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랩의 2020년 연수·직접 보급 과정
제주창의예술교육발전소에 속한 생태랩, 인문랩, 과학기술랩은 지난해 연구·개발한 창의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실제 교육 현장에 소개하고 확장 가능성을 타진하는 과정을 올해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발견한 새로운 사실과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생태랩, 인문랩, 과학기술랩 순으로 소개한다.
인문랩은 <트멍아이 노는아이>의 연수 과정을 한 차례, 직접 보급 과정을 두 차례 진행했으며, 생태랩과 마찬가지로 연수 과정으로 시작했다. 연수 과정에는 청소년을 주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 관계자와 교·강사들이 참석했다.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을 만나는 이들에게 <트멍아이 노는아이>가 어떻게 다가갈지가 자못 궁금했다. 참여자들은 공동작업이 불러오는 효과를 몸소 경험했으며, 함께 교류하며 관계가 깊어지는 특별한 감흥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다. 코로나19로 점점 희귀해질 수밖에 없는 활동이라서 더 특별한 순간이었다.
인문랩의 특별한 순간은 두 차례 직접 보급 과정에서 더욱 반짝였다. <트멍아이 노는아이>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아지트 만들기’의 재료를 완전히 바꾸었다. 지난해 팡지(두꺼운 합지)로 만들었던 아지트를 넘어서서 참여자들이 원하는 아지트를 구상했고, 그에 따라 아지트 재료 또한 대거 교체되었다. 교육 대상의 확대만이 아니라, 교육 대상의 필요를 반영하여 교육 프로그램의 핵심 요소를 유연하게 변형하였다. 청년들은 자신이 필요한 공간을 제안했고, 자신이 원하는 구성 요소를 직접 만들어 채웠다. 아이들은 거주하는 동네 주변에서 재료를 모아서 늘 뛰어노는 공간에 아지트를 만들었다. 인문랩이 원래 추구했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예술 활동이라는 취지가 2년 차를 맞아 더 단단히 여물기 시작했다.
<트멍아이 노는아이>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든 어른이든 그들이 안전하게 누리고 쉴 수 있는 공간이 그들의 손으로 다채롭게 열리기를 기대한다. 아지트를 만드는 건 사람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지트가 그곳에 깃드는 사람들을 새롭게 만들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 일시: 2020년 8월 19일(수) 13:00~17:00, 8월 20일(목) 13:00~17:00
■ 장소: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트멍(제주시 아라일동)
■ 대상: 문화예술교육기관 종사자 12명
인문랩은 <트멍아이 노는아이>의 연수 과정으로 2020년 연수·직접 보급 사업의 문을 열었다. 생태랩도 그랬지만 관련 전문가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시연하는 일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연수 과정에는 청소년 문화예술교육 관계자와 교·강사들이 참석했다. 그들에게는 익숙하다면 익숙할 수 있는 아지트 프로그램이었지만, 다행히도 과정 내내 트멍아이가 되어 기꺼이 참여하고 즐겨주었다. 특히, ‘공간팡’ 설계와 제작 과정에 몰입하며 조별 구성원 모두가 자발성을 발휘해주었다. 구성원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어 학교나 기관 등의 수업 시간에 활용하면 교사가 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의견과 함께, 공간팡 재료인 ‘팡지’ 사용에 대한 우려와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 업사이클이나 리사이클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참여 대상의 다양화에 따른 <트멍아이 노는아이> 프로그램의 확장과 변형, 보급 방법에 관심이 높았다. 연수 과정 이후에도 지속적인 만남과 소통을 통해 <트멍아이 노는아이>의 향후 연구·개발과 보급에 직간접으로 참여하기를 원하는 요구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청소년지도사 간에 교류하는 연수 과정은 많았으나 청소년 관련 다양한 분야의 참여자가 의견을 나누는 기회는 흔치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연수 참여자가 동일한 직업군이 아니라 다양한 현장에서 모이다 보니 내놓은 의견 하나하나가 서로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참여자 인터뷰 01
“저는 치유형 대안학교에서 미술치료사로 일하고 있고, 또 미술교습소를 함께 운영하면서 아동미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 중에서 자신의 24시간을 알아보는 시간표를 꾸미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 작업이 우리 대안학교 아이들, 청소년 아이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장점과 단점이라는 단순한 두 가지를 알아가는 것보다는, 앞으로 나의 24시간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계획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들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미술 치유작업으로 응용이 가능할 것으로도 보이고, 오늘 같이 집단으로 하는 공동작업은 미술학원 안에서, 또 미술을 경험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함께 작업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자 인터뷰 02
“코로나로 인해 모든 청소년 활동이 멈춰있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좋은 연수가 있을까’ 혹은 ‘내가 배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던 중에 이번 연수를 알게 돼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상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중학생까지인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걸 어떻게 활용했을 때 제가 담당하고 있는 청소년들인 중고등학생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는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 참여했습니다. 기존에 계속 해왔던 프로그램들과 중복되는 부분도 조금 있긴 했지만, 그걸 나름대로 바꿔나가는 것은 지도자의 역량과 재량이라고 생각합니다. VR 프로그램부터 시작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아지트를 만드는 모든 과정을 앞으로 우리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적용해나갈지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코로나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조금 더 멀어져 버린 상황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 시간을 내 것으로 잘 만들어서 더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아까 많은 선생님이 이야기하셨던 것들을 하나하나 되새겨보면, 그냥 단순하게 아이들에게 체험 거리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역할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일시: 2020년 9월 19일(토) 15:00~18:30, 9월 20일(일) 10:00~17:30
■ 장소: 걸어서 4층(제주시 이도일동)
■ 대상: 청년 12명
2020년 1차 직접 보급의 참여 대상은 지금까지 집중했던 트멍아이를 넘어 청년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대학 졸업 후 취업 전까지 20대 청년들도 트멍 세대가 아닐까? 그들도 아지트, 제3의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프로그램을 실행한 장소로 정해진 “걸어서 4층” 또한 20대 청년 세대가 주체가 되어 형성한 공간으로, 제3의 공간에 대한 인식과 공간 주권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교육 대상 확장과 교육 장소 변화를 통해 인문랩이 그동안 추구해온 관계와 공간의 활성화를 더욱 다채롭게 풀어내는 기회가 되었다.
