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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라타 아트 Aug 05. 2019

미술을 좋아해 보려 노력 중

/ 미술 문외한 김PM

‘좋아해 보려 노력 중’이라는 의미는 ‘가만히 있으면 여전히 좋지 않다’라는 의미입니다.


저희는 크지 않은 회사이다 보니 전 직원이 편하게 의견을 나누는 SNS 대화방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직원들은 주말에도 이 대화방에 미술 관련 소식이나 얘기를 올리더라고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워라벨을 중요시한다는데. 또는 누구 눈치 안 보고 쉴 때는 잘 쉰다는데. 왜 주말에도 이렇게 일을 하나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죠. 마치 제가 주말에 자동차 관련 기사를 찾고 스니커즈를 검색하고 마블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미술 관련 내용을 보고 또 공유하는 것은 그냥 좋아서 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일의 과정 중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감성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일의 성과물이 훨씬 좋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예전에 컨설팅 회사 재직 중에 다양한 업종의 고객사를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관심이 있는 업종을 다룬다는 것이 업무성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절감했었으니까요. 당시, 자동차 부품사를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할 때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시장, 부품 시장에 대해 고민하고 정보를 찾는 그 자체가 즐거웠으며 특히 해외 자동차사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매일 새벽에 해외로 전화를 해야 하는 수고도 전혀 힘들지 않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업무 성과가 좋았음을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시, 제가 작성했던 미국, 독일, 일본의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사에 대한 벤치마킹 보고서가 해당 고객사에서 두루두루 읽혔고 프로젝트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해당 고객사에서 보고서 관련 문의 전화가 오곤 했거든요.


프로라타 아트 뷰잉룸 입구


이렇게 얘기를 하고 보니, 어쩌다 제가 미술을 다루는 프로라타아트에 있나 하고 지난 시간을 되뇌어 봅니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내몰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술을 좋아하거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이도 저도 모를 어린 나이에 치기 어린 선택을 한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지난 기억을 떠올려 보니 동기는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17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주 큰 외국 대기업, 국내에서 제일 큰 대기업, 컨설팅 회사, 국내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스타트업 등지에서 커리어를 잘 쌓아오다가 40 중반을 앞두고 ‘인생한방’을 노리고 싶었거든요. 처음과는 다르게 지금의 회사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비즈니스에 동참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2018년 중반, 즉 ‘블록체인’이라는 단어만 붙으면 뭐라도 될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고요. 네, 정말 이유는 한 가지였습니다. 정말 이 사업은 제 취향을 떠나 돈이 될 것 같았거든요. 지금이야 블록체인은 온데간데없이 순수하게 미술이 주력이 된 사업이 되어 조금 당황스러운 상황입니다만. 어쨌건 그래서였습니다. 여기에 빠져버린 이유는.


이왕 발을 들였으니 이제는 일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업이 정말 잘 되어서 꿈꿨던 인생한방도 이뤄야 하고요. 그래서 억지로라도 미술을 좋아해 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그린 것 같은 또는 점 몇 개 찍어 놓은 작품이 수억수십억을 호가하는 상황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 뷰잉룸에 전시되고 있는 알록달록한 17억이 넘는 그림에는 분명 숨은 뜻이 있을 것이라 스스로를 세뇌하며 강제 감동을 주입하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프로라타 아트 뷰잉룸에 전시되어 있는 17억짜리 작품 / 조지 콘도, <The Antipodal Explorer>, 1996.


다행인 것은, 처음에는 미술과 미술 생태계에 매우 부정적이고 적대적-매우 적합한 표현입니다. 저는 감성에 돈을 지불하는 행위를 백안시하는 측면이 있었거든요-이었다면 그래도 이제는 적어도 미술을 대하는 상황이 고역인 상황까지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워낙 미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던 터라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회사 내에 있는 Art Lover직원들이 그러하듯 국립현대미술관을 ‘국현’이라고 줄여서 말해보면서 아주 작은 카타르시스도 느껴봅니다. 


지인이 어느 날 초짜 타투이스트에게 연습 삼아 받아온 듯한 손목의 조악한 왕관 타투가 발음하기도 어려운 바스키아의 작품에서 왔음을 뒤늦게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이제 막 쿠사마라는 작가를 어설프게 알게 되었을 때 지나가다가 본 환 공포증이 올 것 같은 땡땡이 무늬 전시회 포스터를 보고 쿠사마 것이라고 아는 체를 하다가 아니라고 면박을 당해보기도 하고 말이죠. 그래도 딱 제 수준의 지인들에게 잘난 체를 할 수 있는 수준의 지식을 가졌다는 부분이 나름 뿌듯하기도 합니다.



(좌) 장 미쉘 바스키아, <알폰소 왕>, 1983.  (jeanmichelbasquiatpaintings) / (우) 쿠사마 야요이, <호박>, 2001. (artsy)


비단 미술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조금씩이나마 미술을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하는 농도가 옅어지는 것은 미술이 가진 대단한 매력과 힘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시의 한 구절을 저도 좋아합니다. 제가 미술을 조금씩이나마 싫어하지 않게 된 것도 자세히 보기 시작하고 오래 보기 시작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술이 매력이 없다는 말을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다만, 미술 역시 첫걸음이 어렵지 접하기 시작하면 저 같은 미술 문외한도 관심 가지기를 시작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교보문고 글판, <풀꽃 - 나태주> (Google image 검색)


아직은 저 역시 작품 자체에 대한 의미와 아름다움에 공감하고 감동을 받는 단계는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전혀 모르던 생태계가 있고 그 안에서 작가, 콜렉터, 옥션하우스, 갤러리 그리고 팬들 등의 여러 주체가 활발히 교류하고 있음 그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발로 그린 듯한 그림이 수십억 원에 책정이 되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보다도 그러한 그림을 기다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큰 충격이고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러한 생태계에 한 발을 걸치게 되었다는 상황이 스스로도 어처구니없으면서도 그리 싫지 않은 느낌이고요. 무엇보다도 그 생태계의 구성원이 보통 저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이 업계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작은 신뢰감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관심의 끝이 감성이 메마른 아재를 하나의 미술 광팬으로 만드는 해피엔딩이 될지 아니면 역시 미술은 어려운 거야라며 좋아하기를 포기해버리는 공대 아재로 남아버릴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미술 광팬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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