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늘보 Apr 21. 2021

웃긴 엄마가 되고 싶어



나는 웃긴 사람을 흠모한다. 내가 말하는 웃긴다는 건 개그맨처럼 빵빵 터지는 게 아니다. 가령 이런 거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부서장 앞에서 각 팀 팀장들이 상반기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부서장은 시작 전부터 이미 심기불편이었다. 분명 오늘 한 번 제대로 털어보겠다는 심산이었을 거다. 아마 회의실 내 절반은 그 기운을 느낀 거 같고 나머지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튼 발표는 시작됐고, 내내 언짢음을 티 내며 쓰읍쓰읍 거리며 턱 끝을 만지던 부서장은 중반쯤 돼서 드디어 마이크를 들었다.


“이봐, 최 팀장. 지금 본인이 하는 말을 이해하고 말하는 건가? 내가 쭉 들었는데, 발표를 이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나. 문제가 뭐고 그에 따른 액션이 나와야지. 지금 하는 액션들은 다른 팀에 갖다 붙여 놔도 되는 밍밍한 것들이잖아."


그가 본격적으로 칼을 뽑았다. 이제는 아무 생각 없어 뵈던 이들도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핸드폰을 쥐고 바삐 놀리던 손가락을 멈추고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순간 유일하게 눈도 끔뻑거리지 않고 가만히 정면을 응시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부서장의 저격을 받은 최 팀장. 그는 무슨 일이 있냐는 듯 얼굴 한가득 성실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네, 이상 부서장님 말씀이셨고요. 다음 발표자 분들은 잘 참고하셔서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제가 준비한 내용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헐. 뭐지 저 사람. 천재인가. 이건 필시 ‘무지개 반사'다. 말로 말을 보내버리는 고급 스킬. 여기저기서 목구멍과 콧구멍에서 나오는 큭, 흣-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걔 중에는 ‘크흐흑’ 하며 웃어제낀 직원도 있었다. 작정하고 무라도 썰 기세로 칼자루를 쥐고 온 부서장 조차 예상치 못한 뻔스러운 반응에 웃고 말았다.


물론 최 팀장의 발언이 회사의 공식 석상에서 나온 말로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분명 부서장은 발표에 대한 코멘트를 한 것이고, 그는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설명을 해야 했다. 그러나 가끔씩 나는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그의 능글맞고 엉뚱한 예능자막체 같은 화법에 감탄한다. 나라면 분명 “네, 죄송합니다. 준비가 부족했습니다.”라고 궁서체로 대답했을 것이다. 어차피 둘 다 부서장을 흡족하게 해주는 답변이 아니라면 최소한 어이없는 웃음으로 분위기라도 전환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궁서체뿐 아니라 때로는 찔릴 것처럼 아슬아슬한 고딕체 화법을 가진 나로서는 예능 자막체처럼 웃긴 화법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같은 상황에서도 여유롭게 대처하고, 같은 말도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전달한다. 굳이 남을 웃기려고 작정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웃기다.


웃긴 사람을 좋아하는 건 오래된 내 취향이지만, 웃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기를 낳고 나서이다.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여러 번 고민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죽고 난 후 우리 딸이 나를 ‘울 엄마 참 웃겼었지…’라고 추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나를 떠올렸을 때 ‘우리 엄마 나 때문에 너무 고생하고 힘들었어.’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와 내 또래 친구들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서 “너는 절대 결혼하지 마”란 말을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듣고 자랐다. "결혼을 해도 아이는 낳지 마"도 있고, 아무 말을 듣지 않았다 해도 "난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하는 이도 있다.


엄마는 말했다.


“엄마 세대는 낀 세대야. 반 평생 시부모를 봉양하고 자식들 뒷바라지하며 살았어도 절대 자식들에게 우리가 했던 것처럼 대접받기를 바라지 않는 세대.”


그 말에 엄마 세대의 고달픔이 느껴져 슬펐다.


세대가 변하면서 엄마의 모습도 변한다. 위아래로 챙기며 정작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못하던 나의 엄마는 돌봐야 할 사람들뿐인 상황에서 끊임없이 돈을 벌어야 했다. 늘 바빴고, 그런 엄마에게서 난 책임감을 배웠지만 같이 깔깔거리고 웃는 추억을 잃었다. 엄마가 빚어준 고단한 토양을 발판으로 삼고 자란 내 고민은 '어떻게 하면 딸에게 엉뚱하고 웃긴 엄마로 기억될 수 있을까?'이다. 이 사실이 딱히 씁쓸하거나 배부른 고민처럼 느껴지진 않는다면 너무 배은망덕한 걸까. 하지만 나의 엄마가 늘 내게 ‘절대 결혼 금지’를 주입시켰던 이유는 다름 아닌 엄마처럼 남들을 챙기며 골치 아프게 살지 말라는 뜻이 아니던가. 엄마가 원했던 비혼의 딸이 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다른 사람 인생을 챙기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삶을 살진 말라는 엄마의 뜻은 뼛속까지 새겼다. 결국 웃긴 엄마가 되겠다는 내 바람은 절반쯤 내 엄마의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나도 참 웃긴 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대판 육아일기가 된 맘스타그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