프로그램 세부 활동 역시 “걸어서 4층” 운영진의 주체적인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식물을 활용한 가드닝 프로그램을 접목했다. 여기에 ‘공간팡’ 활동을 변형해 팡지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쉬거나 놀면서 함께할 수 있는 설치물(그네, 해먹 등)을 함께 제작해 공간을 직접 구성하는 취지를 살렸다. 휴식을 위한 기구와 다양한 식물이 어우러져 삭막했던 옥상 공간이 제주 청년의 아지트로 변신했다. 이후 식물이 자라고, 필요할 때마다 여러 요소를 공간에 들이면, 아지트 성격은 더 짙어지고 지속가능한 공유 공간이 되리라 기대된다.
원래 <트멍아이 노는아이>의 1차 직접 보급은 도내 한 중학교와 연계해 진행하기로 했으나, 해당 지역에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예정된 직접 보급이 취소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있었다. “걸어서 4층”에서 진행된 직접 보급도 코로나19 확산 방지 캠페인에 따른 안전 수칙을 준수했고, 전체 참여자도 30명 이내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참여자 인터뷰 01
“코로나로 인해 이런 저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가 되게 어려운 시기인데, 정말 오랜만에 사람들과 함께, 비록 마스크는 착용했지만, 오랜만에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트멍어른’으로서 참여를 한 건데, 대화를 나누고, 나의 24시간을 한 번 되돌아보고, 그 중에 내가 어떤 것들을 통해서 ‘쉼’을 이루는지, 우리가 쉴 공간은 무엇이고, ‘제3의 공간’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트멍’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참여자 인터뷰 02
“이 프로그램이 ‘트멍아이’에서 ‘트멍어른’으로 확장됐다고 하는데,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자기만의 공간을 꾸며보고, 그 안에서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저희 청년들도 사실 그런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고, 오히려 입시경쟁이라든지, 졸업하고 난 이후에는 취업경쟁에 치여서 자신의 자유로운 생각과 활동들을 펼쳐나가기 어렵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고, 그래서 저도 ‘걸어서4층’이라는 공간을 동료 청년들과 같이 만든 거예요. 그런 와중에 좋은 기회가 있어서 ‘트멍어른’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동료 청년들과 함께 저희의 공간을 꾸며볼 수 있어서 좋았고요, 활동하면서 매듭을 짓는 과정에서 손도 아프고 그랬지만, 협업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있었고, 보람도 느꼈어요. 그래서 이 공간에서 일이나 공부에 지쳐있는 것보다는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서 좀 더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고, 동료 청년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프로젝트로 해보면서, 그런 활동들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일시: 2020년 10월 25일(일) 10:00~17:00
■ 장소: 눈뫼가름(제주시 조천읍 와산리)
■ 대상: 초·중학생 12명
2차 직접 보급은 <트멍아이 노는아이>가 원래 목표로 했던 트멍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눈뫼가름은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에서 은퇴한 노부부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협동조합을 이루어 함께 사는 마을이었고, 마을 입구에는 커뮤니티 공간이 있어서 관계에 집중하는 <트멍아이 노는아이>를 진행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참여한 트멍아이들은 라포 형성을 위해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미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어서 교육매니저나 예술가들은 아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커뮤니티 공간이 이미 아이들에게는 아지트에 가까웠다.
트멍아이들의 새로운 아지트는 눈뫼가름 초입에 있는 빈터를 활용했다. 사전답사에서 아이들 놀이터라는 정보를 얻었고, 이를 활용해 공간팡 활동을 진행했다. 아이들은 세 모둠으로 나뉘어 공간팡을 설계하고 공유하면서 의욕적으로 참여했다. 마을 주변을 탐색해 아지트를 만들 재료들을 모아왔고, 동네 어른들도 가위와 톱, 전동 드릴 등을 가지고 나와 거들었다. 돌을 골라 빈터에 길을 내고, 아지트 셋이 만들어지는 동안 아이들은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톱이나 망치나 드릴을 들었고, 어떤 아이는 문패에 그림을 그렸다. 해가 기울 때까지 활동은 이어졌고, 마침내 개성이 뚜렷한 세 공간이 아이들이 상상하고 그린 대로 태어났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한 계절을 넉넉히 트멍아이들과 예술로 놀아보는 과정이지만, 이를 하루에 집약해서 진행했으므로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오가며 하루 한 번은 마주할 공간팡이 아이들 기억 어느 곳에 씨앗처럼 심어져 예술적 감수성이 자라는 토양이 되어주길 바란다.
참여자 인터뷰
“재미있긴 했는데 약간 힘들었어요. 몸을 하도 안 쓰다보니까 체력이 떨어진 것 같아서 오늘 좀 힘들었어요.”
“다른 데서는 이렇게 망치질하고 못 박고 하면 엄마 아빠가 위험하다고 하지 말라고 해서 해본 적이 별로 없는데, 이번에 이렇게 혼자서 스스로 망치나 드릴 같이 여러 가지 도구로 만들어보니까 재미있었어요.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장갑 끼고 조심하면 우리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각 랩의 연수·직접 보급 과정과 2020년도 사업 결과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곧 발간될 <2020년 제주창의예술교육랩 결과보고서: 변화, 실행, 확산, 공유>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