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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To the Lighthouse) / 버지니아 울프

by 김초아
버지니아 울프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 작가인 애덜린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그녀는 여성으로 살아가기 힘겨웠던 시대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후대 페미니즘에 큰 영향을 준 깨어있는 지식인이었습니다. 과연 그녀는 어떤 생애를 살았기에 섬세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건지 작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녀의 집안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영향력 있는 작가였으며 어머니는 화려하고 우아한 귀족 출신이었죠. 어려서부터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아래에서 엄격하게 자랐던 그녀는 어머니처럼 살기 원치 않았고 대체로 남성의 소유였던 작가라는 지식인이 되기를 꿈꿉니다. 당시 영국은 조선시대처럼 남녀가 평등하지 않았고 먼 훗날 1928년에서야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질 만큼 가부장적인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울프는 아버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작가들과 교류하였고 수많은 책을 접할 수 있었던 환경 속에서 여성은 지식인이 될 수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무릅쓰고 끊임없이 공부했답니다.


하지만 1895년 어머니가 사망하며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울프는 이후 이복 언니와 오빠가 연이어 사망하며 정신 이상 증세가 악화됩니다. 이렇게 가까운 이들의 허무한 죽음은 그녀가 살아가며 감내해야 할 상처와 걸림돌이 되었지만 <등대로>를 쓸 수 있는 근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녀는 대학에서 역사학과 그리스어, 독일어를 공부했으나 이후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정신 이상은 더욱 악화됩니다. 투신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지속적으로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죠.


이렇게 힘겨운 상황 속에서 그녀는 어떻게 문학에 매진할 수 있었을까요?

1912년 오빠와 함께 지식인 활동을 했던 레너드 울프와 결혼한 일이 그녀가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레너드는 결혼하려면 자신이 작가가 될 수 있도록 공직을 포기하고 내조 해주길 바라는 그녀의 조건에 수락했고 그녀를 위해 ‘호가스 프레스’라는 출판사를 함께 운영했습니다. 또한 그녀가 정신질환과 싸울 때도 그녀의 곁을 지키며 아낌없는 지지와 관심으로 그녀의 곁을 지켰습니다.


울프와 레너드


또 하나의 이유는 1920년 숙모가 숨지게 되는데, 숙모의 유언으로 울프는 연간 500파운드(현재 약 4000만원)의 유산을 받게 됩니다. 이는 그녀가 생계를 위한 일을 그만두고 문학에 몰두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그리하여 1925년 <댈러웨이 부인>, 1927년 <등대로>, 1929년 <자기만의 방>을 집필하며 20세기 초 대표 여성 작가로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당시 배움은 남성의 전유물이었으며 여성은 학교도 다닐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여성 작가들은 한정된 사회 경험을 소재로 아이들을 돌보며 정신없는 환경에서 집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울프는 이렇게 여성에게 주어진 억압된 환경에 대해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현재 약 4000만원)가 주어져 오로지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한다면 자신을 100%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등대로>와 <자기만의 방>을 통해 억압에 둘러싸인 여성이 어떻게 자기의 뜻을 펼치며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뇌했으며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한 점을 썼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환경 즉, 작가들과 교류할 수 있고 창작에 매진할 수 있었던 환경을 감사하게 생각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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