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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하리 Jun 07. 2020

오래된 친구를 버리는 일

15년 친구를 버리고 나에게 일어난 모든 것

어머니는 나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혼자임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다른 존재로 분화되기 시작한 두 사람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오랜 친구를 포기하는 일이 성장의 불가피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 <인지공간> 김 초엽


23살, 대학을 휴학하고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다. 새로운 라이프를 살아가는 사람을 초점으로 한 휴먼 다큐멘터리였었고, 트렌디한 방송 아이템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메인 작가님은 해당 프로그램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된 분이셨고 프로그램의 성향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추려낸 방송 아이템들은 모두 교양 본부장 선에서 어그러졌고 설상가상으로 담당 PD님과 기싸움을 시작해 막내작가인 나와 AD의 등만 여러 번 터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동안 나의 작은 사회에서는 친구가 전부였다. 가족에게도 말 못 한 고민들, 정신 질환 등 모든 것을 보듬어주고 감싸 안아줬던 친구들이기에. 내가 지금 땅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친구들 덕분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남양주에는 살고 있지만 취재 때문에 국회의사당 역에서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더 이상 친구들과의 만남이 즐겁지 않았고 퇴근하고 침대에 뛰어들어 잠에 취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심지어 여기에 '나는 너희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진짜' 어른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이야.'라는 어이없는 자만심까지 생겼던 것 같다.


'방송 아이템 서칭 - 출연자 섭외 - 기획안 작성 - 사전답사 - 종편 준비 - 예고편 기획' 프로세스를 반복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을 했다. 그 결과 7개월의 근무기간 동안 3일 휴무라는 기적적인 근무일수를 기록했다. 그로 인해 벅찬 성취감과 도전의식을 배웠지만 내가 생각했던 방송작가의 일과 실무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감이 커 퇴사를 결정했다. 무엇보다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나는 절대 메인작가로 오를 때까지 버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7개월 동안의 방송 작가 일을 끝내고 복학을 했다. '이제는 사회에서 대우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갖자'라는 다짐 하에 미친 듯이 스펙을 쌓기 시작했다. 졸업까지 남은 기간은 2년, 학점은 물론 대외활동, 공모전, 자격증, 공인 어학점수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7개월 동안의 방송작가 일을 하며 배운 악바리 정신이 발휘되길 바라며 스펙 쌓기에 몰두했다.



그 결과 2년 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다섯 개의 자격증, 그리고 다섯 곳의 공모전에서 수상을 했다. 수상 금액을 계산해보니 약 2,000만 원이 됐다. 이 외로 유튜브팀을 구성해 웹 예능, 웹 드라마를 기획하고 연출했고 창업 동아리에 가입해 생각해둔 사업 아이템을 현실화하는 활동도 병행했다. 여기에 봉사활동까지 추가.


그 시간 동안 나에게 친구란 존재는 잊혀졌고, 그렇게 나는 오래된 친구를 버렸다.


하루 2-3 시간을 자며 모든 것을 해냈다. 오전 - 오후 시간에는 학교 수업에 충실했고 오후 시간대에는 학교 도서관에 남아 이론 수업을 복습했다. 저녁 - 새벽 시간대에는 공모전, 대외활동 그리고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했다. 주말은 내내 촬영에 몰두했다. 단 하루도 쉬지 않는 삶을 살았다. 이 시기에는 1분 1초가 아까웠다. '지금 1분이라도 나태해지는 순간, 네가 이뤄낸 모든 것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거야'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온통 지배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의욕적으로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 졸업을 앞둔 내게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온 것. 갑자기 삶의 이유를 잃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고 노력한 만큼 합당한 보상도 이뤄졌는데 마음이 풍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해져만 갔다. 걷잡을 수 없는 우울감에서 탈출해보려고 목적지 없이 걸어보기도 하고 심리학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코인 노래방에서 목이 쉴 정도로 노래도 부르고 미친 듯이 슬픈 영화를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밤마다 몰려오는 이유 모를 불안감은 나를 찾아왔고 무기력 하게 받아들이며 혼자 흐느꼈다. 그때서야 생각났다. 버려둔 오랜 내 친구들이.


친구 A를 만났다. 중학교 시절부터 줄곧 나의 단짝 친구.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 우리는 오랜만에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어제 만났던 것처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간의 공백 동안의 일은 서로 언급하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우리는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겼고 날이 깊어질수록 대화의 깊이도 함께 무르익었다. 그 순간 잠시 대화가 멈췄고 친구는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나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요즘은 어때, 괜찮아?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뒤이어 친구가 건넨 말은 나를 오열하게 만들었다. 친구 A 2 공백의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스펙을 쌓는다는 명목 하에 친구를 멀리한 것도 있지만 본질적인 목표는 '홀로서기'였다는 것을. 내가 선택한 삶을 존중해주는 것이 친구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의 걱정 어린  마디가 나를 무너뜨릴  있을 거라 생각해서 함부로 안부를 물을  없었다고. 그날  친구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사실 2년 전과 지금의 나는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나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다. 여태껏 나에게 맞지 않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것이다. 원하는 것을 이뤄냈지만 이유 모를 공허감에 빠진 것도 모두 이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되었음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앞서 언급한 김초엽 작가의 소설 <인지공간>의 제나 엄마의 말처럼 오랜 친구를 버리는 일이 성장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성장에 있어 이성, 지식, 기술 같은 요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감정, 감수성, 의지 등 내적 충족감을 채워줄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하다. 나에게 있어 내적 충족감을 채우는 것은 삶의 원동력이었으며 목표였던 것이다.


나에게는 올곧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다. 자칫 잘못된 선택에 무너지더라도 무릎을 털어주고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주는 친구들. 본디 사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낡고 볼품없어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에게 친구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세월의 가치를 담은 골동품과 같다. 실용적인 기능은 잃었더라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깊은 감동을 주는 골동품.


그렇게 나는 오래된 친구를 다시 주웠다.

다시는 차가운 바닥에 홀로 두지 않을 것이며, 평생을 함께할 수 있도록 소중히 다뤄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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