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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하리 Mar 01. 2021

앞좌석 아줌마랑 싸운 썰

날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도대체 왜 배려해야 하죠?


"아줌마, 편하게 가고 싶으면 택시를 타세요."


'참을 인(忍)이 미덕이다. 굳이 일을 키워 긁어 부스럼 만들어 뭐해.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그게 현명한 거지. 조용히 살자.' 마인드로 살아오던 내가. 몇 주 전, 앞좌석에 앉은 아줌마에게 한 말이다. 그날은 유난히 몸과 마음이 지친 날이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시외버스에 휘청대며 몸을 실었다. 


서울과 남양주를 잇는 몇 없는 시외버스라 퇴근이면 항시 사람들로 북적였다. 보이는 자리에 우선 앉고 가방을 무릎 위에 올리려는 순간, 앞좌석의 등받이가 내 무릎을 찍었다. 앞좌석 사람이 등받이를 뒤로 한껏 젖힌 것. 분명 내가 앉아있는 걸 봤을 텐데 말이다. 순간 인상을 찌푸렸지만 퇴근 후 지쳐있는 상황에 애꿎은 데 감정 낭비하기 싫어 참았다. 


한껏 뒤로 젖힌 등받이 덕분에 움직일 공간이 없었다. 가방을 무릎 위에 올릴 때도, 버스 안이 더워 패딩을 벗을 때도 앞좌석 등받이를 건들 수밖에 없었다. 그 진동에 짜증이 났는지 앞좌석 사람은 진동을 느낄 때마다 뒤를 돌아 나를 째려봤다. 심지어 오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지라 엉덩이가 배길 때마다 들썩이는데 그럴 때마저 몸을 돌려서 나를 째려보는 것이었다. 하, 이 아줌마가. 도저히 못 참겠어서 째려보는 타이밍에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움직일 공간이 없어서 그래요. 의자를 너무 젖히셔서요."


"그럼 다른 자리에 가서 앉아요."


음.. 혹시 잘못 들었나?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정확히 이 포인트에서. 더 이상의 존중과 배려는 필요 없다 생각했다. 앞좌석 사람은 무례함이 어울리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녀의 무드에 맞춰주려고 노력하기로 했다. 


"아줌마, 편하게 가고 싶으면 택시를 타세요."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다른 사람들도 뒤로 젖혔잖아요."


"주변을 돌아보세요. 아줌마처럼 젖힌 사람이 어딨는데요. 아줌마 앞사람이 의자를 뒤로 젖힌 것도 아니고, 풍채가 있어서 공간이 좁은 것도 아닌데 의자를 뒤로 이렇게까지 젖히면 어떡해요. "


"그럼 그쪽도 뒤로 젖히시던가요."


"제 뒷사람이 불편할 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뒤로 젖혀요!" 


내 뒤에 앉은 사람은 불쾌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본인의 편의를 위해서 타인의 불편함을 눈곱만치도 생각지 않는 태도에 주변 승객들은 나의 말에 거들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는 주변 상황을 파악했는지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지금까지 일부로 의자 친 거죠?"


"무슨 소리세요. 제 자리에 앉아보세요. 이 좁은 공간에서 안 칠 수가 있나. "


"하, 됐고. 그냥 다른 곳 가서 앉으세요."


"똑같은 비용 내고 편하게 가려는 아줌마가 옮기셔야죠. 제가 왜 옮겨요?"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씩씩 대더니 등받이를 앞으로 제쳤다. 그리곤 다신 뒤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도 더이상 앞좌석 등받이를 건들일 필요가 없어졌다. 조용해진 버스 안, 에어팟을 끼고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다. 그리곤 머리를 등받이에 기댄 후 창밖 풍경을 즐겼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마음이 평온해졌을 때, 다시 그 상황을 떠올렸다. 좋게 타이를 방법은 없었는지. 공격적인 말투가 최선이었는지. 모두가 힘든 퇴근길 서로 감정 상하지 않게 마무리할 방법은 없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다른 방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내 현명한 방법을 찾기도 힘들었고, 배려심이 눈곱만치도 없는 사람에게 나의 배려와 존중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참는 게 이기는 거다' '똑같이 되갚으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다' 하는 사회적 통념이 지배적인 한국사회. 그래서인지 본인에게 일어난 사소한 피해부터 거대한 부당함까지 참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다. 이것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이러한 경험들은 쌓이고 쌓여 스스로를 옭아매고 진짜 목소리를 내야 할 시점에 입을 닫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곤 남는 것은 홧병 뿐인 삶을 자신의 자녀에게 물려준다. 악순환이 반복되며 피해는 더 이상 피해가 아닌 것이 되고 그저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게 된다. 건강한 사회가 아닌 배탈 난 사회로 변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잘 들어. 한 번만 더 나를 그딴 식으로 대했다간 널 부숴버릴 거야. 


배려하는 마음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배려심, 존중, 관용, 포용력. 삶을 영위하면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라고 자부한다. 단지 나와 같지 않은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상한 게 아니고 '당연'하다. 어떻게는 내가 참은 화는 우울감, 스트레스 등 또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참는 건 정답이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일 리가?' '참는 건 화병을 부른다.' '나에게 엿을 주면 똑같이 엿을 준다.' 하는 사회적 통념이 지배하는 사회가 언제쯤 도래할까. 나와 같이 사고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 양상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나의 피해에 묵인하지 않는 태도는 나아가 사회의 피해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다.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사회를 위해서도 할 말은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사이다 스토리는 영화, 드라마, 웹툰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내 인생에도 우리네 인생에도 모두 존재한다. 고구마 스토리에서 벗어나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톡 쏘는 사이다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참지 않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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