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대표
어린 시절 신세기를 맞이하고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변화하는 세상을 목격한 것은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삶이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변할 수 있구나를 알고 나니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도 더 열린 시야를 갖게 된 듯하고요.
변화에는 언제나 오버랩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때 역시 아날로그x디지털 공존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계산기가 멀쩡히 있었음에도 주판이 존재했고,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다이얼을 넣던 전화기와 무선 버튼식 전화기가 함께 사용되었으며 오디오 시스템에는 카세트테이프와 CD플레이어, 이후에는 mp3까지 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공존의 시간이 오래가진 않았습니다. 아날로그의 흔적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 금방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습니다. 단편적으로는 너무나 큰 변화들이었기 때문에 마치 책장 넘어가듯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 것 같지만 사실은 비커 속 개구리처럼 변화가 얼마만큼 오고 있는지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채 어느 날 깨닫게 되는 식이었습니다. 분명 점진적인 변화의 과정을 하나하나 목격했음에도 어느 순간 “옛날엔 그랬는데..” 라며 추억 얘기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변화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고 또 어느새 자취를 감춰버린 무언가를 추억하며 그땐 그랬지를 읊겠죠.
모두가 디지털화가 되고 말도 안 되는 변화를 겪고 있을 때에도 요지부동 종갓집 김치 비법과 같이 변화 없는 시장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미술시장이죠. 미술시장은 수백 년 전의 관습과 시장구조를 그대로 답습합니다. 새롭게 나타난 시장 구성원이라고 하면 온라인 갤러리, 온라인 경매 정도겠네요. 본질이나 패러다임의 변화는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단순히 온라인 채널을 열어놓은 것뿐이니까요. 모두가 카드 및 간편 결제를 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전통적인 현금거래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19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뉴욕 맨해튼 전경의 타임랩스 영상이 나오는데, 그 드라마틱한 스카이라인 변화와 대비되게 그때 그 시절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는 시장이 미술시장입니다.
다른 산업들은 지난 100년 만을 돌이켜보아도 모든 면에서 바뀌었습니다. 금융시장을 보면 우선 유가증권의 거래, 표시, 보관 등이 모두 전자화되었죠. 지점을 방문하고 손으로 전표를 작성하여 예치하고 송금하던 시절은 가고, 이제는 방 침대에 누워 손가락만으로 금융거래를 하는 시대입니다.
금융상품 측면에서도 바뀌었습니다. 과거 현금과 현물거래만 이루어졌다면 지금은 각종 파생/구조화 상품들이 등장하여 자본시장의 몸집을 한순간에 몇 배로 키워 놓았죠. 그 변화가 얼마나 컸던지 부작용 한 번에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경험을 불과 10년 전쯤 모두가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서비스 시장에서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새로운 형태의 부가가치 서비스들이 생겨났습니다. 각 종 O2O 서비스 앱들이 생겨났고 스트리밍 사이트 보급과 함께 이전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돈벌이 수단들도 등장했습니다. 말 타고 다니던 19세기 말 서비스업과 과 지금의 서비스업은 A부터 Z까지 모든 게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러면 미술시장만 변화에 뒤쳐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변화란 것은 더 나아지기 위한 방안이니 이미 완벽하고 흠잡을 곳이 없는 시장이라면 굳이 변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술시장이 그에 해당되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지난 10년 치 시장 변화만 보더라도 딱히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기엔 좀 무리가 있죠. 오히려 글로벌 경기에 따른 부침이 보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시장의 폐쇄성을 주 수익 모델로 삼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하죠. 그들만의 리그이기 때문에 붙일 수 있는 프리미엄, 그들만의 리그이기에 형성될 수 있는 거래 관습 등이 시장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치품과 같이 분명 그래야만 하는 시장들도 있습니다. 다만 미술품은 단순 사치품과는 다르게 그들만의 리그에서만 소모되기엔 사회적 가치가 너무 큰 것이죠.
미술품은 사치품과 다르게 소통의 역할을 합니다. 창작자의 무형의 감정과 철학을 시각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행위이고 미술품 감상을 통해 창작자와 감상자 간의 메시지 전달이 일어납니다. 직접적으로 적히는 문자와 다르게 미술품은 선과 곡선, 색 등의 보다 원초적인 요소들을 활용합니다. 그러기에 유연한 사고가 가능하고 창작자의 메시지가 감상자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더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미술의 사회적 순기능이자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이런 결과물들은 단순한 시각적 만족감을 주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실생활 디자인의 근원이 되기도 하고, 사상 또는 철학의 선전도구나 비판 수단이 되기도 하며, 또는 사회적으로 드러내기 힘든 감정의 배설을 통해 공감과 감동을 이끌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변화가 필요합니다. 미술품이 양지로 나오고 더 많은 사람들의 눈과 입에 오르내려야 합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이전에는 미술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여 시장을 북적이게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돈 들어오는 지갑, 나가는 창구가 매번 똑같아서는 미술이 주는 사회적 가치를 점점 키워갈 수 없고 사회적 가치가 정체된다면 정말로 부자들의 놀이터 정도로 평가절하될 것입니다. 돈 들어오는 지갑, 나가는 창구가 매번 똑같아서는 미술이 주는 사회적 가치를 점점 키워갈 수 없고 사회적 가치가 정체된다면 정말로 부자들의 놀이터 정도로 평가절하될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개막과 함께 시대 변화의 위력을 본 세대로써 이런 시도가 제법 자신 있게 느껴집니다. 지금은 절대 안 일어날 것 같은 일들이 곧 너무나 익숙해지듯, 미술시장도 모습이 바뀔 것 같습니다. 사실 과한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딱 다른 산업 정도만 변화되어도 엄청난 혁신이라며 모두가 놀랄 것입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저희 프로라타 아트가 변화의 큰 축을 담당했으면 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