니다.
요즘 40대는 인생을 재정비하던, 생각과 환경에 큰 변환을 맞는 나이인 걸까요? 저와 남편, 제 주변 많은 40대들이 그런 시기를 보내는 걸 느낍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만큼 잘 살아온 우리라면 앞으로도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남동생에게도 늦은 전업과 시작에 대해 이런저런 걱정과 조언을 해도 알아서 잘 헤쳐나갈 거라고 믿어요. 어떤 일이 닥친다 해도 지난 4년보다 힘들겠냐-하면 당연하지-하며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남동생은 크게 일어날 거예요.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바라고, 그렇게 될 거라 믿습니다.
그때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겠다며 예전보다 따뜻한 누나가 되보려고 노력합니다.^^;
남편이 '우린 자식이 없으니까 혹여라도 남겨줄 재산이 있으면 000(남동생) 아이들한테 물려주자'라고 먼저 얘기했을 때 '아니~! 난 내가 다 쓰고 죽을 건데~!'라고 몽니를 부렸지만.
누구에게라도 뒤처리가 아니라 남겨줄 무언가라도 쌓고 죽으려고요. 아버지 생신 때 이미 올케에게 공언해 버렸으니 이제 빼도 박도 못함.
그러니 얘들아, 이 고모가 거짓말은 '안한' 사람이 되어보겠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이 내 블로그를 몰라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과
역시 내가 아는,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글로 풀때 글이 잘 풀린다는 생각을 합니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있는데 삶이 바빠도 역시나.. 내가 글쓰는걸 정말 좋아하는 구나-하는 깨달음이 들곤해서 어떤식으로든 놓을수가 없나봅니다. 여기서 글쓰시는 분들은 모두 글쓰는걸 사랑하시는게 찐으로 느껴져서 참 멋지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오늘을 열심히 사신 당신도 함께 기운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