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늘보 Feb 16. 2024

이건 내가 생각한 결혼 생활이 아니야!

“남편이 제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해서는 절 소개해달라고 엄청 졸랐대요.

저 만나고 싶어서 엄청 쫓아다녔다니까요?”


부부동반 모임을 하면 내가 레퍼토리처럼 하는 소리다.  나 스스로도 이런 멘트가 푼수 같고 주책바가지라는 걸 알지만 반 정도는 의도적으로 말한다. 이런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은 소 닭 보듯 하는 우리 관계에도 제법 달달한 로맨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편에게 상기시켜 주고 싶어서 푼수를 자처하고 푼수 떠는 말들을 해버린다.

‘당신, 기억나냐고.

십여 년 전 분명 우린 그렇게 남자와 여자로서 서로를 좋아하고 아꼈던 사이' 라고 말이다.




결혼을 하기 전에 나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좋은 남자를 만나면 삶이 평탄할 거라 생각했다. 물론 삶의 크고 작은 부침은 있겠지만, 대체로 우리가 꾸린 가정은 따뜻한 말이 오가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고, 상대의 힘든 짐을 기꺼이 나눠지겠다는 의지가 가득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꿈꾸던 그런 가정은 없었다. 심지어 스무 살 때부터 심리와 자존감, 가족관계와 내면아이에 대해 공부하고 사유하며 단단히 다져놓은 (아니 단단하다 착각했던) 나의 자아상도 와장창 무너졌다. 모두 첫 아이를 낳고 백일도 되기 전에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잠이 모자라고 밥도 못 먹고 매일 몸이 피곤한 데다가 육아라는 것은 해본 적도 없고, 옆에서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이 홀로 해내야 하는데, 뭐든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은 가득한 상황에서 배우자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엔 아이를 돌보며 생기는 자잘한 이슈들로 남편과 다투고 나면

‘나는 왜 이렇게 못됐지?’,

‘왜 점점 인간으로서도 망가지고 있는 거지?’,

‘좋은 사람도, 좋은 엄마도 되지 못할 거 같아’ 

하며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무엇보다 나를 더 좌절하게 했던 건 남편도,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차라리 남편이 덜 좋은 남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아빠였다면 화만 나고 말았을 텐데 그는 좋은 남자였고 아빠로서도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저 나도, 남편도 엄마와 아빠가 된 게 처음이라 서툴고 불안한 것뿐이었는데, 당시엔 상대의 서투름을 품을 만한 여유가 우리 모두에게 없었다. 누가 더 잘하고 더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 정말이니 누구에게나 힘들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던 거다.




그즈음 나는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인정했다.


 불교에서는 인생은 즐거움과 괴로움이 되풀이되는 것이라 말한다. 영원히 지속되는 행복이란 없으며, 진정한 행복이란 괴로움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삶은 행복해야 한다, 결혼 생활은 편안해야 한다, 우리 가족은 늘 사랑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만들어 놓은 내 상상 속의 삶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을 하는 그 순간은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즐거운 순간들이다. 그러나 그 즐거움이 행복을 의미하진 않는다. 즐거움이 오면 또다시 괴로움이 오고, 그렇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고 결혼 생활이며 아이를 키우는 삶이다. 왜 나는 내 결혼생활은 늘 평탄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착각했던 걸까. 연애하던 시절의 화려함과 달콤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지지고 볶는 삶은 괴로움뿐이라고 단정 지었던 걸까.


이건 분명 내가 생각한 결혼 생활이 아니다. 남편도 내가 결혼할 때 생각했던 남편이 아니고, 아마 나 또한 남편에게는 본인이 생각했던 아내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생각했던 대로만 이루어졌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지혜와 깨달음을 얻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사람의 눈이 두 개인 이유는 한쪽 눈은 반 정도 가리고, 한쪽 눈은 더 크게 뜨라는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반쯤 가린 눈으론 상대방의 단점을 보고, 더 크게 뜬 눈으론 상대방의 좋은 면을 찾으라는 것이다. 단점은 흐리게, 좋은 면은 아주 작은 부분까지 속속들이 찾는 태도로 살면 내가 생각한 결혼이 아닌 훨씬 더 크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부 관계> 부모 자녀 관계인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