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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이 Dec 21. 2023

소박한 딩크부부의 삶

한때 거실장아파트를 가득 메웠던 피규어시민들. 지금은 모두 박스 속에 잠들어 있음


우리 부부의 삶에 대한 얘기를 가볍게 해볼까 합니다. 연애 기간, 결혼 기간.. 을 얘기하면 나이 나오는데 20대 초반에 만나 6년 연애하고 어느새 결혼 17년 차를 지나고 있네요. 아이 없이 둘이 삽니다.


보통 딩크족이라 하면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고, 좋은 곳 두루두루 다니며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자유롭고 여유 있게 살 거라는 '환상'들을 갖고 보시더군요. 남들 드는 만큼, 메여있는 만큼은 아니니 당연히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덜 빡세게 살아도 되는 건 맞네요. 실제로 부부 둘 다 고소득 전문직이면 그런 꿈같은 삶을 누리시는 분들도 '인스타'같은 곳엔 자주 보여요. 언제나 그런 사람들은 tv와 인스타속에서만 산다는 게 희한하지만.

다스베이더 넨드로이드.  가분수라서 무쟈게 귀엽습니다.



저희 부부는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소박하게(?) 사는 편입니다. 작은 빌라에서 오래 살고 있고, 남편은 무면허, 저는 장롱면허, 기운쎈 뚜벅이구요, 결혼 내내 빚 한 푼 없었다가 투자 시작하고 남들처럼 당당하게 대출금이 생겼구요, 적게 벌고 잘 안사고 대신 잘 먹으며(!) 삽니다.

주변 결혼한 사람들과 다르게 저는 4가지(싸가지는 있음)가 없습니다. 아파트, 차, 아이, 명품.

원래 빚도 없었는데 그나마 하나는 생겼네요.ㅋㅋ (왜 의도와 다르게 자조적으로 흐르죠~???)


둘 다 대기업 갈 만큼의 스펙은 아니었고 남편은 소규모 회사에서 인쇄 디자이너로 오래 일하고 있고, 저는 수십 가지 알바와 전업, 백수 사이를 오가며 남편의 희생 덕분에 유유자적 살았습니다.

재테크는 1도 관심 없이 물 흐르듯 살다가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투자 시작했고 꽤 크게 날리기도 하고, 벌기도 하면서 지금도 투자하고 있구요.


싸이월드 그림판 아는 당신, 나와 비슷한 세대~!   다른 그림은 다 버렸으면서 이건 왜 저장해 놨누. 무려 22년전....켁..



남편을 만난 곳이 애니메이션 철야팀이었어서 둘 다 애니 좋아하고, 남편 영향으로 영화, 음악, 게임, 책 읽는 습관까지 온갖 장르 두루두루 섭렵하면서 문화적 소양이 대폭 확장돼서 똑똑한 척 굴면서 살고 있습니다. 둘 다 취향이 마이너하고 개성 있는 편이라 비슷한 취향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없지만.. 그래도 둘이 잘 맞으니 천운이네요.


꽤 오랫동안 국내여행조차 거의 안(못?) 다녔는데 내년부터는 설렁설렁 해외여행도 다니며 살려고 돈 모읍니다. 뭔가 ~게 널널해 보이죠~? 벌고 쓰는 거 대비 돈을 잘 모으는 것도 제 장기 중 하나입니다. 원래도 물욕이 없었지만 갈수록 더 적어지고 있어서 옷도 줄이기만 하고 사질 않으니 돈이 모입니다. 한겨울용 상의가 5벌뿐이라 옷 사야 된다고 남편이 인터넷 검색해 주는데 세상에서 옷 고르는 게 가장 어려워요.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지날 때마다 현기증 납니다. 이 옷들이 다 필요하다고?? 이럼서요.ㅋㅋ


놀러 갈 때 말고 주말에 싸 먹는 김밥. 10줄 싸서 아점 5줄. 저녁 5줄. 한번 싸면 하루가 편하다~



내용도 중구난방~ 사진도 중구난방~

사진을 먼저 걸어놓고 글을 쓰니 배고파집니다.


투자 실패 후 가장~~ 후회했던 것이 있든 없든 여행 좀 다니며 살걸.. 그 정도는 누릴 수 있었는데 가난했던 마음을 가졌던 게 가장 후회됩니다. 올해 여름에야 핫하다는 성수동에 처음 가보고 신선하고 재밌는 광경들에 너~무 설렜습니다. 집에서 멀지도 않은데 참 게을렀어요.


내년 해외여행 계획 세워서 미리 예약하자 하고, 모든 걸 미루지 말고 현재도 충분히 즐기면서 살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저마다 실패에서 배우는 것들이 다르겠지만 저는 실패를 통해 미래는 미래대로 준비하되 다시 오지 않을 현재, 지금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지금. 현재-는 어떻게 보내든 간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원래 좌우명도 '카르페디엠'이지만, 이제 몸으로 실천하며 살고 싶습니다.


안 하다가 한번하면 왕창. 많이씩 먹으려고 고기조림마냥 짜지않게 곰솥가득 만드는 이름만 장조림



남편은 맹장과 쓸개가 없어요. 저는 자궁이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둘 다 수술로 장기를 1,2개 떼어내고 살고 있습니다. 엄연히 몸에 필요하다고 갖고 태어난 장기 일부가 없어도 별지장 없이 잘만 살아요. 자궁은 올 여름에 드러낸 거고 계속 아이 없이 살고 있었어서 수술 때문에 둘이 사는 건 아닙니다. 이 부분 조심스러워하실 분이 계실까 봐,, 그리고 전보다 여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아주 편하게 살고 있으니 이 부분 또한 조심스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타고나거나 갖고 있었거나 원래 있었던 것을 잃는다고 세상 무너지고 큰일 나지 않습니다. 갖고 있던걸 잃게 되면 상실감은 있을지언정 잃는 게 목숨이 아닌 한 죽진 않아요. 남들과 비교해서 조금 부족하거나 덜 가졌거나 없다 해서 상심하고 시기할 필요도 없고, 잃은 게 돈이라 해도 몸이 성하고 젊으면 다시 벌면 되니, 아니면 조금 덜 가지면 되니 잃었다는 것에 메여있으면 그것 때문에 더 불행해질 뿐이죠.


큰일에 덤덤한 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래 탐욕적이기보다 소박한 행복을 알아서 다행이죠. 많은 친구가 없어도 가장 취향 맞고 존경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과 한결같은 마음을 나누며 살 수 있는 복 많은 사람이라 참 감사합니다. 더구나 뭔가를 잃고 나서 더 많은 것들을 얻었으니 지금도 성공한 인생이네요.


각자 일을 하고 저녁에 마주 앉아 별 찬 없는 밥을 먹고, 유튜브를 보거나 tv를 보고. 남편이 게임을 하면 나는 노트북을 보나 책을 읽거나 설거지를 하고. 자기 전까지 평일 저녁의 그 시간들이 촘촘히 쌓여 편하고 단단한 일상이 됩니다.


둘이 산다고 별거 있나요. 단지 아이라는 존재가 채워줄 신세계 없이, 삶의 무게 추 없이 단단한 마음으로 땅 위에 살짝 동동 떠서 살아갑니다. 혼자인 이에게도 자녀가 있는 이에게도 신기한 존재로. 개성 있어 보이는 존재로. 조금 남다른 정도의 애정 넘치는 관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저는 남편이 해주는 얘기가 제일 재미있어요~ㅎㅎ (놀멍쉬멍 글 쓰다 보니 새벽 3시.. ㅜ)



평범한 일상이 참 감사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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