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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라타 아트 Oct 01. 2019

미술 시장, 불경기, 기회

/ 조이사

지난주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KIAF가 열렸습니다. 2002년도부터 시작된 KIAF는 올해 최대 관객 동원을 달성했고, 판매된 작품 규모 또한 역대 최고였다고 합니다. 요즘 경제 10년 주기 위기설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경기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고, 나라 안팎으로는 요즘만큼 어수선할 때가 없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미술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은 놀랍기도 하고 프로라타 아트 운영진으로서는 사실 입꼬리가 흐뭇해지는 일입니다. 


작년까지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하는 문화생활의 일환으로 KIAF에 방문하곤 했습니다. 만점 가까이 전시된 전시장의 수많은 갤러리들을 겉핥기를 하며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사진을 간단히 찍고 식사를 하러 가곤 했죠. 부끄럽지만 아마도 KIAF에 방문해 보신 분이라면 충분히 떠올려지는 광경일 겁니다. 사실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작품은 있었지만 미술에 문외한인 상태에서 조금은 도도해 보이는 갤러리 부스에 들어가 작품에 대해 질문하기란 쉽지 않았죠. 뿐만 아니라 미술 작품은 너무 높은 가격대 일 것이라는 막연한 편견에 멀리서만 둘러보고 발걸음을 돌렸었습니다. 하지만, 프로라타 아트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첫 방문이었던 지난 수요일은 오랜만에 신은 힐을 정신력으로 이겨내지 못할 때까지 오랫동안 머물러 둘러봐도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아마도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미술시장의 흥미로운 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난 수요일부터 일욜일까지 열렸던 한국국제아트페어 (ⓒ KIAF)


요즘 종종 회자되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미술시장 역시나 최악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주식시장과 마찬가지로 미술시장의 거래 규모도 전년 대비 거의 반 토막이 났었죠. 하지만 주식시장과 달리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매에서 19세기 인상주의 작품과 20세기 현대미술 작품 모두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는 점입니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의 <삼부작>은 경매에서 8600만 달러에 팔려 그 당시로서 현대미술 작품 최고가를 경신했고,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모네의 <수련>은 8040만 달러에 낙찰되어 모네의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과연 어떤 점이 주식시장과 미술시장의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Francis Bacon,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1969. (ⓒ Christies')


미술 작품은 유일무이합니다. 또한 작가가 그려내는 작품 수도 한정적입니다. 즉 공급이 완벽하게 비탄력적이므로 수요에 따라 가격이 결정됩니다. 미술관, 개인 콜렉터, 슈퍼리치, 연기금과 같은 기관들은 검증되고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의 작품 또는 슈퍼스타로 떠오르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수요를 꾸준히 만들고 있지만, 작품의 공급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작품들은 가격 방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즉 안전자산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올해 KIAF에서도 이런 수요를 증명하듯 초고가 작품들이 전면에 전시되었습니다. 약 88억 원에 디 갤러리가 내놓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조각품 <프린세스 X>, 더 페이지 갤러리가 30억 원에 소개한 베르나르 뷔페의 <광대 음악가와 색소폰 주자> 등 이미 거장으로 분류되는 외국작가의 작품부터, 국제 갤러리가 60억 원에 선보인 김환기의 <정원>, 가나아트 갤러리가 50억 원에 내놓은 김환기의 <점화> 등 해외에서도 폭발적인 수요가 있는 국내 거장의 작품이 소개되었습니다. 경기가 불안할수록 안전자산인 예금, 금, 그리고 달러 등에 몰리는 전통 투자 자산 시장과 마찬가지의 결과가 KIAF에서도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KIAF에 나온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조각품 <프린세스 X>와 김환기의 <정원> (이미지: 서울 경제)


이렇게 경기 침체 시 안전 자산에 자본이 몰리는 투자 경향이 있다면 소비 패턴에서는 사치품 중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립스틱 판매량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지수로 표시한 것이 립스틱 지수, 한 번쯤은 뉴스에서 들어 보셨을 겁니다. 페어 도착 후 대형 갤러리에서 압도적인 스케일의 초고가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어 놀랐다면, 몇몇 중소형 갤러리 안의 북적이는 관람객과 작품마다 붙어있는 빨간 동그란 스티커를 보고 또 한 번 놀랐습니다. 피그먼트 갤러리에서는 100만 원 후반 대의 애드가 플랜즈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고 조은 갤러리에서는 수백만 원 대의 젊은 유망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페어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판매가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빨간 동그란 스티커가 붙어있었습니다. 


페어 첫 날 부터 문정성시를 이루었던 피그먼트 갤러리 (이미지: 프로라타 아트)


가격 형성이 낮게 되어 있다고 해서 작품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미술 작품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고 사람마다 심미에 대한 기준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미술품과 립스틱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기가 어렵다면 좀 더 가격을 비중 있게 고려하게 되고 그중 가장 심미적으로 만족을 주는 또는 투자 기회를 주는 작품을 구매하는 비중은 늘어나게 되어 미술시장의 양극화를 초래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들 만의 리그 같았던 미술 시장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패턴이 보이다니 참 흥미롭습니다. 솔직히는 프로라타 아트가 탄생한 목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프로라타 아트는 고가의 미술품이 주는 모든 가치, 투자 가치는 물론이고 심미적 가치도 세상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극 소수를 제외한 KIAF에 방문하신 대부분의 관람객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불가능했던 기회를 프로라타 아트는 기술로써 가능하게 했고,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한 KIAF에서 그 기회를 원하는 수요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이 어려운 스타트업 초년생이다 보니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게 하는 끊임없는 동기와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필요한데 KIAF에서 직접 느낄 수 있어 너무 벅찼습니다. 지난번 글에선 광화문을 벗어나 미술에 뛰어들길 잘했다고 얘기했다면,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프로라타 아트를 시작하길 잘했다”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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