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상을 마치고 온 선배와 회사 복도에서 마주쳤다. 안부를 묻자 선배의 눈가가 촉촉해져 우리는 비상구 계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울먹거리는 선배의 한쪽 어깨를 가만히 다독이며 위로의 말을 건넬 타이밍을 고민했다. 그런 고민은 하질 말아야 했는데, 아마 내겐 슬픈 사람을 보면 위로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의 씨앗이 자리하고 있었던 거 같다.
“선배, 그래도 며칠 쉬니 피부가 좋아졌네요…”
헐… 이게 무슨 말이람. 아차 싶었지만 이미 내 혀는 제멋대로 나불거린 후였다. 영화 인셉션에 ‘생각은 바이러스와 같이 끈질기고 전염성이 강해 아주 작은 생각의 씨앗이라도 자라나면 한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지’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바로 그 씨앗이 날 파국으로 이끌었다. 그 말로 끝내야 했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나는 말실수의 화룡점정을 찍고 말았다. 바로 말로 말을 덮어버리고자 말을 계속하는 아무 말 대잔치.
“그게, 제 말은 바쁠 땐데 그래도 쉬고 오셔서… 아 물론 쉬신 건 아니지만, 그냥 선배 얼굴 보니 반갑기도 하고…”
“아, 어. 일단 들어가자.”
결국, 선배가 나를 말의 늪에서 건져냈다. 쉴 새 없이 날뛰는 내 혀가 안쓰러웠던 걸까. 아니면 더는 네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을까. 절망적이었다. 실수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몇 시간 후 힘든 일을 겪은 선배에게 큰 실수를 한 거 같아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일단락되긴 했지만, 그날의 일은 오랫동안 나를 낯뜨겁게 만드는 기억으로 남았다.
꽤 시간이 흐른 후 회사에서 사고가 터졌다. 딱히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모든 책임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상황이 너무 벅차 경미한 우울증이 왔다. 친한 동기가 퇴근 후 저녁이나 먹자며 연락을 했다. ‘이 친구도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궁금한 거겠지’라고 지레 생각했다. 당시 모두가 나를 추궁하기 바빴고, 끊임없이 뒷말이 나오던 때라 나도 절로 삐딱해져 있었다.
우리는 근처 호프집이 아닌 조금 먼 곳을 택했다. 걸어가는 내내 ‘내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을까?’, ‘아니야, 말해 뭐해. 물어보면 늘 그랬듯 잘 모르겠다고 하자’는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자리를 잡고 맥주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친구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두 번째 잔을 절반 정도 마셨는데도 ‘그 일’에 대한 언급 없이 우린 시시한 수다만 떨었다. 결국, 내가 입을 열었다.
“사실 나 요즘 되게 힘들어. 한 번도 말한 적 없는데, 너무 벅차고 지쳐…”
친구는 테이블에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티슈를 건네며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꽤 오래 대화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메시지를 보냈다.
“고마워, 네 덕에 많은 위로를 얻었어.”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몇 해 전 내가 비상구 계단에서 저지른 실수는 말실수가 아니었다. 내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는 착각이 가장 큰 실수였다. 그 착각은 일종의 나르시시즘처럼 ‘나는 참 괜찮고, 성숙한 사람이야.’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니 내가 저지른 실수와 그로 인한 자책이 조금 해소되는 것 같았다. 나의 실수는 대부분 상대를 위한단 명목 아래 내가 돋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나왔다. 시간을 돌려 미숙했던 내 지난날을 바로잡고 싶지만, 최소한 이유를 알고 나니 나를 향한 원망과 적의가 사라졌다.
서늘하다 못해 오싹한 기운이 돌던 비상구에서의 기억은 여전히 나를 부뚜막에 앉은 송아지처럼 화끈거리게 하지만, 덕분에 배운 점이 있으니 괜찮다며 자신을 토닥인다. 동시에 다짐한다. 함부로 상대를 위로하려 하지 말자. 슬픔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그저 옆에 있어 주자. 그리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모른 척해주자. 내가 자기애란 햇살에 취해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순간에도 상대는 슬픔의 바다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결국 알게 되는 실수가 주는 교훈. 그 덕에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